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아무 말 안 해도 오해받는다”

DJ 차남 김홍업 근황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입력2009-12-02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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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말 안 해도 오해받는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측 조문 사절단이 8월21일 오후 국회에 마련된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서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2009년 8월19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집중치료실 10호실에 김홍업씨가 들어왔다. 아버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김씨는 큰소리로 흐느꼈다고 한다. “아버지, 제가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 뜻을 어기고 잘못을 저질러 이름에 누를 끼쳤습니다. 한번만 눈을 뜨십시오.”

    장남 홍일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야윈 얼굴에 휠체어에서 겨우 몸을 가누는 모습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차남 홍업씨가 사실상 상주를 맡았다. 국장(國葬) 기간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문상객들로 정신없이 보냈다.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 등 북한 조문단은 8월21일 김정일 위원장이 보낸 조화를 고 김 전 대통령 영정에 헌화했다. 김 비서는 홍업씨에게 “국방위원장께서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저희들 특사방문단을 보내주셨습니다”라고 했다. 김씨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생물학적 DJ 계승자의 시련

    그러나 국장이 끝난 다음날인 8월24일부터 이 ‘생물학적 DJ 계승자’는 시련 아닌 시련에 처해졌다. 유족들은 고 김 전 대통령의 유언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고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께서는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DJ의 유일한 유언’으로 매스컴을 탔다.

    얼마 뒤 ‘DJ 유훈 정치’ 논란이 일었다. 동교동계는 박 의원이 DJ 병상정치로 독주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장성민 전 의원은 “박 의원이 공개한 확인되지 않은 고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은 평소 그분의 정치철학과 맞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유언은 보통 자식 등 가족에게 남긴다. 주변에서는 ‘좀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차남이 멀쩡히 있는데 비서출신이 아버지 유언이라며 특정인을 아버지 위업의 상속자라고 선언하고…”라는 시각이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정세균 대표는 DJ 유훈 계승자라면서 임종 후 한참이 지나 병원에 왔다”고 했다.

    박 의원은 11월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행사에 참가해 장의(葬儀) 보고를 했다. 첫 해외추모행사여서 비중이 있었는데 정세균 대표, 이희호 여사는 참석했지만 홍업씨는 빠졌다. 동교동계에선 “우리에겐 연락도 없었다. 홍업씨도 서운해 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박 의원은 장의 보고 과정에서 “내가 요구해 국장이 수용됐다” “북한의 조문단 파견도 내가 비밀리에 추진해 성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DJ가 서거한 그 순간 이후부터 유족대표는 박지원, 상속자는 정세균으로 비쳤고 아들들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DJ는 그의 사후 이런 상황을 진정 원했을까. 홍업씨는 요즘 마음고생을 하는 모양이다. 형은 평생 아버지 민주화운동 뒷바라지하다 고문후유증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적어도 DJ와 홍일, 홍업 부자에게 정치는 가업(家業)이었다. 그러나 지금 홍업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 말 안 해도 오해받는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

    사실 홍업씨야말로 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지만 그 비슷한 말만 내비쳐도 유훈정치 논란의 진흙탕에 빠져 박지원 의원과 대결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선친에게 누가 되는 일로 여긴다고 한다. 그는 언론에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 홍업씨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몸이 좀 아프다”고 했다. “올해가 가기 전 한번 만나자”고 하자 그는 정중히 사양하면서 “나는 지금 아무 말을 안 하고 있어도 오해를 받는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 깊숙이 내려앉는 듯 무거웠다.

    참회의 눈물

    홍업씨는 2007년 전남 무안·신안 재·보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8년 4월 18대 총선 때 그는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권청탁 명목으로 25억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원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된 전력이 민주당 공천심사위의 낙천대상 기준에 걸렸기 때문이다. 홍업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홍업씨의 낙천은 민주당의 창업자인 DJ에겐 대단한 충격을 줬다. 홍업씨가 DJ 임종에서 “제가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 뜻을 어기고 잘못을 저질러 이름에 누를 끼쳤습니다”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11월10일 동교동계 130여 명이 세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나들이에 나섰다. ‘김대중 대통령 고향방문행사’였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권노갑 전 고문, 한화갑 전 대표, 한광옥 전 실장이 각각 1호차, 2호차, 3호차의 반장이 됐다. 홍업씨는 1호차에 탑승했다.

    이들은 하의초등학교에 내렸다. 지역주민들이 이들에게 홍어-돼지고기 삼합을 점심으로 대접했다. 장성민 전 의원의 사회로 홍업씨의 발언 차례가 왔다. 아버지의 모교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님의 유업을 계승하는 데 노력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잇겠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를 참 어렵게 꺼낸 것이다. 이후 밤늦게 서울에 돌아올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인심이…

    민주당이 제2의 정당으로 남아 있는 데엔 DJ의 업적과 후광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민주당은 DJ 서거 후 “김대중 대통령을 계승하겠다”고 여러 번 천명했다. 당 전체가 상주노릇을 했다. 그의 ‘민주주의’ ‘남북화해’ 정신을 따르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일반인과 다를 것은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서거 전후 문제에서는 아들이 가질 법한 정서나 입장, 진로도 세심히 배려해주어야 한다. 더구나 DJ가 생전에 아끼고 염려했던 아들이다.

    민주당 주류 측이 DJ 아들을 대하는 광경은 ‘세상인심이 이런 거다’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DJ 정신과 DJ 아들을 냉정하게 구분해 전자만 취하는 듯하다. 민주당의 DJ 계승에선 따뜻한 피가 돌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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