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방산업계 전방위 검찰수사는 국방개혁 신호탄?

  • 김종대│D&D Focus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입력2009-12-04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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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위산업 비리 수사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줄을 잇는다. 맨눈으로 보면 각각의 사건일 뿐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고리가 존재한다. 국방 분야의 비효율성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언급과 이에 조응하는 검찰의 전방위 뒤지기 작업이 그것. 여기에 8월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의 ‘항명성 편지’ 사건과 실세들의 의미심장한 행보가 엉키면서, 상황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7월, 검찰과 군 수사당국은 탈세와 군사기밀 유출 혐의와 관련해 무기중개업체인 일광공영을 압수수색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고속정 발전기 납품 비리, K-9 자주포의 부품원가 과다산정에 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10월14일에는 국군기무사령부의 한국형전투기 사업 기밀 누설 수사와 관련해 예비역 공군 장성 김모씨가 구속됐다. 이튿날인 10월15일에는 군 검찰이 한국형 구축함 KDX-Ⅱ 탑재 레이더 납품 비리와 관련해 미국 방산업체를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국방부는 2006년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사무기기 납품비리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한 특별조사단을 발족시켰다.

    하반기 이후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관계당국의 군수비리 수사는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강도가 높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미 공개된 사건 외에도 수사선상에는 ▲군 정보기관 단파 자동방탐장비 제안요청서 3급 비밀 유출 ▲군 정보기관 이전사업인 충성사업 비밀공사 설계도면 유출 ▲KHP(한국형헬기사업), KMH(한국형다목적헬기사업) 관련 대외비 자료 유출 ▲국군 통신부대 사업 담당자의 뇌물수수 ▲러시아제 무기도입 관련 문건 유출 ▲터키산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문건 유출 및 가격 조작 ▲해군 무인정찰기(UAV) 도입 관련 가격 조작 ▲육군 야간 표적지시기 및 대대급 교전용 훈련장비 납품 비리 등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11월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중장 보직 및 진급신고식에서 진급자들의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이렇듯 최근 검찰 등 사정당국이 내놓은 군수비리 수사결과는 상당수가 지난해부터 관련업계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관련 조사의 결과물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시절의 ‘율곡비리’ 파동 이후 가장 큰 규모라는 ‘칼바람’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촛불시위가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해 여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2008년 7월, 촛불시위 대응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주요 기관장을 질책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임채진 검찰총장을 향해 ‘똑바로 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촛불집회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상황에 대해 대통령의 꾸중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극도로 살벌해졌다.’ 이 자리에서 임 총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군수비리에 관해 조사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어진 조사는 주로 지난 정권시절 방산업체를 통해 조성된 비밀자금을 찾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세청을 앞세운 F-15K 도입 관련 에이전트 회사에 대한 조사에서도 비자금 관련 사안은 나오지 않았고, 지난 정부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무기상 조풍언씨에 대한 조사에서도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과거 보잉사·조풍언 씨 커넥션의 선상에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업체를 덮쳤고 수사는 국내 굴지의 대형 방산업체인 S사, L사, D사, 그리고 민간 안보연구소까지 이어졌지만, 끝내 비자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보잉사가 도마에 오른 까닭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1993년 7월9일,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이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974년 시작된 한국군의 전력증강사업 율곡사업은 국가안보라는 보호막에 가려져 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에야 처음으로 감사를 받았다.

