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안원구 국장, 백용호 청장 독대 간절히 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국세청 국장 검찰수사 내막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9-12-02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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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 청장 취임 후 본격적으로 ‘안 국장 죽이기’ 감찰 시작
    • “안 국장, 이현동 차장이 이번 사건 주도한다 믿어”(안 국장 지인)
    • 안 국장, 전방위 구명 활동 실패하자 국세청에 반격 준비
    • 안 국장에 자리 제의한 삼화왕관은 ‘세우회’가 세운 두산그룹 계열사
    • 백 청장, 인사 청탁 간부에 ‘청탁 하지마라’ 문자메시지 보내기도
    “안원구 국장, 백용호 청장 독대 간절히 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지난 7월20일 이명박 대통령이 백용호 신임 국세청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안원구(49) 국세청 국장은 세무조사 대상 기업을 상대로 미술품을 강매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안 국장의 부인인 홍OO씨가 운영중인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가인갤러리를 통해서라는 게 검찰 측의 설명.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김기동 부장검사)는 11월2일 가인갤러리와 안 국장의 자택, 관련기업 등 4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안 국장 부부를 출국금지했다. 의혹의 핵심은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미술품의 가격을 부풀려 팔았다(뇌물수수)’는 것이다.

    가인갤러리는 올 1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전군표 전 청장에게 고가의 그림인 ‘학동마을’을 상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당시 전 전 청장의 부인은 “남편이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 초 한상률 당시 국세청 차장이 인사청탁 명목으로 그림을 선물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6년간 청와대 근무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대를 나온 안 국장은 대구지방국세청 총무과장으로 있던 1999년 청와대에 들어갔고 2005년까지 만 6년을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행시 26회인 그는 이미 2005년에 대기업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을 맡았고 이듬해 7월에는 대구지방국세청장에 올랐다. 행시 동기들보다 5, 6년 빠른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러나 이런 초고속 승진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독이 됐다. 우선 적이 많아졌다. 특히 2007년 12월 정권이 바뀌면서 그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정권교체기에 국세청장을 맡았던 한상률 전 청장은 안 국장을 위험한 경쟁자로 인식했고 경계했다는 전언이다. 당시 국세청 내에서는 반(反)한상률파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안 국장을 꼽는 시각이 많았다.



    한 전 청장은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데 안 국장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4월1일 단행된 국세청 인사는 이런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안 국장은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사실상 강등됐다. 지방청장을 지낸 사람은 보통 본청 국장으로 가는 것이 국세청의 오랜 인사관행이었다. 당연히 국세청 내에서는 말이 나왔다. 전 정권에서 소위 잘나갔던 인사에 대한 청소가 시작됐다는 시각이 많았다. “조금 쉬었다가 가는 게 안 국장에게도 좋다”는 동정론도 있었다. 여하튼 이 인사를 계기로 안 국장과 한 전 청장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게 됐다.

    지난해 12월 터진 그림로비 사건으로 한 전 청장이 불명예 퇴진할 당시 안 국장이 오해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이 터진 직후 안 국장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변했지만 사실여부와는 무관하게 국세청 내에서는 ‘안 국장의 기획’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사실 한 전 청장과 등을 진다는 것은 당시 국세청 분위기를 생각하면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은 조직 장악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요직을 거치며 주변에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었고 한 전 청장의 후광으로 승진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한 전 청장과 대립할수록 안 국장은 외로워졌다.

    국세청 특유의 ‘패밀리 의식’도 안 국장을 궁지로 몰았다. 올 1월 인사를 앞두고 국세청 내에서는 공공연히 “조직을 흔든 책임을 지고 안 국장이 물러나는 게 좋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안 국장은 한 전 청장의 낙마 직후 단행된 인사에서 미국국세청(IRS) 파견 대기발령을 받았다.

