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 일러스트레이션·최남진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2/8
이회창의 천군만마 박근혜

단 한 표가 아쉬웠던 이 후보는 강원도 강릉에서 유세를 마치고 박씨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오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후보에 비해 대구·경북 지지율이 높은 편이던 이 후보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북 구미가, 육 여사는 충북 옥천이 고향이니 박씨가 선거 전면에 나서준다면 경북과 충북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공세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의 죽음은 ‘인간 박근혜’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 중이던 그는 급히 귀국해 22세의 나이로 이후 5년여 동안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했다.

1979년 10월26일 청와대 2층에서 아버지와 함께 한 아침식사.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다음날 새벽 1시.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관저에 올라와 곤히 잠든 그를 급히 깨웠다.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10·26 이후 한 달이 채 안 지난 1979년 11월21일. 그는 청와대를 떠나 서울 중구 신당동 사저로 옮겼다. 그리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그의 일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도 사절했고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손을 뻗쳤지만 ‘칩거’를 고집했다.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그토록 동경하던 평범하고 소박한 소시민의 삶을 살았다.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2년)과 정수장학회 이사장(1994~2005년)을 맡았지만 그의 활동은 소극적이었다. 1997년 12월 이회창 후보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공직의 책임에서 벗어나 독서와 사색, 글쓰기에 전념했다.

그는 청와대를 떠나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테니스에 푹 빠져 살았다. 그는 매일 오전 11시경이면 서울 양재동 테니스코트에 나타났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4~5시간씩 테니스코트에서 살다시피 했다. 강신옥 전 의원과 정몽준 의원,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그와 함께 테니스를 즐겼다. 박씨와 정 의원은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 강 전 의원은 정 의원과 막역한 사이였다.

테니스장 찾아온 특사들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양재동 테니스코트를 찾는 정치인의 발길이 잦아졌다. 각 대통령후보 진영에서 보낸 특사들이었다. “도와달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박씨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박씨는 정치 참여에 앞서 강 전 의원과 잘 아는 정몽준 의원에게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함께 운동을 한 지인들에게도 “내가 정치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씨와 20여 년간 함께 운동한 장모씨는 “나는 정치를 하라고 권하는 쪽”이었다며 “(테니스를 같이 쳤던)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를 하라고 등을 떠미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그와 함께 허물없이 테니스를 친 지인에 따르면 “정치와 담 쌓고 살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은 정치권이 제시한 ‘달콤한 조건’ 때문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에게 “당시 정치권이 제시한 ‘조건’이 무엇이었냐”고 되묻자 대답을 회피했다.

18년 동안 소시민의 삶을 고집하던 박씨는 이회창 후보를 만난 지 8일 후 한나라당에 입당함으로써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선거 일주일 전인 1997년 12월10일 박씨는 구미지구당에 입당계를 제출했다. 같은 날 오후 경북 구미시 박 전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이 후보로부터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직을 제의받고 이를 수락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당선과 나라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박 전 대표가 ‘정식’ 정치인으로 데뷔한 이후의 첫 족적이다.

그가 전격적으로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나라당 입당 당시 기자들과 만나 ‘DJT(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대’가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승계하겠다고 주장한 데 대해 “1980년대 들어와 아버님의 업적이 왜곡됐을 때 침묵하며 시대에 편승해 아버님을 매도했던 사람들의 말은 자신들의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기에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 참여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2/8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 일러스트레이션·최남진
목록 닫기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댓글 창 닫기

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