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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르포

‘인간 애니콜’들의 각개전투장, 국회 의원회관 24시

“‘작품’과 맞바꾼 젊음, 여기서 생존하면 어디 가도 살아남는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인간 애니콜’들의 각개전투장, 국회 의원회관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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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보좌관은 “오늘도 당했다”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A의원은 이렇게 종종 B보좌관을 ‘기습공격’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요 일간지를 꼼꼼히 챙겨보고 나와서는 능청스럽게 “신문에 뭐 난 거 있나?” 하고 물을 게 뻔했다. B보좌관이 “별거 없다”고 얼버무리면 이번 주 신문에 같은 상임위 소속 의원의 이름이 몇 번이나 났는지 숫자를 제시하며 히스테리를 부릴 게 불 보듯 했다. A의원은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배지’를 잃을까 불안해하며 언론 노출 빈도에 부쩍 예민해져 있다.

정치학 석사 출신인 B보좌관은 공채로 A의원과 손을 잡았다. B보좌관은 “입법 과정에 참여하고, 민생 현안 해결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건 보람되지만, 업무의 선이 명확하지 않고 의원이 보좌관을 부리는 사람으로 여길 때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서인석 보좌관은 “현재 국회 보좌진은 의정활동 ‘보좌’ 기능과 의원의 ‘개인비서’ 개념이 혼용되면서 하루 24시간 의원에게 매어 있는 존재가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4년차에 접어든 여당의 한 초선의원 보좌관은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뒤로 영화 한 편 마음 편히 보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휴일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의원과 기자, 민원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보좌진에게 ‘24시 애니콜’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보좌관들은 공공연히 “우리는 ‘3D 직종’에 몸담고 있다”고 말한다.

299개 개별법

비슷한 시각,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실 보좌진이 넓은 탁자 주위에 둘러앉는다. 박영선 의원실 보좌진은 매일 오전 8시40분에 티타임을 갖는다. 박 의원은 일정에 따라 참석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기자 출신인 박 의원이 일간지와 TV 뉴스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보는 터라, 이 시간엔 보좌진끼리 당번을 정해 그날의 뉴스를 정리해 브리핑을 하고, 각자 의견을 나눈다.



박영선 의원은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을 발의해 삼성과 ‘다윗과 골리앗’ 싸움을 계속하는 등 초선임에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MBC 보도국 경제부 부장을 지낸 ‘경제통’이지만, ‘국회의원 박영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여러 성과는 보좌진과 손발이 척척 맞았기에 가능했다. 박영선 의원실 최고참인 민현석 보좌관은 줄곧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의원을 보좌해온 베테랑이다.

300여 의원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굴러간다.’ 열린우리당 보좌관 C씨는 “의원회관엔 299개의 개별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보좌진의 역할분담이 잘되고, 의원과 보좌진의 의사소통도 원활한 의원실은 무슨 일이든 신속·정확하게 판단해 일사천리로 진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의원실에선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 의원회관엔 보좌진이 수시로 교체돼 악명 높은 의원실이 몇 곳 있다. 그러나 그 의원실 보좌진이 왜 자주 바뀌는지는 추측만 무성할 뿐 ‘충격 증언’ 같은 건 없다. C보좌관은 “연예인들이 이혼하면서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 하고, 헤어진 뒤에도 친구처럼 지내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한다.

“조직이 작아서 구멍가게 같기도 하고, 부부관계를 닮은 점도 있죠. 관계가 틀어지면 옮길 부서가 없으니 해결방법은 국회를 떠나거나 방을 옮기는 수밖에요. 서로 미주알고주알 다 아는데 상대방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죠. 더욱이 보좌진은 국회 안에서 재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아요.”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이 의원실에 들어서는 건 대개 시곗바늘이 오전 9시에서 9시30분으로 옮겨갈 즈음이다. 임 의원이 여의도연구소장과 한나라당 수석부대표를 맡고 있어 매일 최고회의, 당중심모임, 최고중진연석회의, 실무회의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터라 문형욱 보좌관은 임 의원이 의원실에 잠깐 들렀을 때 구두로 진행상황 및 일정을 설명하고, 임 의원이 의원실에 들르지 못할 땐 직접 본관으로 가거나 전화 연락을 취한다.

대북 송금 의혹 쇼크

문 보좌관은 1996년 국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아 15대 노기태 의원, 16대 엄호성 의원과 함께 일했다. 15대 때는 전국적으로 ‘기아차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 ‘기아차 부실은 경영진과 노조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그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건 문제’라고 노기태 의원을 설득해 결국 노 의원이 공개적으로 견해를 밝히도록 했다. 16대 때는 엄호성 의원이 2002년 국감에서 대북 송금 의혹을 제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엄 의원의 대북 송금 의혹 제기는 국회에 5년 이상 근무한 보좌관 다수가 충격적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2002년 국감이 대북 송금 이슈로 초토화됐고 이후 국감에서도 그 정도 파괴력을 가진 사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상황 한 장면을 복기(復棋)해보자.

2002년 5월초, 점심때가 지나서다. 식사를 마치고 의원실로 들어온 엄호성 의원이 문 보좌관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디다 얘기하진 말고…현대에서 북한에 돈을 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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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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