    최고위층에서 인지하시고…

    하지만 면죄부 같았던 당시 인사는 안 국장에게 닥칠 긴 시련의 시작이었다. 물론 미국 파견 근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어시험(토익)에 번번이 떨어진 것이 이유가 됐지만, 사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미 이때부터 안 국장에 대한 사퇴압력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림로비 사건도 이유가 됐지만 지난 정권에서 잘나간 것에 대한 일종의 시기심이 국세청 내에 팽배했다는 것이다. “누릴 것 다 누린 사람”이라는 게 국세청 내부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이와 관련, 지난 8월4일 조세일보는 “허병익 국세청장 직무대행은 감찰과장을 시켜 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안 국장에게 사표를 낼 것을 종용, 안 국장과 국세청 상층부와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안 국장은 사표제출을 강력히 거부하며 “명예회복을 위해 반드시 미국 파견을 가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인갤러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안 국장은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안 국장은 11월6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국세청이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사퇴를 압박했다”고 주장하며 국세청 감사관과의 통화내용까지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에 명퇴를 하시면) 삼화왕관이라든지 이런 쪽에 자리를 드리는 걸로, 만약에 안 나가시면 지금까지 해오던 조치가 될 가능성이 많거든요. 저희가 듣기에도 최고위층에서 상당히 다 인지하시고….”(국세청 감사관)

    안 국장에 대한 국세청 차원의 감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이 많다. 일단 백용호 청장이 들어선 이후 안 국장에 대한 감찰이 본격화했다는 게 정설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백 청장이 안 국장 문제를 이현동 차장에게 일임한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0월 초, 이미 안 국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국세청에 대한 반격을 준비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백 청장의 의지가 담긴 감찰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는 사람과는 일을 못하는 성격의 백 청장이 안 국장의 퇴진을 처음부터 원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백 청장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줬다.

    “백 청장은 문제 있는 사람, 인사청탁 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죠. 청장 내정 사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어떤 국세청 간부가 소식을 듣고 여권의 고위인사를 통해서 백 청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답니다. 그런데 백 청장이 청탁을 받은 직후 그 국세청 간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거예요. ‘인사청탁 하지마라’고. 그 간부 기분이 어땠겠어요. 백 청장 성격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안 국장같이 의혹이 있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국세청 주변에서는 안 국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국세청 감사팀의 작품’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국장이 공개한 감사관의 목소리도 이를 뒷받침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국세청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청와대나 검찰이 사전에 내용을 알고 국세청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쨌건 중요한 사실은, 눈엣가시 같은 안 국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세청이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방위 구명운동

    ‘신동아’는 이번 사건에 대한 안 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안 국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신동아’는 최근 안 국장의 지인이자 백 청장과도 친분이 깊은 A씨를 통해 안 국장의 근황, 이번 사건과 관련된 국세청과 안 국장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은 A씨 와의 일문일답.

    ▼ 안 국장이 찾아와 여러 차례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들었습니다.

    “국세청에서는 나가라고 하니까. 어려운 상황이니까. (국세청 측에) 얘기를 잘 해달라는 거였죠.”

    ▼ 언제쯤 찾아왔나요.

    “대략 한두 달 됐습니다. 저를 찾아왔을 때 안 국장은 ‘국세청 감사실에서 자기에 대해 전방위로 조사를 하고 있어 힘들다’고 토로했어요.”

    ▼ 가인갤러리의 미술품 강매 의혹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나요.

    “자세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부당하게 자기를 내보내려고 한다고만, 억울하다고….”

    ▼ 안 국장이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 백 청장을 만났나요.

    “못 만났죠. 안 국장이 저에게 부탁한 게 바로 그겁니다. 백 청장하고 딱 한 번만 독대할 기회를 달라는 게 안 국장의 간절한 요구였어요. 그러면 모든 의혹에 대해 해명할 수 있다고요.”

    ▼ 백 청장에게 도움을 청하겠다?

    “그래서 내가 백 청장에게 안 국장의 뜻을 전했죠.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군요. 백 청장이 ‘만날 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하더라고요.”

