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 마련 시급
- ‘동반자선언’ 내놓고 경주 관광산업에도 적극 지원
- 원전 건설에서 폐기물 관리까지…“나는 복이 많은 사람”
2005년 11월, 경주시민들이 방폐장 유치 성공을 자축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실 방폐공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곳이다. 원자력이라는 분야 자체가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데다 신생 공기업이어서 이름조차 들어본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 공단이 몇 년 전까지 엄청난 논란을 불렀던 ‘경주 방폐장(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을 건설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흔히 ‘경주 방폐장’이라 하는 한국 최초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정식 이름은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이하 월성센터)다. 경주 시민들이 자발적인 공모를 통해 지어준 이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지어지고 있는 이 시설은 부지 면적만 210만여㎡에 달하고, 그 안에는 80만 드럼(200L 기준) 규모의 처분시설을 갖추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 약 60년치를 처분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 지하 80~130m에 위치한 처분동굴 끝에 만들어지는 높이 50m, 지름 23.6m의 지하 처분고 6개에는 원자력발전소와 병원, 연구소, 기업체 등에서 나오는 작업복, 장갑과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들을 자연과 완전히 격리해 처분한다.
월성센터는 2005년 11월 경주지역 주민들의 투표를 거쳐 유치가 결정됐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주민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해결한 모범적인 선례이자 지방자치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사례였다.
60년 쓸 폐기물 처분장
월성센터(경주 방폐장) 건설현장 전경.
▼ 방폐공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방사성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방사성폐기물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병원, 연구소, 원자력발전소, 기업체 등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주사기, 작업복 등이 나오죠. 이 방사성폐기물들의 운반·저장·처리·처분을 모두 저희 공단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를 선정, 건설, 운영하는 것도 우리 공단의 역할이죠. 방사성폐기물 관련 연구개발, 국제협력, 인력양성이나 대국민 홍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이 아주 많죠.”
▼ 방폐공 설립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방폐공의 설립으로 방사성폐기물 발생자와 관리자를 분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를 구축하게 됐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또 독립된 전담기관을 설치함으로써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안전성·전문성·투명성 등이 더욱 향상될 것임은 당연하고요. 방사성폐기물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방폐공이 설립됐다는 사실 자체가 곧 ‘개혁’이라고 할 만하죠.”
▼ 선진국도 대부분 방폐공과 같은 전문기관을 운영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외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원자력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뤄져왔기 때문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대부분이 방폐공과 같은 독립기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 분야에서는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폐기물처리 분야는 좀 뒤떨어져 있던 게 사실입니다. 경제성장에만 치중하다보니 이런 방사성폐기물관리 업무에는 다소 소홀했던 게 사실입니다.”
▼ 현재 건설 중인 월성센터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월성센터는 사실 방폐공이 만들어진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2008년 8월 착공했고요. 경주에 만들어질 시설은 중·저준위방폐물처분시설입니다. 시설은 크게 지상지원시설과 지하시설로 구분됩니다. 현재 지상지원시설은 당초 계획대로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하시설 공사가 다소 늦어지고 있어요. 처분동굴이 들어설 곳의 암질등급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 보강작업에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있습니다.”
▼ 공사가 지연되면서 이런저런 갈등이 생긴 것으로 압니다.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공사가 지연된 이유는 공사기간을 잘못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폐기물을 관리하던 울진원자력발전소가 포화상태가 된 것이 월성센터를 짓게 된 이유인데요. 마음이 급하다보니 당위적인 목표만을 강조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공사기간을 예측하는 데 의욕만 내세운 게 원인입니다. 어쨌든 공사 지연에 대해서는 국민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지난 5월8일 방폐공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준공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계획된 준공일정인 2010년 6월보다 2년 이상 지연된 2012년 12월에야 준공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지상지원시설은 당초 계획대로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지하시설의 경우 처분동굴을 건설하기 위한 진입동굴 시공단계에서 암질등급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 굴진속도가 느려지고 보강작업에 따른 시간이 추가로 소요되어 공사가 지연되고 있음.”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방폐공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공사기간 연장 발표는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등 많은 논란을 불렀다. 게다가 6월 중순 방폐장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국무총리실 소속이던 ‘(방폐장)유치지역지원위원회’가 지식경제부 장관 소속으로 변경되고, 위원장도 국무총리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바뀌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당장 경주 시민들은 “유치지역지원위원회의 위상이 격하됐다”며 크게 반발했다.
