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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20년, 경북고 68회 최영철 기자의 ‘同門견문록’

“보수·진보 아우르며 인재 배출, 획일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라!”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졸업 20년, 경북고 68회 최영철 기자의 ‘同門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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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20년, 경북고 68회 최영철 기자의 ‘同門견문록’

경북고 68회인 기자(오른쪽 원)의 3학년4반 동기 졸업 사진. 원 왼쪽이 반장이었던 권재한군.

경북고는 서울의 강남처럼 ‘대구의 8학군’으로 불리는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던 경기고와 서울고가 강남권으로 옮겼듯, 경북고도 1985년 대구 한복판인 중구 대봉동에서 지금의 황금동 교사로 이전했다. 기자가 속한 68회는 경북고의 역사로 보면 1974년 고교 입시 평준화(속칭 ‘뺑뺑이’) 이후 10년차이자 75년 역사의 대봉동 교정을 경험한 마지막 기수이다. ‘비 새고, 쥐 노는’ 교사(校舍)에서 3년을 보낸 비평준화 선배들과 교정에 관한 한 같은 기억을 공유한 마지막 기수인 셈이다.

‘황금고 2회 졸업생’

68회 졸업생들은 1학년을 마친 1985년 1월 대봉동 교사에서 황금동 교사로 이삿짐을 직접 싸고, 새로운 학교를 가꾼 주인공이다. 그래서인지 신교사에 대한 동기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동기 중 일부는 자신을 ‘황금고 2회 졸업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20분쯤 달리자 눈에 익은 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원하게 펼쳐진 왕복 8~10차선 도로, 분명 경북고로 가는 길이다. 20여 년 전,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인근 대구여고 여학생들과 즐거움(?)을 나누던 추억의 길. 그 길을 따라 기자의 기억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이 길은 신작로가 생긴 1985년 당시 경북고 학생 외에는 통행 인구가 거의 없어 많은 지역 고교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사실 그 길은 경북고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5년 대봉동 교사에서 황금동 현재의 교사로 이전할 때 이 길도 완공됐는데, 1983년 경북고 출신의 5공 권력실세였던 노태우 당시 내무부 장관(32회)의 지시로 당초 계획보다 2배 이상 넓어졌다고 전해진다. 사실관계가 어떻든 이 길 덕분에 경북고를 둘러싼 황금동 인근 지역은 이후 대구시내 최고가의 아파트촌이 들어설 발판을 마련했다.



1984년 1월. 고입 연합고사가 끝나고 배치 결과가 알려지자 부모님은 크게 실망하신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 어쩔래? 공부 안 시키는 공립학교에 들어가서….”

그 무렵 경북고는 화려한 명성과 달리 서울대 진학 실적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북고의 진학 성적이 하락한 게 아니라 덕원고, 경신고와 같은 신흥 사립고교의 성적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는 게 옳다. 더욱이 경북고에 대한 일부 학부모의 실망감은 비평준화 시대의 경북고와 비교했기에 빚어진 것이기도 하다. 빛이 크면 그늘도 큰 법. 영남권 수재들이 모두 모여들었던 선발집단과 대구·경북 지역의 온갖 장삼이사(張三李四)를 모아둔 평준화 세대의 진학성적을 어떻게 수평 비교할 수 있겠는가.

‘경북고 80년사’(1996년 발행)에 나온 1970년대 경북고 출신 학생의 서울대 진학 기록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53~58회(71~76학번)의 서울대 진학자 평균은 연 135명. 평준화 직전 기수인 57회, 58회(75, 76학번)에서는 각각 152명과 153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특히 호남지역을 제외하면 전국 유일의 비평준화 선발집단이었던 58회는 동문 체육행사 때도 ‘경고 중의 경고’라는 현수막을 내걸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들은 대구·경북이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수재라는 뜻에서다. 이 기수는 현재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에 서기관급 이상(대부분이 청장, 국장급)만 13명이 포진해 있다.

경북고 입학은 로또?

이에 반해 1980년대의 ‘평준화 경북고’는 오히려 옛 명성 때문에 손해를 봤다. 대구지역 고교 중 경북고만은 특정 학군 없이 대구뿐 아니라 경북 전 지역에서 학생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경북고의 평준화 효과를 대구·경북 전역의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자는 취지였다. 따라서 한 반 학생의 절반은 대구 출신이고 나머지는 경북 출신이었다. 대구지역 출신 학생들은 경북지역 출신들을 ‘촌놈’이라 불렀다.

대구·경북지역 전체 중학교에서 학생을 모집하다보니 같은 중학교 출신이 2명 이상 경북고에 배정되면 운이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경북고는 평준화 이후에도 학부모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평준화 세대 사이에선 “뺑뺑이(추첨)로 경고 들어가기가 시험 봐서 들어가기보다 확률적으로 더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재경 68회 경북고 동기회장인 권석후(삼성생명 근무, 재학 당시 총학생회장)의 회고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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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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