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계파 연대로 출범한 ‘젊은 조계종’, 순항할까

  • 안기석│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daum@donga.com│

    입력2009-12-06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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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불교 대표적 종단인 조계종의 자승 신임 총무원장은 유례없는 압도적 지지로 선출됐다. 유력한 경쟁 후보도 설득해낸 그의 정치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조계종 4대 종책모임인 화엄회, 무량회, 무차회, 보림회의 실체는 무엇이며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연대하게 됐을까.
    • 신임 총무원 집행부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와 개혁의 물꼬를 틀 것인가.
    계파 연대로 출범한 ‘젊은 조계종’, 순항할까

    조계종 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투표하는 선거인단

    한국 25개 불교종단 중 대표 종단인 조계종에 최근 ‘젊은 집행부’가 출범했다. 신임 총무원장부터 주요 간부인 부실장들이 모두 40~50대다. 제33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자승(慈乘)스님과 총무부장인 영담(影潭)스님이 55세, 기획실장인 원담(圓潭)스님이 49세, 재무부장인 상운스님이 58세, 사회부장인 혜경스님이 49세, 문화부장인 효탄스님이 54세다. 50대 총무원장이 탄생한 것은 10여 년 만의 일이다.

    세랍(世臘·승려들의 세속 나이)이 젊어졌다고 조계종단에도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 것인가. 이에 대해선 긍정적인 기대와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여건에서는 긍정적이다. 신임 총무원장이 선거사상 유례없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됐기 때문이다.

    1994년 조계종단 개혁 이후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28대 월주(月珠)스님부터 32대 지관(智冠)스님까지 역대 총무원장은 모두 지지율 60% 선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10월22일 33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자승스님은 선거인단 321명 중 90.34%인 290명의 지지를 받았다. 형식은 경선이었지만 실제로는 ‘합의추대’나 다름없었다. 역대 선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계파 간의 갈등이나 충돌 양상도 볼 수 없었다. 조계종단 일부에서는 “원융화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다수의 기득권이 뭉친 야합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승스님이 현 정부에 책잡히지 않으려는 불교계의 위기감을 바탕으로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 주효했다”는 일반적인 평가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파 연대로 출범한 ‘젊은 조계종’, 순항할까

    11월5일 총무원장 취임식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자승스님

    자승스님에 대한 조계종단 내의 여론을 종합하면 ‘화합을 이끌어낼 줄 아는 정치의 달인’으로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선거 과정을 지켜본 서울 지역의 한 스님은 “자승스님은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무색무취한데 정치력이 대단하다. 4대 종책모임뿐 아니라 강력한 경쟁 후보까지 설득해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종책(宗策)모임이란 조계종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파모임이다. 조계종단의 기구는 크게 총무원(행정기능 담당), 종회(입법기능 담당), 호계원(사법기능 담당)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국회에 해당하는 것이 종회이며 국회의원 역할을 하는 게 종회의원이다. 이들 종회의원이 중심이 돼 생각과 활동 방향이 비슷한 스님들이 만든 모임이 바로 종책모임이다.



    이 종책모임은 처음에는 친목회로 출발했다가 현재는 종단의 정책을 개발하고 각종 대외활동을 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임의단체로서 주로 ‘물밑’에서 활동하다보니 “선거 때마다 편 가르기를 한다”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종책모임 명의로 공개적인 세미나를 열거나 사회활동도 한다. 종단 내 정당 기능을 하는 셈이다.

    현재 활동 중인 종책모임은 화엄회(華嚴會), 무량회(無量會), 무차회(無遮會), 보림회(寶林會)로 모두 4개. 지난번 지관 총무원장 시절에는 무량회, 화엄회, 무차회가 느슨하게 연대해 여당 역할을 했다면 보림회와 이미 해체된 금강회가 야당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림회와 무소속까지 화엄회 소속의 자승스님을 지지하고 나섰다. 보림회 핵심인 영담스님의 말이다.

    “무차회의 원담스님이 올해 초에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했어요. 만나서 얘기해보니 종단 안팎의 정황으로 볼 때 60~70대에서 총무원장을 맡기는 어렵고 자승스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데 뜻을 같이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1등 공신’은 원담스님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다. 좀 더 깊은 내막을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 7월에 동국대 신임 이사장으로 부산 내원정사 정련(定鍊)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는데 이것이 야당 역할을 하던 보림회가 여당 주류 측과 연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보림회에서 지지하는 스님이 이사장직에 앉으면서 모든 문제가 풀렸다”고 전했다.