    이러한 강도 높은 조사의 배경에 ‘청와대의 의중’이 있다는 점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조사대상 업체만 50여 개가 넘고, 조사대상자는 현역군인과 공무원, 민간인을 합쳐 수백 명에 달한다. 오죽하면 수사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가 “사건이 하도 많아 조사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할 지경이었다.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집에 못 들어갈 상황에 대비해 하루에 양말 네 켤레를 싸들고 출근했다고 전해지지만, 찾아낸 건 별로 없었다. 대신 F-15K 제조회사인 보잉사의 한 협력업체는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당시 수사를 받은 한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다른 서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보잉사 거래내역이 담긴 서류만 찾았다. 아마도 보잉사를 통해 해외에 비자금을 조성한 흔적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유독 보잉사 관련 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두드러진 이유는 지난 정부에서 가장 많은 무기도입 사업을 수주한 회사가 보잉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이 도입하고 있는 F-15K 전투기, 조기경보기 등 규모가 가장 큰 방산사업이 보잉사 제품을 직구매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치권으로 확산되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국방위원들은 집중적으로 F-15K 전투기 도입의혹을 제기했다.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은 “국정감사 직전에 당 대표로부터 ‘F-15K 도입의혹을 잘 파헤쳐보라’며 기초 자료를 건네받았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정치권 관계자들이 F-15K 도입에 대해 제기하는 의혹은 최초 4조원대로 예상됐던 사업규모가 5조원을 넘긴 배경이다. 한물간 전투기 도입에 1조원을 추가로 지출한 것은 보잉사를 통해 과거 정권이 수천억원대의 리베이트를 받기 위한 것이었고, 이것이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사용됐거나 현재 관리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F-15K 전투기사업에 대한 의혹’이라는 문서가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을 통해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제시된 바도 있다.

    5조원짜리 전투기 사업 가운데 1조원이면 20%다. 바로 이 같은 내용이 최근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깎을 수 있다”는 말의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의 항명성 편지가 작성되기 직전인 7월 말 ‘장관 보고 없이’ 청와대에 다녀온 장수만 차관을 통해 국방부에도 알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리베이트 20% 발언’이 이상희 전 장관의 편지 작성에 하나의 동기가 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비자금은 안 나오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세무조사를 통해 세금을 추징당하거나 군시기밀 유출로 처벌 위기에 몰린 방산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줄을 잇는다. 서두에 거론한 최근의 수사결과 가운데 상당수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수효과’였던 셈이다. 1년이 넘는 수사 기간에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었다는 사실은 “정치논리로 시작한 수사 때문에 공연한 피해자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최근의 군수비리 조사가 정치논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과 관련한 방산비리에 대해서는 왜 이제까지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월말 구속영장이 발부된 방위산업체 로우테크놀러지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동서, 처제, 장남 등이 복잡하게 관련된 ‘이상한 방위산업’을 진행해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업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최근에 와서야 본격화됐다.

    이 업체가 개발했다는 육군 교육용 훈련장비와 개량형 야간표적지시기는 미국에서 도입한 것임에도 국내에서 개발한 것처럼 속여 몇 배의 폭리를 취하고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이 업체가 특허를 도용하고 폭리를 취한 부당이익은 무려 220억원. 그동안 검찰이 숱하게 뒤진 군수비리 가운데 단일 사업으로는 단연 최대 규모다.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말했듯 최근 군수비리 수사의 배경에는 국방 분야의 비효율성이나 구시대적인 행태에 관한 청와대의 인식이 깔려 있다. 8월말 이 전 장관의 항명성 편지에서 엿보인 ‘국방개혁에 대한 청와대와 국방부의 갈등’도 이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청와대의 목표는 단순히 군수납품이나 무기도입 과정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아니라, 군 전력의 소요기획, 예산편성 및 집행 등 전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11월10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제껏 내가 국방예산 효율화 방안 마련을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진 것이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 재차 지시하니 제대로 만들어 보고하라.”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필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정확히 무엇을 개혁하자는 것인지 지시받은 바 없고, 대신 여러 가지 말이 한꺼번에 나오는 바람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대통령 본인이 현재의 국방경영에 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청와대 등에서 국방개혁 문제를 지휘하는 참모들은 개혁 전반에 대해 체계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좌충우돌 뛰어드는 형국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관계자가 말한 문제의 초점은 국방 운영의 효율화에 대한 청와대 지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핵심이 예산인지, 소요인지, 조직개편이나 인력감축인지 종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부서에서 제각기 자신이 국방개혁을 컨트롤하겠다고 나서면서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는 하소연이다.

