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말고는 없을까?” “원점에서 다시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도 투톱을 번갈아 세워야 모양새라도 맞을 텐데”….
국회의원, 혹은 4, 5급 보좌관에서 1년여 뒤 단순 ‘정당인’으로 신분이 바뀔까 노심초사하는 여의도 의원회관의 범여권 인사들이 요즘 심심찮게 건네는 말들이다. 정 전 총장의 지지도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자 진작부터 이름은 올라 있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오픈 프라이머리 영입 후보군도 거명된다. 최근 들어 대외활동 빈도가 높아진 문국현(文國現·58) 유한킴벌리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문 사장에 대한 여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하나는 이른바 ‘정운찬 트랙’으로, 정 전 총장처럼 각고의 고민이라는 모양새 갖추기 끝에 결국은 정치권 합류를 기정사실화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 전 총장이 학계에서 더 올라갈 곳이 없으니 결국은 정계로 시선을 돌리듯, 12년 동안 우량기업 최고경영자로 있으면서 기업인으로서 ‘할 것 다 해본’ 문 사장 역시 정치권력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논리다.
‘문국현 조기 옹립론자’들은 현재 지지율 수위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의식한다면 여기에 맞불을 놓을 최적의 대항마가 문국현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두 사람 다 ‘평사원 출신 최고경영자 등극 케이스’이지만 문 사장 쪽이 윤리, 환경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개발시대 돈키호테형’ 대 ‘미래시대 청렴형’ 대결로 구도를 전환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구상이다.
또 다른 시각은, 문 사장 본인은 여건상 출마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범여권 세력결집을 위한 ‘불쏘시개’ 노릇은 수행하리라는 것이다.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중반전까지는 완주할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면서 경쟁상대를 교란하지만, 사실은 뒤에 있는 우리 편 선수가 막판에 치고나오도록 돕는다는 시나리오다. 그 때까지는 ‘기업인 같기도, 정치인 같기도 한 경계인’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길 바라는 시선이 많다. 그렇다면 문 사장 본인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 사장은 평일엔 스케줄이 빈틈없이 짜여 있어 주말밖에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한 일요일에도 그는 연신 다음 스케줄이 있다며 휴대전화 시계 표시창을 훔쳐봤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글로벌 이슈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현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각을 술술 풀어냈다. ‘프리젠테이션’ 솜씨만 보면 당장 대선후보 TV토론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예민한 질문에 대해 적절하게 양비양시론을 구사하며 피해가는 언변은 웬만한 현역 정치인보다 유려했다.
개성은 기회의 땅
첫 질문은 한미 FTA 타결을 보는 그의 시각에 대해서였다. 현재 유한킴벌리 사장이자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총괄사장을 맡고 있는 ‘세계적 CEO’이지만, 그는 여태껏 한미 FTA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여왔다.
▼ 그간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몇 차례 하셨죠.
“이미 미국을 포함해 아세안 지역, 일본과 기본합의가 끝난 상태이고 중국과의 협상도 속도를 붙이고 있습니다. 유럽,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인도, 그리고 중동지역과도 협상계획이 있죠. 거의 모든 대형 경제권과 FTA를 준비 중이면서 미국과 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