    자승스님의 정치력은 중간에 사람을 내세워 계파 간의 이해관계를 조절해내는 범위를 넘어선다. 필요할 때에는 경쟁자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편이다. 화엄회 소속 덕문스님의 말이다.

    “실명을 말할 수는 없지만 유력한 상대후보들을 직접 찾아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압니다. 그 결과 지난 4,5월에 자승스님을 추대하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됐습니다. 화엄회와 무차회가 연대하고 이어서 무량회와 연대하고 무차회와 보림회가 연대하면서 대세는 결정된 겁니다.”

    무량회 소속의 전 종회의장 법등(法燈)스님은 일찍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마지막 경쟁자로 손꼽히던 월정사 주지 정념(正念)스님도 끝내 뜻을 접었다.

    자승스님이 한때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명진(明眞)스님이 주지로 있는 서울 강남의 봉은사 뒷방에서 기거한 일화는 흥미롭다. 연주암 회주였던 자승스님이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서울 시내에서 활동하다가 밤이 되면 연주암으로 매번 올라가기가 힘드니 봉은사 뒷방을 내달라고 요청했는데 명진스님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밤마다 머리를 맞대고 종단 발전을 위해 의논할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천일기도’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시국발언’으로 언론의 조명을 한몸에 받았던 명진스님은 천일기도를 마치자마자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한 뒤 홀연히 강원도 선방으로 들어가 참선을 하다가 신임 총무원장 취임식에 참석했다. 불교계에서는 “명진스님이 자승스님을 배려해 선거운동 기간에 서울을 떠나준 것”으로 소문이 났다.

    김선두 불교신문 편집국장은 자승스님의 리더십 형성 배경에는 은사였던 정대(正大)스님이 있다고 평가했다.

    “조계종 역사상 최고의 사판승이었던 정대스님으로부터 종단 정치와 행정을 배운 겁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국무총리 격인 총무부장을 맡으면서 조계종 전반의 행정 경험을 쌓았고 국회의장 격인 종회의장을 맡으면서 집행부와의 관계를 조율해내는 정치력을 익힌 겁니다. 이처럼 행정력과 정치력을 겸비했으니 합의추대된 거지요.”

    자승스님 취임 후 어려운 이웃 먼저 찾아

    계파 연대로 출범한 ‘젊은 조계종’, 순항할까

    조계종 33대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적을 두지 않는 ‘정치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조계종단의 역사를 보면 큰 흐름이 몇 번 있었다. 1947년에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는 선(禪)수행 중심의 청정가풍을 일으켜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불교정화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1955년에는 정화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승려대회가 조계사에서 열렸다. 그 후 1986년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궐기한 해인사승려대회는 불교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승려들과 재가불자들은 각종 단체를 만들어 사회정치적인 활동을 했다. 1994년에는 3선으로 독주하던 의현(義玄) 총무원장을 사퇴케 한 종단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종헌과 각종 제도를 개혁하고 젊은 승려들과 불자들이 종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8월27일에는 현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사과와 시정을 요구한 ‘범불교대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 그동안 내연하던 불교계의 민심이 당시 총무원장이던 지관스님이 탄 승용차 불심검문 사건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그 후 정부는 불교계의 ‘분노’를 풀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범불교대회에 대해서는 유례없이 많은 승려가 거리로 나와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불교 자체의 이슈에만 치중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면 전 승객의 환호를 받으며 출범하는 ‘자승호(號)’는 어떤 항로를 선택할까. 자승 총무원장은 11월5일 취임식에서 총무원 활동방향을 ‘소통과 화합, 그리고 불교중흥’이라고 밝혔다. 밖으로는 빈부격차와 개발 만능주의로 갈등이 깊어지는 사회와 소통해 화합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안으로는 전환기에 있는 조계종단과 불교의 중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자승스님의 당선 후 첫 행보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의료시설인 요셉의원과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사회복지시설인 ‘보현의 집’을 방문한 일이었다. 이어 ‘용산 참사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한 뒤 정화운동을 주도했던 도선사의 청담스님 부도비와 적조사의 경산스님 부도비를 찾았다.

