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세 실장 vs 실세 수석·비서관·행정관
- 수석실 간 알력다툼 위험수위
- 관료그룹-공신그룹 간 불신
- 일부 측근, ‘공직윤리’ 의식 희박
- 성폭행, 폭행, 폭언…밝혀진 것 10건
고생하는 만큼 이들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자제력 없이 누리다 보면 일탈 행동으로 이어진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청와대의 기강해이는 문제가 되어왔다. 임기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장의 당부 다음날
최근의 기강해이 사례로 지목된 것은 현진권 시민사회비서관의 ‘근무지 무단이탈’ 건이다. 현 비서관은 평일인 10월23일 부인과 함께 제주 신라호텔에서 이틀간 열린 ‘2009년도 한국재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로, 한국재정학회 부회장을 지낸 그는 세미나에 ‘아주대 교수’ 자격으로 참석했다. 다만 그 시점에 이명박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었고, 제주도행을 상급자인 박형준 정무수석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 해외 순방시 청와대에 남는 참모들은 대통령실장의 지휘 아래 사실상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간다. 대통령이 없는 청와대를 지휘하고 있던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현 비서관의 무단이탈 사실을 몰랐다. 특히 정 실장은 현 비서관이 제주도 학회에 참석한 전날 직원조회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원들은 모든 사람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는 만큼 사소한 일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긴장감 속에 모든 일에 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훈시가 있은 지 하루 만에 현 비서관은 보고도 하지 않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10월6일에는 청와대 안에서 ‘폭언’ 사건이 일어났다. 청와대 비서동 건물인 위민2관의 2층 경제수석실 산하 경제금융비서관실에 사회정책수석실 소속 L 비서관이 들이닥쳤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L 비서관은 C 행정관의 이름을 부르며 “C, 이 ×× 누구야? 나와! 가만히 안 두겠다”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업무협의 중이던 윤진식 정책실장(경제수석 겸임)과 임종룡 경제금융비서관이 달려와 말렸다. 윤 실장은 L 비서관을 지휘하는 수석비서관은 아니지만 정책실장 자격으로 보면 직속상관이다. 그럼에도 L 비서관은 막무가내였다. 임 비서관이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진정하라”고 하자, L 비서관은 “뭐가 너무 하냐. 당신도 두고 보자”고 막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소란이 한참 동안 이어진 뒤 윤 실장이 L 비서관을 불러 임 비서관과의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L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모 금융기관 노조위원장을 지낸 뒤 2007년 대선 당시 MB 캠프의 최대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MB 캠프와 노동계를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L 비서관은 다혈질 성격 탓에 평소에도 다른 참모들과 자주 부딪쳤다.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L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참모 중 한 명”이라며 “특유의 급한 성격과 대통령 고향 사람으로서 권력창출에 일조했다는 자신감이 섞여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 L 비서관이 흥분한 이유다. 그때 알려진 바는 “여러 부처 장관이 함께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할 일이 있었는데, 보고 일정 조정을 맡은 C 행정관이 업무 관련성이 있는 L 비서관에게 사전에 상의하지 않아 화가 치밀었다”는 정도였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에게서 구체적인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폭언의 배후는 알력다툼
“당시 경제수석실에서 사회정책수석실 L 비서관의 소관 업무인 노사 관련 내용을 L 비서관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검토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L 비서관이 무슨 내용이 보고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보고 일정 조정을 맡은 C 행정관으로부터 ‘보고 자리에 배석하라’는 통보만 받았다. 그러자 화가 치민 L 비서관이 따지러 갔다가 분을 삭이지 못해 폭언을 한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경제수석실에서 ‘언론 플레이’를 한 것 같다는 점이다. 그때 한 신문이 당시 상황을 생중계하듯이 보도했는데, 누군가 작심하고 흘리지 않았으면 취재가 불가능한 내용이었다.”
이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청와대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읽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일은 경제수석실이 노사정책까지 주도하려 하자 해당 비서관실이 반발한 일종의 주도권 경쟁, 알력다툼에서 비롯됐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없다.
여기다 만일 언론플레이까지 일어난 게 사실이라면 청와대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다. L 비서관이 거칠게 대응한 책임이 크지만 그렇다고 내부의 업무혼선으로 빚어진 일을 놓고 외부에 고자질하듯 발설한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 조직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이번 폭언 사건은 최근 청와대가 각 비서관실에 공보담당자를 두기로 방침을 정한 배경 중 하나로 알려졌다. 공보담당자 신설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반대하는 사안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청와대 조직의 고질적 문제인 정부관료 출신과 대선 공신들 간의 불신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는 의미도 있다. 청와대 참모진은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 그룹과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언론계에 몸담았다 대선 캠프에서 일한 인연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공신그룹으로 나뉜다. 통상 집권 초기에는 구성 비율이 비슷하지만 임기 말로 갈수록 관료 출신이 많아진다.