    청와대의 지시, 합참의 반대

    이와 관련해 청와대 자문단의 일원인 한 학계인사는 청와대 안보수석실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8월말 ‘국방 소요기획의 과학화’를 핵심개념으로 하는 국방운영 효율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한국군 전력의 근간인 무기체계의 소요를 육·해·공 각 군이 경쟁적으로 제기하면서 상호 중복되고 규모가 부풀려져 낭비가 많다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었다는 것. 합참에서 전군 차원의 작전적 합동성을 구현하기 위해 중장기 전략기획문서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합리적인 무기 소요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군이 자존심을 걸고 경쟁적으로 제출한 무기소요에 합참이 대책 없이 끌려 다니는 이른바 ‘백화점식 무기도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군 무기소요검증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청와대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던 주장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합참에 소요검증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출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하달된 적도 있다. 그러나 합참은 거듭되는 청와대의 문제제기에도 “대통령 재가를 받는 중기국방계획에 대한 별도의 검증절차는 불필요하다”며 반대해왔다. 결국 합참은 청와대의 압력에 밀려 ‘소요검증위원회 설치에 대한 3가지 방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결국 2010년도 국방예산 책정을 앞두고 안보수석실은 예산 효율화를 위한 소요기획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킬 예정이었지만, 이러한 계획은 이 전 장관의 편지 파동으로 사실상 무산됐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방예산 증가율의 감소는 곧 안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는 이 전 장관의 강한 주장이 더 이상의 국방개혁 논의를 봉쇄하는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10월1일 이명박 대통령이 충남 계룡시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61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훈·포장을 수여하고 있다.

    안보수석실이 군 소요를 과학화해 결과적으로 국방예산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면, 이와는 별도로 국방예산 자체를 문제 삼는 그룹도 있었다.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분류되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10월13일 미래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곽 위원장은 “국방 운영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더 높여서 국방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곽 위원장의 발언은 군 전력과 무기체계 분야보다는 군 조직과 인력의 낭비요인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 같은 방향을 집약해 청와대 주변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국방경영의 효율화’다.

    미래기획위원회에 국방부와 합참의 관계자들이 불려 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였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방예산의 합리성 문제를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부서는 안보수석실보다 오히려 미래기획위원회였다”고 말한다. 특히 국방부가 ‘국방개혁2020’을 수정하면서 2개 기동군단 설치 문제를 제기하자, 미래기획위원회 측은 “기동군을 만들면 위협에 대한 대비 수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량적으로 제시하라”며 국방부 안을 비판했다.

    ‘리베이트 20%’ 발언의 배경

    미래기획위원회는 정부 주요 분야 정책의 미래를 기획한다는 점에서 포괄적으로 국정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국방 분야와 관련해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관련 예산의 팽창을 어느 정도 견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개혁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형국이다. 눈여겨볼 것은 미래기획위원회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미래기획단장에 국방부 기획예산관을 지낸 장영철 전 기획예산처 대변인이 임명돼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예산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한 장 단장의 휘하에는 외교안보국이 설치돼 있고, 국방개혁에 대한 외부자문은 이 조직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위원회를 자문한 한 인사는 “미래기획위원회가 국방개혁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예산을 통제함으로써 국방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창출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상희 전 장관의 항명성 편지 소동도 미래기획위원회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7월초, 국방부는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국방개혁기본계획에 의거해 올해보다 7.9% 증가한 내년도 국방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부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요구안의 총 증가율이 4.9%에 불과한데 국방부만 예외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을 강도 높게 피력했다. 이 같은 기류는 7월 중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각 부처의 예산요구 상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확고해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간파한 장수만 차관은 국방부 기획조정실을 통해 국방예산 자료를 수집한 후 ‘장관에 대한 보고 없이’ 국방부가 요구한 증가율 7.9%를 반토막낸 3.8% 짜리 예산안을 새로 수립해 윤진식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방위력개선비 20%는 깎을 수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국방부 일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장수만 차관과 곽승준 위원장은 ‘4+1 회동’으로 알려진 이른바 ‘실세차관 모임’의 멤버였다.