논란이 심해지자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국내 최고 전문기관인 대한지질학회에 조사를 의뢰했고 6월22일부터 4주간 월성센터 공기지연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였다.
▼ 진상조사 결과는 어땠나요.
“계명대 김천수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이 면밀히 조사했고, 방폐장 처분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이미 발표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 부지조사 결과와 실제 암반상태가 유사하지만 지하시설 입구부 100여m 구간에서 예상했던 것과 큰 차이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암반상태, 공사진행속도 등을 고려할 때 30개월 공사기간 연장은 적정하다는 판단도 내려줬죠.”
▼ 모든 논란이 해소된 건가요.
“아닙니다.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었죠. 지역에서도 여전히 못 믿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방폐공이 앞장서 만든 것이 ‘방폐장 현안사항 해결을 위한 지역공동협의회’입니다. 민·관이 함께 안전성 문제 등 이런저런 현안 해결에 나서서 서로 간의 신뢰를 확보하자는 취지로 만들었죠.”
▼ 월성센터 건설에 공식적으로 주민들을 참여시킨 것이네요.
“그렇죠. 협의회는 지역인사 17명, 방폐공 등 사업자 측 6명 등 총 23명으로 구성됐습니다. 공동위원장으로 성타 경실련 대표와 임동철 동경주지역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선출됐고요. 안전성 문제 등 방폐장과 관련된 모든 현안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협조하자는 취지입니다.”
▼ 민간과 모든 결정을 같이한다. 방폐공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네요.
“자신 있으니까 가능한 겁니다. 안전이든 기술이든 사업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뭐든지 공개하고 투명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 최근에는 방폐공이 다양한 형태의 지역공동체 경영전략도 내놨다고 들었습니다.
“지역발전을 확실히 돕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방폐공은 올해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방폐장 유치지역 주민에 대한 가점제와 더불어 채용인원의 20%를 할당하는 유치지역 모집을 병행해서 실시했습니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공동의 발전을 모색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올해 들어온 신입직원 45명 중 11명이 경주 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총 1275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유치지역지원사업 재원을 이용해서 장학사업, 전기요금보조사업, 육영사업, 교육 시설 및 기자재 지원, 농수산물관련 지원사업 및 관광진흥사업 등에도 집중 투자할 계획입니다.”
‘한진청정누리호’ 건조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지난 4월15일 국내 최초의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운송선박 ‘한진청정누리호’를 공개했다. 부산 영도 소재 대선조선소에서 열린 인도식 장면.
지난 4월15일, 국내 최초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운송선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진청정누리호’로 명명된 이 운송선박은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기준과 국내 선박안전법 등에 따라 충돌예방레이더, 선박 자동식별 장치 등 최첨단 안전설비를 갖췄고 안전성과 기밀성이 유지되도록 이중선체와 이중엔진 구조로 설계돼 선박 충돌 등 만약의 사고 발생시에도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했다. 길이 78.6m, 너비 15.8m, 총톤수 2600t인 이 운송선박은 약 1000드럼의 방사성폐기물을 적재할 수 있다.
▼ 한진청정누리호의 운항계획은 세워져 있나요.
“1년에 총 9차례(항차) 운영될 겁니다. 울진, 고리, 영광원전이 각각 3항차로 계획되어 있어요. 운반 물량은 약 9000드럼(1항차당 1000드럼씩)입니다. 운항 경로는 각 원전 물량장에서 영해경계선까지 나간 후 이를 따라 운항하는 식입니다. 최적의 기상상황이 아니면 운항하지 않고 운항시에도 기상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 피항지로 우회하여 정박한다는 매뉴얼도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운항할 겁니다.”
