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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④

‘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오크통에 숨겨둔 증류주, 명품 위스키로 탈바꿈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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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엄청난 고급 위스키 소비량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중 상당량이 맥주에 익사해버린다지만, 위스키 애호가들은 고집스럽게 고유의 맛과 향을 음미한다.
  •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은 1979년 구(舊)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미국 정가의 움직임과 더불어 스카치위스키의 매력을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Charlie Wilson?s war)’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2007년, 조지 크릴이 쓴 같은 제목의 책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영화 내용은 대부분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 출신 텍사스 하원의원이던 찰리 윌슨에 관한 것이다.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찰리 윌슨이 아프가니스탄을 위기에서 구하는 데 얼마나 기여 했는지 생생히 묘사한다.

1979년 12월, 당시 소련은 3개월 전 축출된 친소련 공산정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교 무장조직인 무자헤딘 반군은 극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현대식 무기 없이 소련의 침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가공할 위력을 지닌 소련의 전투 헬기들이 반군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반군들은 미국의 무기 원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냉전시대였던 당시,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못마땅했으나 적극적인 개입도 원하지 않았다. 전쟁 초기 미국의 대응은 기껏해야 198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올림픽 참석을 거부하거나, CIA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구식 무기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은 이러한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실제 미국 정가에서 벌어진 일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당시 텍사스 하원의원이던 찰리 윌슨은 잦은 일탈행위로 유명했다. 음주, 마약복용, 여자관계 등 끊임없이 구설에 휘말리면서도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으로 1973년부터 1996년까지 23년간 하원 국방위원을 역임했다.

영화 도입부에 하원의원 찰리(톰 행크스 분)가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화로운 스파에서 로비스트, 스트리퍼들과 어울려 알몸으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마약복용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지만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이 상징적인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참으로 독특한 사람이다. 자기 사무실의 직원을 모두 젊고 예쁜 여자들로 채우면서 “타자 치는 법은 가르칠 수 있어도 타고나는 몸매는 어쩔 수 없다(You can teach them to type, but you can?t teach them to grow tits)”고 하는 등 파격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사무실을 비롯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나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다만 훗날 그와 만난 파키스탄 대통령이 표현한 것처럼, 인격적인 결함은 많으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소련을 이긴 아프간의 막후



어쨌든 찰리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파에서 우연히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관련 텔레비전 뉴스를 접하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당시 연인 관계에 있던 텍사스 휴스턴의 반(反)공산주의자이자 기독교 신봉자인 로비스트 조앤 헤링(줄리아 로버츠 분)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파키스탄 대통령을 만난다. 직접 파키스탄을 찾은 찰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비참한 실상을 눈으로 확인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CIA의 아프가니스탄 담당 요원 거스트 애브라코토스(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분)를 만나 실무 도움을 받는다. 성격이 거칠고 다혈질이지만, 이 분야에 오랜 경험을 가진 노련한 거스트는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의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제 무기가 노골적으로 공급될 경우, 소련과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결국, 이들은 이스라엘 이집트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당시 소련제 무기를 확보할 수 있는 나라들을 설득해 소련제 무기를 아프간 반군에게 공급할 작전을 세운다. 찰리는 이집트에 벨리댄서까지 동원하는 등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관련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또한 조앤의 도움으로 미 하원 국방위원장을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데려가 예산 편성에 동의하게 만든다.

마침내 아프간 반군에게 스팅어 미사일, 밀란 대전차미사일 등이 성공적으로 공급됐고 그 결과 1987~88년 소련 헬기와 전투기, 탱크가 수십대씩 파괴된다. 결국 1988년 4월14일 소련은 제네바협정에 서명하면서 철군하고,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상 소련을 물리친 최초의 나라가 된다. 이후 찰리는 전후(戰後) 아프가니스탄의 발전을 위해 학교를 세울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세운 공로에 대해 CIA로부터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명예직원증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찰리의 노력 덕분에 무기와 군사훈련을 지원받은 아프간 반군이 훗날 ‘탈레반’이 되어 정부를 장악하고, 급기야 2001년 9·11테러로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하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결과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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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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