    필자가 만난 세 명의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모두 대통령의 ‘리베이트 20%’ 발언의 배경에 곽승준 위원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0월 중순 곽 위원장은 국방개혁에 대한 견해가 담긴 보고서를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에게 전달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곽 위원장이 군의 인사와 정책, 방위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개혁안을 담은 보고서를 전달하자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또 다른 복병

    국방예산 합리화에 관한 권력 중심부의 움직임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최근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은 김태영 장관에게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다. 정 비서관은 통일부와 외교부에 이어 마지막으로 국방장관을 개별 면담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에 바로 응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기획관리비서관이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도 잘 몰랐다는 것.

    국정원과 경찰, 기무사 파견 행정관들이 포진한 기획관리비서관실은 지난 정부 국정상황실의 핵심기능을 거의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핵심부서다. ‘국정상황 관리’라는 포괄적 임무 속에는 각 부처 업무를 통제할 수 있는 파워가 숨어있다. 정 비서관은 한국능률협회 컨설턴트를 지낸 경제·금융통. 역시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방 분야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최근 국방부에서는 보병 출신이 맡고 있던 기획관리비서관실의 행정관이 기무 출신으로 교체된 데 대해 논란이 빚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연이은 군수비리 수사와 관련해 사정기관 출신 행정관들이 집결해 있는 민정수석실과 기획관리비서관실에 국방부 관계자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한 청와대 관계자는 “각종 방산비리와 정치권의 개입 의혹이 기획관리비서관실로 보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정 비서관이 김태영 장관을 만나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군 고위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이와 관계가 깊다.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한 인사들이 ‘국방경영 효율화’에 대해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복기해보면 과연 이 과제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국방개혁의 컨트롤타워가 누구냐’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부서들이 각각 컨트롤타워를 자임해 장·차관과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이미 이상희 전 장관의 편지 파동으로 확인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의 국방 비전 대신 각론 차원의 효율화 논의만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 안보상황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예측해 국가역량과 균형을 맞추려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안보지침과 국방부의 국방기본정책서, 장기전략기획, 국방개혁기본계획, 중기국방계획, 국방예산서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잘린 문어발처럼 제각기 꿈틀대는 형국이다.

    경제군, 녹색군, 다목적 고효율군?

    큰 비전 없이 진행된 예산효율화 논쟁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고 없이 삭감된 국방예산 때문에 상당수 국방부 사업의 지급기한이 뒤로 미뤄졌고, 그 결과 정부가 물어야 할 이자비용과 위약금도 만만찮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의 정체성과 미래 임무를 규정하는 작업도 다양한 수사만 난무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그림이 잡히지 않는다.

    ‘경제에 기여하는 군’이라는 맥락에서 ‘경제군’, 저탄소 녹색성장을 뒷받침하는 ‘녹색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군’이라는 청와대 안보수석실의 주문에 따라 ‘세계 속에 당당한 군’도 만들어야 한다. 올해 들어서는 ‘김정일 체제가 5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인식이 정부 안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급변사태 대비를 위한 별도의 전력소요도 포함됐다. 다양한 주문이 쏟아지는 동안 미래 한국군의 체계적인 모습은 오히려 오리무중으로 변하는 모양새다.

    지난 국군의 날, 이명박 대통령은 ‘다기능 고효율군’이라고 선포했다. 쏟아지는 요구를 모두 수행해낼 수 있는 군대라는 의미일까. 이 다기능군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듣는 군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과연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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