    동선을 보면 어려운 이웃을 먼저 찾았음을 알 수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용산 참사현장을 방문한 것에 대해서는 불교계 내외에서 모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자승스님의 활동이 종단 위주였기 때문이다. 총무원 기획실에서는 당분간 총무원장의 행보가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을 찾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승스님이 속한 화엄회는 4개 종책모임 중 회원수가 가장 많은 모임이다. 현재 회원수는 약 80명으로 이 중 종회의원은 21명, 주지스님은 35명을 넘어선다. 따라서 화엄회의 활동 방향은 자승스님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화엄회는 2004년 종단 발전과 사회통합을 내세우며 출범했다. 전신인 최대 계파 일승회가 종회의원 중 다선 출신이 많아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중도적인 생각을 가진 스님들이 분리해 나왔다. 초대회장은 장주스님이 맡았는데 자승스님과 종삼스님이 핵심으로 활동했다. 화엄사, 수덕사, 관음사, 불국사, 용주사 소속의 종회의원 스님들이 대거 합류했는데, 출범 초기에 불국사나 용주사에서 차기 총무원장직을 노리고 종회 안에 기반을 마련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재 회장은 도공스님, 부회장은 정묵스님(수덕사)과 성월스님, 지도위원은 오현스님(신흥사)이 맡고 있다. 정호스님(용주사), 성타스님(불국사), 종삼스님(화엄사)과 돈관스님(은해사), 정여스님(범어사) 등 8명의 교구본사 주지스님이 고문을 맡고 있다. 소속 회원들은 교구본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전통사찰과 승가대학, 불교대학, 포교당과 복지시설 등 종단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화엄회는 포교와 해외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2006년에는 ‘한국불교 미래를 준비한다’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어 서울 강남 등 취약지역의 포교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가난한 제3세계 지원을 위해 ‘화엄세계’라는 지원단체를 만들려다 대신 캄보디아 등지에 이미 진출해 있는 성관스님의 로터스월드와 월주스님의 지구촌공생회를 돕고 있다.

    현 총무원 집행부는 종책모임 연대의 산물

    현 총무원 집행부는 종책모임 연대의 산물이다. 수석부장인 총무부장은 보림회 소속의 영담스님, 정책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기획실장은 무차회 소속의 원담스님, 호법부장은 화엄회 소속의 덕문스님, 사회부장은 무량회 소속의 혜경스님, 문화부장은 비구니를 대표하여 효탄스님이 맡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영담스님이다.

    자승스님 당선 직후 총무부장 자리는 보림회나 무차회에서 맡을 것이라는 관측은 있었지만 영담스님이라고 지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불교신문 사장, 불교방송 이사장, 동국대 이사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는 종단 내 거물급이 총무부장을 맡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 영담스님은 자신이 총무부장을 맡은 배경에 대해 “보림회 내 60대 중에서 적합한 분을 물색했는데 마땅한 분이 없고 시간에 쫓겨 맡게 됐다”고 말했다. ‘메가톤급 인사’가 있을 거라고 예고했던 자승스님도 “총무원은 총무부장을 중심으로 움직여달라”며 영담스님에게 힘을 실어줬다. 영담스님은 “수석부장으로서 화합과 조화를 이루고 정부와도 대립과 갈등보다는 대화를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영담스님과 자승스님은 1992년 10대 종회 때 초선의원으로 같이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1994년 종단 개혁 때에는 영담스님은 개혁회의 쪽이었고 자승스님은 반대쪽에서 활동해 잠시 멀어지는 듯했으나 1998년 자승스님이 총무원 재무부장을 맡았을 때 영담스님은 불교신문사장으로서 다시 사이가 가까워졌다. 자승스님이 상좌로서 모시던 정대스님을 30대 총무원장으로 추대할 때에는 영담스님이 적극 지원했다.

    영담스님이 주축인 보림회는 종회 내에서 소수파인데 법장(法長)스님과 지관스님 체제하에서 8년 동안 야당 생활을 했다. 전신인 무등회에서 분화해 출범한지 10여 년 되는데 중도개혁 성향이다. 지난 대선 때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대선공약인 대운하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폐기를 촉구했고, 지난해에는 총무원장 차량 검문으로 촉발된 ‘종교편향’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등 대(對)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편이다. 정부의 문화재 관람료 폐지 때 반대 목소리를 담아 종책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회장은 종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지준스님이며 도완스님과 학담스님 등 12명의 종회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소속 회원들은 해인사와 쌍계사, 동국대와 불교방송에서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 보림회는 승려 노후복지에도 관심이 많으며 영담스님이 공동대표로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와 손잡고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조계종의 활동 방향을 기획하고 홍보 하는 기획실을 책임지고 있는 원담스님의 비중도 작지 않다. 조계사 주지를 역임한 원담스님은 무차회 소속이다. 무차회는 초·재선 의원이 많은 개혁적인 성향의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무차회도 일승회에서 화엄회가 분리돼 나간 후 분가해 나왔지만 전두환 정권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연관이 깊다.

