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0일 이명박 대통령이 백용호 신임 국세청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가인갤러리는 올 1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전군표 전 청장에게 고가의 그림인 ‘학동마을’을 상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당시 전 전 청장의 부인은 “남편이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 초 한상률 당시 국세청 차장이 인사청탁 명목으로 그림을 선물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6년간 청와대 근무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대를 나온 안 국장은 대구지방국세청 총무과장으로 있던 1999년 청와대에 들어갔고 2005년까지 만 6년을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행시 26회인 그는 이미 2005년에 대기업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을 맡았고 이듬해 7월에는 대구지방국세청장에 올랐다. 행시 동기들보다 5, 6년 빠른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러나 이런 초고속 승진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독이 됐다. 우선 적이 많아졌다. 특히 2007년 12월 정권이 바뀌면서 그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정권교체기에 국세청장을 맡았던 한상률 전 청장은 안 국장을 위험한 경쟁자로 인식했고 경계했다는 전언이다. 당시 국세청 내에서는 반(反)한상률파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안 국장을 꼽는 시각이 많았다.
한 전 청장은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데 안 국장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4월1일 단행된 국세청 인사는 이런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안 국장은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사실상 강등됐다. 지방청장을 지낸 사람은 보통 본청 국장으로 가는 것이 국세청의 오랜 인사관행이었다. 당연히 국세청 내에서는 말이 나왔다. 전 정권에서 소위 잘나갔던 인사에 대한 청소가 시작됐다는 시각이 많았다. “조금 쉬었다가 가는 게 안 국장에게도 좋다”는 동정론도 있었다. 여하튼 이 인사를 계기로 안 국장과 한 전 청장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게 됐다.
지난해 12월 터진 그림로비 사건으로 한 전 청장이 불명예 퇴진할 당시 안 국장이 오해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이 터진 직후 안 국장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변했지만 사실여부와는 무관하게 국세청 내에서는 ‘안 국장의 기획’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사실 한 전 청장과 등을 진다는 것은 당시 국세청 분위기를 생각하면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은 조직 장악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요직을 거치며 주변에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었고 한 전 청장의 후광으로 승진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한 전 청장과 대립할수록 안 국장은 외로워졌다.
국세청 특유의 ‘패밀리 의식’도 안 국장을 궁지로 몰았다. 올 1월 인사를 앞두고 국세청 내에서는 공공연히 “조직을 흔든 책임을 지고 안 국장이 물러나는 게 좋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안 국장은 한 전 청장의 낙마 직후 단행된 인사에서 미국국세청(IRS) 파견 대기발령을 받았다.
최고위층에서 인지하시고…
하지만 면죄부 같았던 당시 인사는 안 국장에게 닥칠 긴 시련의 시작이었다. 물론 미국 파견 근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어시험(토익)에 번번이 떨어진 것이 이유가 됐지만, 사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미 이때부터 안 국장에 대한 사퇴압력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림로비 사건도 이유가 됐지만 지난 정권에서 잘나간 것에 대한 일종의 시기심이 국세청 내에 팽배했다는 것이다. “누릴 것 다 누린 사람”이라는 게 국세청 내부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이와 관련, 지난 8월4일 조세일보는 “허병익 국세청장 직무대행은 감찰과장을 시켜 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안 국장에게 사표를 낼 것을 종용, 안 국장과 국세청 상층부와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안 국장은 사표제출을 강력히 거부하며 “명예회복을 위해 반드시 미국 파견을 가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인갤러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안 국장은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안 국장은 11월6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국세청이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사퇴를 압박했다”고 주장하며 국세청 감사관과의 통화내용까지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에 명퇴를 하시면) 삼화왕관이라든지 이런 쪽에 자리를 드리는 걸로, 만약에 안 나가시면 지금까지 해오던 조치가 될 가능성이 많거든요. 저희가 듣기에도 최고위층에서 상당히 다 인지하시고….”(국세청 감사관)
안 국장에 대한 국세청 차원의 감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이 많다. 일단 백용호 청장이 들어선 이후 안 국장에 대한 감찰이 본격화했다는 게 정설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백 청장이 안 국장 문제를 이현동 차장에게 일임한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0월 초, 이미 안 국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국세청에 대한 반격을 준비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백 청장의 의지가 담긴 감찰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는 사람과는 일을 못하는 성격의 백 청장이 안 국장의 퇴진을 처음부터 원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백 청장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줬다.
“백 청장은 문제 있는 사람, 인사청탁 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죠. 청장 내정 사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어떤 국세청 간부가 소식을 듣고 여권의 고위인사를 통해서 백 청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답니다. 그런데 백 청장이 청탁을 받은 직후 그 국세청 간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거예요. ‘인사청탁 하지마라’고. 그 간부 기분이 어땠겠어요. 백 청장 성격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안 국장같이 의혹이 있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국세청 주변에서는 안 국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국세청 감사팀의 작품’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국장이 공개한 감사관의 목소리도 이를 뒷받침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국세청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청와대나 검찰이 사전에 내용을 알고 국세청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쨌건 중요한 사실은, 눈엣가시 같은 안 국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세청이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