관료그룹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신그룹에 대해 불신을 갖게 마련이다. 반면, 공신그룹은 관료그룹의 정치력 부족을 비판한다. L 비서관은 공신그룹이고, 2008년 7월까지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임 비서관은 관료그룹에 속한다.
L 비서관 사건이 보도되자 이 대통령은 격노했다. 이 대통령은 10월1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사건을 보고받고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청와대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은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며 “위계질서를 어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만큼 엄중하게 ‘행정적 징계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또 이 사건을 언론 보도 전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정정길 실장과 윤진식 실장을 질책하고 L 비서관을 직접 불러 불호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다음날에는 부처 장관들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줬다.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공직자들은 섬기는 자세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장관부터 솔선수범해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철저히 섬김과 봉사의 정신으로 임해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盧정권 때 들어온 사람?
정정길 대통령실장.
이에 앞서 인사비서관실 소속 모 행정관은 9월29일 새벽 술에 취한 상태에서 택시기사와 시비를 벌여 경찰지구대까지 갔다.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청와대에 파견 근무 중이던 이 행정관은 만취 상태에서 택시기사와 말싸움을 벌이다가 폭행을 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 전날에도 정 실장은 “대통령 지지율이 오를수록 청와대 직원들이 겸손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지어 청와대 내부 감찰을 이끄는 선임행정관이 운전 중 앞 차 운전자와 시비가 붙어 폭력을 행사한 일도 있었다.
정 실장은 11월12일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기강해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조금 어색한 하소연을 했다. 그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게 있다. 청와대에 근무하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됐을 일들로, 사생활에서 일어난 조그만 잘못으로 파면되는 등 지나치고 과중한 문책을 당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일반인보다는 높은 도덕성과 올바른 몸가짐이 요구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란 지적이 없지 않다.
청와대 참모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한 사례도 많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파견됐던 국정기획수석실 산하 방송정보통신비서관실 P 행정관은 지난 7월 KT, SK, LG 등 통신 3사의 대외협력 담당 임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에 250억원의 기금을 출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샀다. 이 협회의 김인규 회장은 이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으로, KBS의 차기 사장 물망에 올랐던 인물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대통령의 측근인사 출신이 이끄는 이익단체를 위해 민간기업을 압박한 꼴이 됐다.
국정기획수석실은 “해당 행정관이 IP-TV 진흥 방안을 놓고 회의를 주재하다가 기금출연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협회 측과 통신사 사이에서 중재를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행정관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었다. 연초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은 “용산 참사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활용하라”는 e메일을 경찰청에 보내기도 했다.
청와대의 기강해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은 지난 3월 발생한 행정관의 ‘성 접대’ 파문이었다. 당시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두 사람이 서울 신촌 한 룸살롱에서 케이블 업체 관계자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후 2차로 성매매를 하려다 경찰에 적발되어 망신을 당했다.
청와대는 이처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자 전 직원을 상대로 ‘100일 감찰’을 실시했다. 배건기 선임행정관을 팀장으로 하는 감사팀은 외부 사정기관의 협조를 받아 400여 명에 달하는 청와대 직원을 샅샅이 캤다. 일탈행위가 의심되는 일부 참모에 대해선 미행을 실시했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당시 청와대의 내부 기강잡기는 공직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관가의 암행어사’로 불리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주도해 고위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직무사정과 감찰을 실시하는 바람에 공직사회가 벌벌 떨었다.
100일 감찰의 약발
그러나 100일 감찰에서 눈에 띄는 결과물은 거의 없었다. 몇몇 행정관이 적발돼 그 직후에 단행된 대통령실 인사에서 다른 기관으로 옮기거나 청와대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일정 기간 청와대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참모들이 몸조심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가능한 한 외부 기관과의 접촉을 끊고 술자리도 줄였다. 식사 자리에서도 주로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그러나 100일 감찰의 약발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조직이 느슨해진 징후는 여럿 있다. 연말연시 인사를 앞두고 일부 부서에서는 동료들끼리 권력 실세에게 경쟁적으로 ‘인사로비’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사가 매긴 인사고과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하급자들도 있다고 한다. 어떤 참모들은 업무에 매달리기보다는 외부 기관으로의 이적이나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줄을 대기 위해 기웃거린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바닥을 친 뒤 올라가면서 현 정권은 집권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청와대에서 기강해이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구조적 측면이다. 청와대는 공직사회는 물론 민간기업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권력남용과 돈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과거 정권에서도 청와대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권 초반 청와대 비서실 직원 가족이 소방헬기를 타고 새만금을 시찰해 물의를 빚었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서 상황실에 건 전화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전속사진사는 국정원 간부 전원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인터넷 신문에 넘겨줬다. 2006년 3월17일 홍보수석실 행정관이 아내를 살해한 전무후무한 사건이 터져 청와대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일벌백계’를 천명하며 기강잡기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음주운전이나 폭행사건이 이어졌다. 골프금지령 속에서 골프를 치다 들통 나기도 했다. 특히 노무현 정권 땐 기밀 문건이 외부로 새 나가는 기강해이 사건이 잇따랐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서를 외부에 유출한 행정관이 있었는가 하면, 외교안보 기밀사항이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넘어가기도 했다.
