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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리포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한 첫 백인 여성 얀 루프 오헤른

“그냥 잊으라고요? 지금도 밤마다 강간의 공포에 떠는데…”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한 첫 백인 여성 얀 루프 오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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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 공식 사죄할 때까지 죽지 않고 싸울 것”
  • 세계 언론 관심 끈 시드니 ‘수요집회’
  • 미국·호주·캐나다 의회, 日 사죄결의안 채택 가능성 높아져
  • “제네바 협정? 웃기지 마라, 우린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다”
  • 호주 총리, 일-호 안보협약 체결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거론
“키가 작고 뚱뚱한 대머리 일본군 장교가 딱 버티고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히죽거리기까지 했지요.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강압적으로 나를 끌고 침대로 갔습니다. 나는 말했죠. “절대 이런 짓은 할 수 없어요.” 그러자 그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주마. 정말 죽이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칼을 뽑았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꼈습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를 침대에 집어던지고는 내 옷을 모두 찢어버리고 잔인하게 강간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어요. 나는 고통이 그렇게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방을 나갔고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욕실에 가서 다 씻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모든 더러운 것을. 그저 다 씻어버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마치 전류처럼 몸속을 파고 흘러들거든요. 공포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동안 나와 함께 있었죠. 나는 밤이면 그 공포를 여기 내 응접실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창 밖을 바라보다가 날이 어둑해질 때쯤이면 소름이 끼쳐요. 어두워진다는 것은 내가 다시 거듭해서 강간을 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아시겠어요? 그 공포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호주 국영 abc-TV 다큐멘터리 ‘Australian Story’ 중에서


위의 내용은 호주 국민을 펑펑 울게 만든 TV 다큐멘터리 ‘오스트레일리안 스토리’의 ‘잊힌 사람들(The Forgotten Ones)’에 출연한 호주 국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84) 할머니의 회상을 채록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1년 8월30일 방영됐는데,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호주는 물론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자 호주 국영 abc-TV가 지난 4월2일 저녁에 재방송했다. 2월15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청문회에 참석한 오헤른 할머니가 증언대에서 울먹이며 절규하는 모습이 TV 뉴스로 전해지자 시청자들이 재방송을 요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50년의 깊은 침묵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오헤른 할머니는 “한평생 치욕을 안고 살아왔다. 지금도 매일 그 치욕을 씻고 있지만 씻기지 않는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할머니는 격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 책상을 치기도 하고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그는 서양인 위안부라는 사실 때문에 미국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위안부(comfort woman)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힌 최초의 백인 여성이다.



이날 한국인 이용수(79), 김군자(81) 할머니 등과 함께 청문회에 나선 오헤른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 일본군들에게서 받은 수모와 강간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역사 바로 세우기, 위안부 결의안 처리를 위한 미 의회의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미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 존재의 공식 인정과 사죄’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교육시킬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은 “1996년 이후 하시모토, 오부치, 모리, 고이즈미 총리 등이 직접 나서서 보상금과 함께 서면으로 진실한 사과를 했다”는 요지의 서면 해명서를 위원회에 제출, 위안부 결의안 저지에 주력했다.

한편 abc-TV는 이 다큐멘터리를 재방송하면서 프로그램의 앞과 뒷부분에 미 하원 청문회 장면과 호주 한인 동포들이 주축이 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호주 친구들(Friends of Comfort Women in Australia·FCWA)’이 주최한 제751차 ‘수요집회’ 관련 장면을 덧붙여 방영했다.

오헤른 할머니는 ‘그 일’을 겪은 후 50년 동안 엄청난 충격과 씻을 수 없는 수치심 때문에 침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1992년, 호주 TV 보도를 통해서 한국계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악몽의 세월을 증언하는 것을 보았다. 보스니아전쟁 와중에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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