    무차회는 2006년 11월 14대 중앙종회 개원을 앞두고 출범했다. 출범 당시 회장을 맡았던 동광스님이 현재도 회장을 맡고 있다. 중앙종회 의장을 맡았던 보선스님과 성관스님, 도문스님, 정범스님 등 종회의원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32대와 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무량회, 화엄회와 함께 연대활동을 벌였다. 무차회는 출범 당시부터 합리적인 종회 운영 방안을 제시했고 사회법으로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본말사 주지는 해임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지난 3월 종회 임시회 때는 여비로 받은 돈을 모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인 ‘아름다운 동행’에 기부했고 이번 총무원장 선거에서는 선거인단이 여비를 받지 않겠다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최대 계파 자리는 무량회에서 화엄회로

    사회부장직이 돌아간 무량회는 지난 총무원장 시절에는 최대 조직이었다. 원융회-일승회로 이어지는 종회의 주류 계파였다. 일승회는 법안(法眼)스님 등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소속 스님들과 법등스님, 장윤스님 등 직지사단에 속하는 스님들, 그리고 일부 무소속 스님들이 모여 출범시킨 조직이다. 직지사단은 총무원장과 동국학원 이사장을 세 번이나 연임한 직지사 회주였던 녹원(綠園)스님을 따르는 스님들로 구성돼 있다. 이 일승회의 계보를 이은 무량회가 출범한 것은 2006년 11월경. 14대 중앙종회 개원과 동시에 발족했다.

    계파 연대로 출범한 ‘젊은 조계종’, 순항할까

    여야 정치권 대표들이 모두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식에 참석했다.

    이후 무량회는 종단의 핵심으로 활동했으나 지난 7월초 총회를 열어 자체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의하고 화엄-무차-보림회와 손을 잡았다. 자기 계파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바람에 이번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면서 최대 계파 자리는 무량회에서 화엄회로 넘어갔다.

    현재 무량회 회장은 얼마 전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을 펴낸 대구 선본사 주지 향적스님이 맡고 있고 진화스님, 법광스님, 태연스님 등이 함께 이끌고 있다. 종회 최다선인 정휴스님을 비롯해 6선의 장윤스님 등 16명의 종회의원이 활동 중이다. 다선 의원이 많은 탓에 보수적인 성향으로 평가된다. 고문에는 법등스님을 비롯해 성웅스님(직지사)과 허운스님(동화사), 영조스님(송광사) 등 주지 다수가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회원은 30여 명이다.

    다선 의원이 많은 무량회는 그동안 종회에서는 각종 입법활동에 주력하고 해외로 나가서는 몽골 간단사에 고아원 ‘무량자비원’ 건립을 지원했으며 국내 거주 몽골 불자들을 위해서는 서울에 법당과 쉼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총무원 집행부는 아니지만 교육원장을 맡은 현응(玄應)스님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현응스님은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당시 교육원을 총무원에서 분리하는 밑그림을 그린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출신으로 조계종의 대사회적 활동에서도 목소리를 내왔는데 이번에 조계종의 승가교육 제도와 실무를 총괄하게 된 것이다.

    총무원의 주요 직책을 맡은 스님들의 성향과 소속 계파 모임의 성격만 보면 정치적 성향의 큰 축이 개혁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무량회의 힘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재가불자의 말이다.

    “어차피 불교계 내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가장 큰 계파인 화엄회가 중도라고는 하지만 보수에서 개혁까지 천차만별이고 자승스님의 성향을 볼 때 스스로 개혁적인 행보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선거공약으로 종단의 수행 풍토 확립, 교육 및 포교에 최선의 노력 경주, 대중공의에 의한 열린 종단 구현, 교구 활성화, 효율적인 종무 행정 실현, 승려노후복지 문제 해결과 불교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 구축 등 여섯 가지 운영 기조와 종책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불교 중흥과 관련해 교육과 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찰이나 종단 운영과 관련해서는 1994년 개혁체제에서 더 나아간 것은 없다.

