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왜 젊은 사람이 신종 플루에 쉽게 감염될까

  • 입력2009-12-09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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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젊은 사람이 신종 플루에 쉽게 감염될까

    한 젊은 여성이 신종 플루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명동거리를 걷고 있다.

    1920년대 초 어느 날, 영국의 세균학자이자 페니실린 발견자인 플레밍은 세균을 배양 중인 유리그릇 샬레에 실수로 콧물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2~3일 후 놀라운 변화가 생겨났다. 유리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세균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플레밍은 이 변화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분비액(점액) 속에 들어 있던 리소자임이라는 살균 성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면역은 우리 몸에 침범하는 모든 이물질을 방어하는 인체 내 자율작용으로 ‘자연면역시스템’이라고도 한다. 특히 점액은 우리 몸의 외부 최전선에서 먼지나 이물질, 미생물 등을 저지하는 구실을 한다.

    점액은 신체의 대부분에서 분비된다. 눈물, 콧물, 침, 소화액 등 기관과 생식기에 이르는 모든 부분이나 피부에서도 개구리 표면처럼 매끈한 액이 약간씩 분비된다. 이들 점액에는 대장균, 살모넬라균, 백일해균, 뮤탄스균 등의 다양한 세균과 인플루엔자, 헤르페스, 폴리오바이러스 등 엄청난 종류의 외계분자에 대한 항체가 포함되어 있다. 몸 안의 점액은 서로를 연결해 같은 항체를 만들어내고 같은 면역학적 시스템에 편성된다. 자연면역의 최전선에서 코팅처리처럼 신체의 외부를 감싸고 방어한다. 마치 손이 더러우면 물로 씻듯이 쉴 새 없이 새로운 점액으로 교체되며 흐른다.

    전염병 치료학문 ‘온병학’

    점액은 기본 점액과 반응성 점액으로 나뉜다. 그중 기본 점액은 기름이 든 물로 점액 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인체의 모든 물은 신장이 관리하며 간심비폐신의 오장은 각 기관에 따라 눈물, 땀, 침, 콧물, 소변을 분비한다고 한다. 신장은 겨울, 씨앗을 뜻한다. 모든 씨앗은 반드시 기름을 포함하며 기름이 든 물은 신장에서 주관하는 물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현대의학)은 모두 그들의 독창적인 문화적 전통 위에서 발전해왔다. 현대의학이 ‘보이면 쏜다’는 수렵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한의학은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찾아보고 죽이거나 상처를 입혀 신체를 위기에서 구출한다면 한의학은 밭을 가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를 갈고 일구면서 바이러스나 세균이 달라붙지 못하게 준비한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는 감기가 와도 자신의 체온을 높이는 매운 약이나 땀을 내는 발한제, 이뇨제, 배설제로 씻어내거나 몰아낸다. 이런 사유적 바탕은 전염병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상한론’이 바로 그것이다.

    상한(傷寒)은 차가움에 인체가 체온조절 기능을 손상받았다는 전제하에 치료하는 방법이다. 고추처럼 맵고 따뜻한 약이나 계피처럼 달고 매운 약 등을 사용하여 체온을 보존하고 높이는 문제에 중점을 두고 치료한다.

    한의학의 전염병 치료학문인 ‘온병학’은 상한론에 습도, 즉 점액의 조절문제를 포함시킨 이론이다. 온병학의 시조는 오국통(1758~1836)이란 청나라 사람인데, 상한론의 시조로 불린 장중경이 가족의 죽음 앞에서 절실한 마음으로 연구에 매진했듯 오국통도 사촌의 죽음을 지켜보며 새로운 전염병 치료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병학의 대전제는 상한과 온병의 차이를 명확히 제시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습도, 즉 점액의 분비 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땀을 내거나 체온을 높이면 더욱 건조해지면서 방어능력에 더 큰 결함이 생기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온병의 관점에서 보면 나이 드신 어른들보다 젊은 사람이 신종 플루에 쉽게 감염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체온이 높고 신경이 과민하며 밤잠을 설치면서 일이나 공부에 매진하여 코나 입이 건조한 경우가 많다. 특히 아파트 생활은 더욱 코를 건조하게 만들어 신종 플루 등의 침입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한의학은 자신의 신체를 갈아 일구는 농경의학인 만큼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접착을 방지하는 예방적 측면에 그 본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명의는 병이 나기 전에 치료하고 보통 의사는 병이 나야 고친다’는 황제내경의 말은 분명한 예방의학적 메시지다. 점액의 생산과 분비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는 현재 시점에서 되짚어야 할 중요한 이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점액은 당연히 위장에서 생산된다. 위장의 역할은 부숙수곡(腐熟水穀)이다. 부는 썩힌다는 뜻으로, 더 정확히 표현하면 삭히는 것이고 숙은 찐다는 뜻이다. 음식은 위장에서 위액과 골고루 섞여 삭히고 찌면서 맑은 것은 짜서 전신의 점액 성분을 보충하고 탁한 것은 대장을 통해 배출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습성의 밥이 가루 성분이면서 건조한 빵보다는 점액 성분을 만들어 보충하는 데 유리하다.(실제로 일본에서는 빵을 많이 먹는 젊은 층에서 침의 분비가 줄어 구내염이나 구강건조증이 생긴다는 보고도 있다.) 점액은 흔히 진액 혹은 정기로도 표현되는데 정기(精氣)에는 쌀 미(米)자와 채소를 뜻하는 푸를 청(靑)자가 포함되어 있다. 바로 따뜻한 밥과 채소가 정기의 근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보충할 수 있는 것으로는 더덕이나 황기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차로 마시거나 새콤한 오미자, 매실과 함께 복용하면 좋다. 사람의 신장과 같은 흑색이면서 기름으로 채워진 씨앗인 검은깨와 검은콩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내의 음기를 자연스럽게 생산하도록 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음기의 원천은 숙면이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이 푸석해 보이는 것은 점액의 분비가 줄어들었다는 확실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침입하며 코가 바로 대문 역할을 한다. 코를 촉촉하고 매끈하게 만들어야 바이러스는 1차 관문에서 걸러진다. 참기름, 꿀, 젤리, 알로에 액으로 촉촉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작지만 큰 예방법이다.

    李相坤

    ●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 現 갑산한의원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학회 이사, 한의학 박사
    ●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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