“실업자 만들란 말이냐”
이명박 정권 들어선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는 다른 특성 때문에 청와대에서 사고가 빈발한다는 견해도 있다. 먼저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CEO 때와 서울시장 시절부터 사람을 한번 쓰면 웬만해선 내치지 않고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각이나 청와대 개편이 다른 정권에 비해 뜸한 것도 이런 인사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L 비서관 폭언 사건이 터졌을 때 이 대통령은 크게 화를 내면서도 “엄중하게 행정적 징계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행정적 징계’를 언급한 것은 청와대를 떠날 정도의 중징계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L 비서관은 ‘경고’만 받았다.
말썽을 일으킨 다른 참모들에 대한 징계도 비교적 가벼웠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청와대 기강해이 사건의 원인을 “제 식구 감싸기식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진단했다. 우 의원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경호처 소속 박모 경무관의 회식자리 여성경호원 성추행 사건 이후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기강 해이에 따른 징계 조치가 수차 있었으나 ‘원대복귀’ 또는 ‘서면경고’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기강이 흐트러진 청와대 참모들에게 원대복귀나 경고 정도의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는 속사정도 있다. 한 선임행정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이 기강해이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건 잘못 알고 하는 말이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일벌백계를 지시하고 있다. 다만 실제 징계를 내리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 먼저 정치권 등에 있다가 별정직으로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 중징계를 내리라는 것은 곧 청와대에서 퇴출시키라는 말인데, 당사자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조직을 떠날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여론을 의식해 직장을 잃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참모들은 원대복귀 조치 자체가 중징계다. 청와대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공직자는 소속 부처에 돌아가서는 시쳇말로 ‘찍혀서’ 공직생활 내내 부담을 안는다.”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외에 정 실장의 성향으로 인해 기강해이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학자 출신인 정 실장이 하도 부드러운 탓에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참모의 수장으로서 군기반장의 역할도 맡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림자형 실장’인 정 실장은 직원회의 때마다 청와대 참모들의 올바른 처신을 당부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가장 무거운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그다지 먹히지 않는다. 실제로 중징계를 내리는 일도 드물다.
류우익 실장의 카리스마
반면, 류우익 초대 대통령실장(주 중국 대사 내정자) 시절에는 나름대로 청와대에 군기(?)가 잡혀 있었다. ‘실세형 실장’인 그는 조직 장악을 위해 청와대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까지 모두 보고받은 뒤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곽승준 당시 국정기획수석이 몇 가지 사안을 류 실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상의했다 공개석상에서 크게 질책당한 일이 대표적이다.
정 실장의 조직 장악력 부족은 MB 정권의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이른바 ‘실세’들이 대거 등장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실세들이나 실세들의 측근이 권한을 행사하는 바람에 대통령실장이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권력사유화 발언을 하면서 지목한 인물도 이상득 의원 외에 류우익 당시 대통령실장, 박영준 당시 기획조정비서관, 장다사로 당시 정무1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들이었다. 지금도 청와대 안에는 SD(이상득 의원)계, 이재오계 등 정치색을 띤 참모가 다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현 청와대를 보면 ‘허세 실장’ 밑에 ‘실세 수석’ ‘실세 비서관’은 물론 ‘실세 국장’도 포진해 있는 것 같다. 그런 구조에서 실장의 말이 제대로 통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기강해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청와대 참모들의 ‘공직윤리 불감증’이다. 근무지 이탈 사건이 불거지자 당사자인 현 비서관 측은 “학회 참석도 큰 틀에서 보면 시민사회비서관의 업무 영역에 속한다”고 항변했다.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는 자세가 아쉬운 대목이다.
청와대도 개선 노력은 기울이고 있다. 최근 근무기강 강화를 위한 복무지침도 새로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 지침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상사에게 보고하고, 주요 정보의 발설을 금지하며, 뉴스를 자주 접해 언론 감각을 익힐 것 등이 담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복무지침만으로 기강이 잡힐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정운영 3년차로 들어가는 내년이 고비다. 과거 정권에서도 집권 중반기 청와대에선 큼직한 사건사고가 터졌다. 대통령실 한 참모는 “대통령실장이 일벌백계를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