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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숲 속 산방에서 꽃뱀과 동거 중입니다”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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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산장

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5년 전에 몸이 아파서 찾아온 곳입니다. 이곳에서 처음 1년은 그냥 쉬었지요. 병든 몸을 후배들이 떠메고 와서 던져놓은 곳이니까요. 1년이 지나자 몸이 다시 살아났어요. 마치 봄에 새 기운이 돋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실 그동안 너무 무리했지요. 10년 만에 복직을 했으니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이런저런 강연에 TV 방송 진행까지 했으니까요. 몸이 간헐적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무시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푹 쓰러진 겁니다.”

구구산장은 거북 구(龜)자가 두 개다. 두 마리의 거북 산장이라는 뜻인데, 건축을 해준 사람이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아픈 몸을 쉬는 곳이라 거북처럼 오래 살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지만, 도종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산방에서 거북처럼 느리게 살라는 뜻입니다.”

구구산장은 병들고 지친 몸을 치유한 곳이다. 이제 5년째 이곳에 머문다. 청주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구구산장에서 머무는 시간은 거북처럼 느린 시간이다. 시인은 그 시간을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면 그 시간은 바쁘고 시끄러운 시간이다.



느릿느릿한 도종환 시인이 마치 거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큰 아픔을 겪고 난 뒤에 체득한 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인가. 시인은 지인들에게 성품이 착한 분으로 소문이 나 있다. 산방 안에는 작은 서재와 책상, 그리고 벌레 한 마리가 조용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시인은 조용히 벌레를 집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이놈아, 여기보다 밖이 더 살기 좋아. 먹을 것도 많고.”

海印

서재를 보니 불교에 관한 책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최근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은 불교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책이다. 해인은 불경 화엄경의 한 구절인 해인삼매에서 나온 말이다. 즉, 세상을 큰 바다에 비유하고 그 바다에 이른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현세를 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이다. 이 번뇌망상이 멈추는 경지가 해인삼매다. 바닷물(海) 속에 떠오르는(印) 절대경지를 말한다.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불심으로 가득 찬 시집이지만, 시인은 정작 가톨릭 신자다. 이 시집을 읽은 수녀님들이 작은 토론회를 벌였다. 그 자리가 끝나자 수녀님들은 ‘그분’에게 기도했다. “주여, 도종환 시인이 개종하지 않게 하소서.”

시인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 집터는 근처에 있는 스님에게 다녀가는 길에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인연은 인연을 낳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주인은 하느님이다. 믿는 신은 다르지만,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시인으로서 받아들인다. 시인에게 시가, 모국어가 유일신이면서 조국인 것이다.

올 2월에 나온 동화 ‘나무야 안녕’도 이곳에서 쓴 책이다. 산방의 뒷마당에 있는 작은 자두나무를 보고 쓴 것이라고 한다. 그 나무는 허리가 꺾인 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나무에서 자두가 한두 개 열린다. 지독한 아픔을 겪고 나서도 저 혼자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에서 어쩌면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아프고 나서 펴낸 모든 책은 이곳에서 썼다. 이곳에 머물며 아무 생각을 안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겸손한 수사가 아닐까. 조용함 가운데 불타오르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시심(詩心)이다. 구구산장은 언어의 집인 시라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다. 그의 시와 글들은 산속의 풀과 나무와 짐승과 어울려 있다. 그리고 해인이라는 큰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이문재 시인이 시집의 발문을 썼다. 그는 도종환의 시가 시인으로서의 귀환이면서 동시에 한국 시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했다. 시집에 나오는 첫 시를 인용한다. 이 시가 아마도 구구산장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이 시집의 서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이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 시 ‘산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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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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