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저처럼 아픈 아이들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나영이’ 첫 인터뷰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0-04-19 1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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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얼굴 알려지면 안 돼요”
    •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 아이
    •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좋아하는 음식은 파인애플
    • “가을 되면 친구들과 줄넘기 할래요”
    “저처럼 아픈 아이들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나영이 그림

    나영이(10)는 잘 웃었다. 활짝 미소 지을 때면 고른 치아가 싱그럽게 드러났다. 재잘재잘 얘기하다 말문이 막히면 콧등을 찡긋하며 애교를 부릴 줄 알았다. 길을 걸을 때는 아빠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웃을 때나, 얘기할 때나, 깡총깡총 뛰는 순간에도, 환한 이마 아래 두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참 예쁘구나. 그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이는 2008년 겨울, 등굣길에 참혹한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은 주먹을 휘두르고, 목을 조르고, 얼굴까지 깨물면서 나영이를 제압했다. 그 상처를 치유해온 2년여 동안, 나영이는 다시 웃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나영이의 이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기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딸의 일상이 늘 끔찍한 고통인 것처럼 기억되는 게 싫다고 했다. 낱낱의 상처가 남아 있다 해도, 아이는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찾고 있다.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뛰어놀면서 자신의 삶을 산다. 그를 만나는 자리에는 사건 직후부터 나영이를 상담해온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신의진 교수와 법률적인 문제를 돕고 있는 이명숙 변호사가 동석했다.

    그날은 마침 지난 1월 복원 수술을 받은 나영이의 항문이 탈 없이 자리 잡은 게 확인된 날이었다. 아이는 ‘그 사건’으로 대장과 항문을 잃었다. 배꼽 옆 인공항문에 배변주머니를 달고 대변을 처리해왔다. 항문 복원 수술 직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수술이 잘됐다. 배변주머니를 뗄 수 있게 됐다”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사실 나영이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왔다. 이날 마침내 의사가 “잘 아물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이제 두 달 뒤에나 보자”며 미소 지었다. 그때 만나면 장을 항문으로 연결해 일반인처럼 배변할 수 있게 하는 2차 수술 일정을 잡게 될 것이다.

    “사진 찍으면 안 돼요”



    “수술 뒤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내내 불안했어요. 오늘 ‘됐습니다’ 하시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어땠어? 기분 좋았지?”

    아버지는 손에 꼭 쥔 분홍색 휴대용 게임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딸에게 말을 걸었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영이는 약속 장소에 들어온 뒤 한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곁에 바싹 다가앉은 채 게임기만 들여다봤다. 푹 숙인 정수리와 동그랗게 모은 어깨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읽혔다.

    ▼ 나영아 불편해? 그냥 편하게, 나영이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는 거 보러온 거야. 그냥 갈까?

    “사진 찍으면 안 돼요.”

    한참 만에 기자가 말을 걸었을 때 아이가 한 첫마디였다.

    ▼ 그럼. 절대 안 찍을 거야.

    “아빠도 찍으면 안 돼요. 아빠 보면 친구들이 다 안단 말이에요.”

    ▼ 그래, 알았어. 약속할게.

    “사진 찍고 나서 얼굴 지우는 것도 안 돼요. 그냥 찍지 말아요.”

    ▼ 여기 아빠랑 신의진 선생님이랑 이명숙 변호사님 계시지? 언니가 사진 찍으면 이분들이 혼내주실 거야. 절대 못 찍어.

    그제야 아이는 안심을 했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찍고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낸 게 상처가 된 모양이라고, 아버지가 귀띔했다. 얼굴 부분은 세심히 가렸지만 옷은 그대로 노출됐다. 나영이는 그걸 보고 “아빠 이 옷 입고 학교에도 온 적 있잖아.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떡해” 하며 속상해 했다고 한다.

    아이 주변에서는 누구 하나, 이 아이가 나영이인 걸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2주 됐나, 얘가 자꾸만 다리가 아프고 허리도 이상하다 하는 거예요. 수술이 뭐가 잘못된 건가 싶어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 학교에서 기합을 받았더라고요.”

    “토끼뜀 100번 했어요.”

    나영이가 처음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 아니, 왜?

    “체육복 안 갖고 가서요.”

    토끼뜀 100번

    5학년이 되면서 체육 과목은 전담 교사가 가르치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그 교사는 이 아이가 나영이인 걸 모르는 거다.

    “4학년 때까지는 담임선생님이 체육 수업도 하시니까 얘를 적당히 배려해주셨어요. 전 올해도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체육복을 안 챙겨 보냈죠.”

