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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특별함 ⑤

무라카미 하루키

죽기 살기로, 우아하게 쓰고 달린다

  • 전원경│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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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 체재하고 있는 동안은 전혀라고 해도 무방하리만큼 신문을 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변으로 나가 일광욕을 하고 시가지를 산책하거나 아니면 베란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감정교육’이나 ‘장미의 이름’ 등 가지고 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신문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일지 않는다. 세계는 세계 제멋대로 돌아가게 내버려두면 되지 싶은 기분에 젖는 것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 중

‘오후 4시쯤에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숙소에 들고 싶다. 샤워를 하고 홀연히 근처에 있는 펍으로 들어선다. 식사 전에 먼저 흑맥주 1파인트를 마실 필요가 있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잠시 쉰 다음, 하릴없이 동네를 산책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괜찮은 레스토랑을 물색한다. 슬슬 배도 고파온다.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다. 6시 반쯤 되면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받아들고는 자, 그럼 무얼 먹지, 하고 검토에 들어간다.’ -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여행기 ‘위스키 성지여행’ 중

소설가로 데뷔할 때부터 그는 운이 좋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1978년 4월1일 오후 1시 반 전후해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혼자 야구장에서 경기를 구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지’하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당시 하루키는 와세다대 시절(하루키는 이 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가 학원사태로 제적, 복학을 거쳐 7년 만에 졸업했다) 만난 요코와 일찍 결혼해 재즈바 ‘피터 캣’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글이라고는 ‘세금신고 서류와 간단한 편지 정도를 쓴 것이 전부’였던 그는 그 길로 원고지 한 뭉치와 만년필을 사들고 와 가을까지 원고지 400매 정도의 중편을 썼다.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하루키는 이 작품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무심코, 운명적으로

야구 경기를 구경하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첫 소설로 신인상을 탔다는 그의 회고는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고 학원은 안 다녔어요”하는 명문대 수석합격자들의 소감처럼 어이없게 들린다. 아마도 그는 “나는 노력하거나 분투하지 않고 운명의 힘에 이끌려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키의 부모는 일본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그는 성장하면서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미국문학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바쁜 일상을 살았다 해도 “세금신고 서류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건 과장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무의식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의식 표면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아무튼 첫 소설을 쓸 당시만 해도 하루키는 자신이 작가로 살아갈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싶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신인상 공모에 투고할 당시 원고지에 만년필로 쓴 소설의 복사본조차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떨어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만만함, 혹은 무심함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신인상 수상작으로 결정되고, 이듬해 여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두 편의 소설을 더 탈고한 뒤에, 하루키는 7년간 운영하던 ‘피터 캣’을 닫고 전업 작가가 됐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밤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업 작가가 된 뒤로 1년에 한 권꼴로 성실하게 소설을 써나갔다. 그리고 1987년, 비틀스의 노래에서 제목을 딴 장편 ‘노르웨이의 숲’으로 1년 만에 43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일약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 후 펼쳐진 하루키의 삶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그리스 미코노스, 이탈리아 로마, 영국 런던, 미국 보스턴과 프린스턴 등 이름조차 멋진 해외 도시들에 번갈아 체류하며 작품을 쓴다. 2003년 출간된 장편 ‘해변의 카프카’는 그의 명성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이 소설의 출간을 전후해 하루키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독자 중 몇몇은 “인생 참 근사하구나!”하며 긴 한숨을 내뱉을지 모른다. 그 또래의 남자 대부분의 삶은 여기에 비할 바 없이 고달프고 빡빡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 전철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직장에 닿으면,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회의와 상사의 얼토당토않은 업무 지시, 부하직원의 어깃장이 기다리고 있다. 조미료로 범벅된 점심식사로 위를 채우고, 오후 업무시간을 버텨내면 내키지 않는 술자리가 이어진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사는 게 왜 이리 고달픈가 하는 한탄이 절로 새어나온다. 이게 보통 중년 남자 대부분이 겪는 일상이다. 그러니 조깅하고 글 쓰고 음악 듣고 외국 여행하는 하루키의 삶은 천국, 아니 천국 그 이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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