    대원불교문화대학 이진두 부학장은 “이번에 총무원장 선출은 위기감 때문에 갈등이 표출되지 않았지만 사찰이나 종단 운영의 제도적 개혁이 없으면 언제든지 알력이 불거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승려와 신도 협력하는 모델 만든 봉은사

    불자인 박세일 한반도재단이사장은 지난 8월17일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법흥사에서 열린 한국교수불자연합학회 초청 강연에서 불교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불교 교육제도와 사찰 운영제도 등 두 가지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중에서 사찰 운영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승려와 신도 간의 수직적 통치구조가 수평적 협치 내지 협력구조로 바뀌어야 하고 이 둘 사이에는 신뢰를 가질 수 있는 투명성과 소통이 가능한 설명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를 전제로 수행승은 수행에, 법사승은 교화에, 그리고 종단과 사찰의 경영과 관리는 전문신도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찰 운영에 실험적으로 신도나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봉은사가 주목받는 모델이다. 봉은사는 1987년과 1988년 주지 자리를 둘러싸고 심각한 분란을 겪은 적이 있다. 조계종의 예산을 특별히 분담하는 사찰로 지정된 봉은사 주지 자리는 누구나 탐낼 만한 ‘노른자위’였다. 그런데 2007년 총무원장 선거에서 지관스님에 맞서는 후보를 지원했던 명진스님이 지관스님이 총무원장에 당선된 뒤 봉은사 주지로 임명됐다. 당시에는 막후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종단의 화합을 위한 조치로 평가됐다.

    명진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후 보인 첫 행보는 경내에서 두문불출하고 ‘천일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봉은사에 기거하는 모든 스님이 새벽 예불에 참불하고 아침 공양 후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당을 쓰는 울력을 하도록 했다. 수행승으로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승풍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사찰 운영 개혁을 위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건의한 재정 투명화방안도 받아들였다. 각종 기도와 제사와 관련해서 들어오는 헌금뿐 아니라 불전함에 넣은 시줏돈까지 모두 신도들이 관리하도록 맡긴 것이다. 매주 열리는 운영회의에도 신도대표들이 참석하도록 했다. 황남수 봉은사신도회장의 말이다.

    “처음에는 운영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어색하고 참석해도 아무 말을 못했는데 점차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게 되니까 발언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물론 일각에서는 “쇼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지난 8월말 명진스님이 ‘천일기도’를 마치자 그런 얘기는 쑥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이런 실험이 전국의 사찰로 확산되기에는 승려나 신도의 의식과 관계에서 여러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새로 출범한 ‘자승호’ 가 계파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고 표류할 것인지, 선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승무원들의 단합으로 순항할 것인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승려들, 禪수행보다는 자비행 중시하는 경향

    승려들이 스스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승려상은 어떤 모습일까.

    조계종중앙종회 교육분과위원회와 교육원 불학연구소는 조계종단 승려 1009명을 대상으로 7월부터 9월까지 승려 의식성향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승려들은 수행으로 진리를 구하는 것(上求菩提)보다 중생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것(下化衆生)을 현대적인 승려상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전통적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비율(43.2%)은 현대적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비율(27.3%)보다 높았지만 자비 정신을 사회에 구현하는 것은 전통적 이상형(27.3%)보다 현대적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비율(36.1%)이 높았다.

    그런 탓인지 현대적 이상형을 추구하는 승려들은 자신의 롤모델 1위로 원효(元曉)스님을 꼽은 데 비해 성철(性徹)스님을 롤모델 1위로 뽑은 승려들은 전통적 이상형을 중시하는 비율이 높았다. 가장 존경하는 이웃종교 지도자로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테레사 수녀를 꼽았다. 모두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했던 인물이다

    승려들의 이미지 평가에서는 신뢰도(나쁨 32.7%), 전문성(낮음 49.7%), 청렴성(낮음 34.8%), 사회참여 정도(낮음 86.9%) 및 영향력(낮음 76.9%) 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문성과 사회참여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높았다. 승려의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승려 개인의 자질 향상(29.4%), 양질의 승려교육(28.9%), 출가정신의 강화(23.2%)가 필요하다고 했다. 승려교육과 관련해서는 강원(講院)의 커리큘럼을 현대적으로 개정하는 데 73.3%가 찬성했다.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참여운동이 효과적이라는 데 60.4%가 동의했지만 정치참여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55%로 높았다. 사회참여운동 부문은 복지 및 구호사업(23.9%), 환경보호(20.7%), 생명존중(15%) 분야를 선호했다.

    포교 활동의 목표는 단순한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 불교의 사회적 기여 확대에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53.1%로 지배적이었다. 바람직한 포교 방법으로는 봉사와 자비행의 실천(43.1%), 신도교육(19.6%) 등을 선호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나타난 승려들의 의식은 고독한 수행보다는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자비행을 실천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며 사회참여는 하되 정치 분야보다는 환경이나 복지 분야를 선호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총무원 신임 집행부는 전체 승려수의 10%에 해당하는 이번 설문 참여자의 의견을 참고해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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