    ▼ 왜 만날 수 없다는 거죠.

    “이유는 잘 모르죠.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까 (백 청장이) 이현동 차장에게 보고받은 내용을 신뢰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국세청 실세는 이 차장 이잖아요. 국세청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백 청장으로서는 이 차장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었겠죠.”

    ▼ 한 전 청장과 관련된 그림로비 사건에 대해서는 안 국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억울하다고 하죠. 우연히 언론에 노출된 사건인데, 여자들끼리 얘기하다가 나온 문제인데,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합디다. 백 청장을 만나서 그 문제도 꼭 해명하고 싶다고요. 계속 억울하다고…, 그 문제 때문에 국세청에서 계속 자기를 조사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 안 국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많은 곳에 본인의 구명을 위한 부탁을 하고 다닌 것 같아요.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누굴 만나 부탁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일이 잘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안 국장은 이번 일을 모두 이 차장이 주도한다고 믿고 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안 국장이 좀 억울한 상황인 것 같았습니다.”

    이 대목과 관련해 국세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안 국장은 전 정부에서 잘나갔던 사람이고 이 차장은 현재 실세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죠. 동향에다 경쟁관계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안 국장의 부인 홍OO씨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세청이 부당한 방법으로 남편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강매 확인서를 써주지 않으면 특별세무조사를 하겠다는 국세청의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는 하소연을 거래처로부터 들었다.…제 거래처를 압박해가지고 (내 남편의) 사표를 받아오라는 등, 저는 믿을 수가 없어요.”

    늦어지는 검찰 수사

    의욕적으로 시작됐지만, 현재 검찰 수사는 답보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가인갤러리에서 미술품을 사들인 중소건설사 4곳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은 미술품을 강매 당했다는 진술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건축법상 8억원어치 미술품만 설치해도 되는 상황에서 굳이 27억5000만원을 미술품 구입에 사용한 C건설사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C사 측은 계속 “수준 높은 조형물을 설치하기 위해 예전부터 미술비를 아끼지 않아왔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C건설사의 혐의를 입증한 뒤 역시 가인갤러리에서 미술품을 사들인 2~3개 대기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었던 검찰의 계획도 자연히 늦어지고 있다.

    국세청이 안 국장에게 자리 제의한 기업 ‘삼화왕관’

    국세청 감사관이 안 국장에게 자리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 ‘삼화왕관’은 납세병마개를 만드는 상장기업이다. ‘납세병마개’는 주류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을 피하려는 탈세 유혹을 사전에 막기 위해 국세청이 지정한 업체만 납세병마개를 생산하도록 하는 제도. 삼화왕관은 이 시장에서 사실상 독과점을 인정받고 있다. 삼화왕관은 전직 국세청 인사들의 모임인 ‘세우회’를 중심으로 1965년 창립됐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국세청 출신 인사들이 독점기업을 운영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1994년 두산그룹으로 대주주 지위를 넘겼다. 현재 두산은 특수관계인을 포함, 삼화왕관의 지분 47.76%를 소유하고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가 된 이후에도 삼화왕관에는 전직 국세청 인사들이 고위직을 차지해 왔다. 삼화왕관의 2009년 3·4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에도 평택세무서장을 지낸 안OO(58)씨가 상근 감사,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을 지낸 정OO(57)씨가 상근 부회장을, 서대문 세무서장을 지낸 안OO(60)씨가 상근 부사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세청은 5년에 한 번씩 납세병마개 업체를 지정해오고 있지만 삼화왕관과 삼화왕관에서 분리된 세왕금속공업(하이트맥주 24.85% 소유)이 매번 납세병마개 제조업체로 지정돼 사실상 독과점 체제로 운영돼왔다. 당연히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을 막는 불필요한 규제라는 의견이 오랫동안 제시됐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9월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제한적 진입규제 개선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납세병마개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키로 한 바 있다. 37년간 유지된 삼화왕관의 독점적 지위는 이로써 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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