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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특전사·해병대 깨고 ‘27전 전승’ … ‘대항군’은 눈빛이 달랐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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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어둠이 깔린 숲 속에서 은밀하게 작전회의를 하는 훈련군 대대장 캠프.

‘전진(前進)’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육군 1사단은 ‘평양 입성 선봉부대’로 유명하다. 1사단은 미군 정예사단과 벌인 경쟁에서 기막힌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이 타이틀을 얻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서울을 탈환한 유엔군은 1950년 10월3일 0시부로 38선을 넘는 무제한 북진 작전을 승인했다. 이 작전을 위해 압록-두만강까지 진격할 주공과 조공을 선발했는데, 평안북도 끝까지 진격할 주공은 미 8군이, 함경북도 북단까지 밀고 갈 조공은 미 10군단이 맡았다.

주공을 맡은 미 8군은 평양을 점령하고 북진할 주공으로 미 1군단을 정하고, 주공의 평양 점령을 돕기 위해 적을 엉뚱한 곳에 붙잡아놓을 조공 임무는 한국군 2군단에 맡겼다. 주공을 맡은 밀번 미 1군단장은 다시 평양 돌격을 담당할 주공으로 기동력이 좋은 미 1기병사단을, 목표점은 같지만 적을 붙잡아놓는 조공으로 미 24사단을, 예비부대로 영연방 27여단을, 그리고 잔병 소탕에나 참여하는 최후 예비부대로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한국군 1사단을 지명했다.

그러자 백 준장이 “내 고향이 평양이라 평양 공격 루트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평양 공격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며 거칠게 항의해, 밀번 1군단장은 미 24사단과 한국군 1사단의 임무를 바꿔주었다. 유후병력 소탕전에나 참여해야 할 한국군 1사단이 일약 조공이 된 것. 밀번 1군단장은, 주공인 미 1기병사단은 ‘경의선’ 상에 있는 개성-사리원-황주를 거쳐 최단거리로 평양을 공격하고 한국군 1사단은 신계-수안을 거쳐 평양을 공략하도록 했다.

이러한 재조정 때문에 미 1군단의 출동은 10군단보다 늦어졌다. 10월7일 주공인 미 1기병사단이 38선을 넘고, 조공인 한국군 1사단은 10월11일에야 38선 너머로 북진할 수 있었다. 백선엽 리더십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투에서 미 육군의 패튼 장군은 전차와 보병부대를 혼합해 돌진하는 전법으로 독일 지역을 가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미 1기병사단은 유명한 기동부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백 사단장은 공격 개시 전 밀번 1군단장을 졸라 미군 전차 10대(1개 전차중대)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한국군 보병과 미군 전차를 섞어 함께 돌격하는 ‘패튼 전법’을 구사해 재빠른 돌격에 나섰다. 나흘이나 늦게 출동했지만 한국군 1사단은 곧 미 1기병사단과 거의 비슷한 깊이에 전선을 만들었다.



주공보다 빨랐던 조공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군 1사단 병사들이 흥분했다. 이들은 미 1기병사단보다 먼저 평양에 도달하자며 “전진, 전진!”을 외쳤고, 그 기운에 전염된 미 전차중대원들도 덩달아 “위 고우(We go), 위 고우!”를 외치면서 최선을 다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국군 1사단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 육군 최고의 기동부대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 1기병사단도 진격 속도를 높였다.

그로 인해 주공과 조공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고, 미 1군단 사령부는 어느 부대가 먼저 평양에 도착하는지를 판단하는 ‘심판관’ 처지가 되었다. 미 1군단 사령부는 정찰기를 띄워 양쪽의 진격 속도를 살피며 돌격을 독려했다. 피를 말리는 듯한 이 경쟁은 10월19일 한국군 1사단이 주공과 조공의 합류점인 대동교 앞 선교리에 40분 먼저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자 한국군 1사단에 배속된 미 전차부대원들은 기쁨에 들떠 ‘Welcome 1st Cav. Division - from 1st ROK Division Paik: 한국군 1사단장인 백선엽은 미 1기병사단의 도착을 환영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미 1기병사단이 도착하자 종군 사진기자단이 이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름으로써, 보병으로 편제된 한국 사단이 미국의 최정예 기동사단을 이긴 확실한 증거가 만들어졌다. 이 사건으로 한국군 1사단은 ‘전진’이라는 별명과 ‘평양 입성 선봉부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렇듯 한국군 1사단이 평양에 먼저 도착한 것은 조공이 주공을 앞지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현실 전투에서 이러한 기적은 자주 발견되지 않는다.

제1부 첫째 날 - 벼락이 떨어져도 전투는 한다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고 3월28일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육군 과학화훈련단(약칭 과훈단)을 찾아갔다. 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라고도 하는 이곳엔 매년 17~19개의 대대(훈련군)가 들어와 이곳의 전문대항군(대항군) 대대와 자유 공방전을 벌인다. 훈련군은 평소 자기 편제 부대에다 유사시 연대와 사단으로부터 지원받거나 배속 부대를 이끌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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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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