월성센터가 모두 완공되면 당분간 우리나라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방폐공의 할 일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라는 더 본질적이고 큰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도 바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든 후 원자로에서 꺼낸 연료를 말하는데, 96% 정도는 재활용이 가능한 소중한 국가 에너지자원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방법은 국가마다 차이를 보인다.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처리하는 국가들도 있고 폐기물로 간주해서 땅속 깊이 영구적으로 직접 처분하는 국가들도 있다.
직접처분을 할 때는 사용후핵연료가 가진 높은 열과 방사능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하여 30~50년간 냉각한 후 지하 약 300~1000m 깊이의 암반층에 처분하는 게 일반적인데 현재 미국, 스웨덴, 핀란드, 캐나다 등이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반면,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에 남아있는 플루토늄 등 유용한 물질을 분리, 추출해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현재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수 국가에서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재처리와 직접처분 중 어떤 관리정책을 채택할 것인지는 그 나라의 에너지 정책, 경제성, 환경문제, 국민의 수용태세 등 국가별 특수성에 의해 결정된다. 핵확산 문제와 관련된 정치·외교적 요소 등 국제 상황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세계 31개 원전 운영국가 중에서 10여 개 국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확정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20여 개 국가는 ‘관망정책’(wait and see)을 유지한 채 결정을 미룬 상태다. 민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빨리 처리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가 현안인데….
“2008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울진, 월성, 고리, 영광의 4개 원자력발전소 단지 내에 총 1만83t의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습니다. 연간 발생량은 690t 정도입니다. 가끔 뉴스에 보면 물속에 폐연료봉을 담가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그게 사용후핵연료가 중간 보관된 모습입니다. 2016년이 되면 이 중간저장시설이 포화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확충이 시급합니다. 처리시설을 만드는 데는 부지확보 후 설계, 인허가 및 시설공사에 총 6년 정도가 걸리는데 역산하면 2010년까지는 최소한 부지가 확보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 처리문제를 두고 그동안 많은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4년 12월 열린 253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이미 국민적 공감대하에 이 문제를 결정키로 한 바 있습니다. 과거 중·저준위방폐장 선정과정에서 벌어졌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었고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2007년 4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해서 2008년 4월 공론화 권고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준비를 실천에 옮길 때가 된 것이죠. 조만간 기본계획을 마련해서 원자력위원회에 상정,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할 예정입니다.”
원자력과 30년 동고동락
민 이사장은 1976년 한국전력에 입사한 이후 30년간 단 한 번도 원자력을 떠나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것으로 시작된 인연이 방사성폐기물 관리책임자로 이어졌으니 한마디로 원자력과 함께 시작과 끝을 같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행복했을까.
“전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평생 한 가지 일에 매진할 수 있었으니 분명 행운아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 지난 30년간 많은 것이 변했고 발전했죠.
“처음 제가 원자력과 인연을 맺었을 때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라였습니다. 외국기술에 온전히 의존하는 나라였죠. 그러나 지금은 20기의 원전을 운영 중이고 8기를 건설 중인 명실 공히 원자력 선진국입니다. 31개 원전국가 중 5위권이죠. 기술자립을 넘어 이제는 원자력 기술을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식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시험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성센터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가 될 겁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이 결정되고 추진되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방폐장 설치를 두고 벌어졌던 부안사태 등의 시행착오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과제도 방폐공이 안고 있죠.”
▼ 최근에는 경주방폐장 부지선정 4주년을 맞이해서 ‘경주와의 동반자선언’도 내놨는데요.
“방폐공은 월성센터 인근에 약 300억원을 투입하여 빛듬정원, 빛샘광장, 샤이니파크 등 다양한 볼거리를 조성하여 동경주지역의 또 하나의 관광 명소로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호국의지의 상징인 문무대왕 수중릉과 동경주지역에 건립 예정인 에너지박물관과 더불어 관광객들에게 추가적인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친화단지를 조성해 동경주지역 관광활성화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혐오시설이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친환경 문화공간이 될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