    깜짝 놀란 아버지가 “체육선생님께 말씀드려 수업 빠지게 해주랴”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제 사정 얘기하고 빠질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그 기합을 다 받지도 않았을 게다. 그런 딸을 보고 아버지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할 수만 있다면 보통 아이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이 나이 때 화장실에 한꺼번에 들어가잖아요. 얘도 학교에선 같이 들어간대요. 전에 한번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네 명이 같이 들어간 적도 있다네요. 그럼 자기는 아무리 급해도 친구들 다 일 볼 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거예요. ‘야, 너 다 눴으면 빨리 나가’ 막 이러면서 장난처럼 내보내고 나서, 혼자 남아 일을 보는 거죠. 나영이 제일 친한 친구도 얘가 배변주머니 달고 있는 걸 몰라요. 그럴 때 보면 참….”

    ▼ 그때 혼나고 나서부터는 체육 시간에 체육복 갖고 가서 운동하니?

    “네. 옆구르기도 하고, 뒤구르기도 할 줄 알아요.”

    ▼ 구르기까지 한다고?

    몸을 굴리는 순간마다 배꼽 옆에 달려 있는 배변주머니가 얼마나 불편할까, 가슴 한쪽이 아릿해왔다. 아이는 그 표정을 영 못 믿겠다는 뜻으로 읽었는지, 곧장 소파 위에 올라가 구르기 동작을 해보였다.

    “이런 거요, 이렇게.”

    자랑스럽게 씨익 웃는다.

    ▼ 아, 정말 잘하네. 체육 잘하는구나.

    “옛날에는 줄넘기 안 넘어지고 150개나 한 적도 있어요. 줄넘기 잘해서 상도 받았어요.”

    ▼ 지금은 더 잘하겠네.

    “아니 지금은 못하죠.”

    발랄하던 목소리가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사이 앞에 있는 어른이 제 몸 상태를 알고 있지만 사진 찍어 친구들에게 알리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아이는 굳이 뭔가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예전엔 체육이 좋았는데 지금은 제일 힘들어요.”

    ▼ 그럼 좋아하는 과목은 뭐야?

    “수학…이랑…, 미술.”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저처럼 아픈 아이들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나영이는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즐겨 그린다. 아이의 성격처럼 그림체가 명랑하고 발랄하다.

    아버지는 나영이가 언제부턴가 의사가 되겠다며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전엔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얘가 아주 미각이 대단하거든요. 음식을 한입 맛보면 뭐가 빠졌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맞혀요. ‘이걸 좀 더 넣어야겠네’ 해서 얘 말대로 하면 정말 맛있어요.”

    “내가 얼마 전에 아빠 라면도 끓여줬잖아. 그것도 맛있었어?”

    빙긋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나영이는 아버지가 마흔여덟에 본 늦둥이 막내딸이다. 짧은 말 한 마디, 가벼운 눈빛에서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응석받이 특유의 귀염성이 묻어났다.

    ▼ 그런데 왜 갑자기 의사가 되려고 마음먹었어? 요리사도 좋은 직업인데.

    “제가 많이 아팠잖아요. 그때 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하고 약속을 해서 이젠 어쩔 수 없이 의사가 돼야 해요.”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 말로는 나영이가 신의진 교수와 항문 복원 수술을 집도한 의사, 무료로 배변주머니를 제공하고 있는 용품회사 사장 등에게 “의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단다. “내가 아파봤으니 다른 아이들 아픈 걸 더 잘 치료해줄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얘가 공부도 곧잘 해요. 처음 그 일 있고 한동안은 수업을 너무 많이 빠져서 영 못 따라갔는데, 작년 2학기 때는 우등상도 받았어요.”

    “방학숙제 잘 해서 그 상도 받았는데….”

    나영이가 옆에서 거든다.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만 봐도 아이가 똑똑하고 바지런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참혹한 폭력을 당했을 때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직접 112에 신고했다. 외과 산부인과 정신과 성형외과 안과 진료를 동시에 받아야 할 만큼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사건 진술을 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성폭행 당했다는 경찰 전화를 받고 병원에 달려갔더니, 묻기도 전에 제가 먼저 기억나는 상황을 줄줄 이야기했다. 눈이 딸기처럼 퉁퉁 붓고, 볼 한쪽에 커다랗게 물어뜯긴 상처가 난 얼굴로 ‘아빠, 범인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지. 내 친구들 또 아프게 하면 어떻게 해. 얼른 그 사람 잡아줘’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나영이는 여덟 명의 용의자 사진 가운데 범인 얼굴을 정확하게 지목했다. 그러나 사건은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벌레 나오는 감옥에서 징역 60년

    나영이 사건의 형사 기록은 사건만큼이나 참담하다.

    “소변을 보기 위해서 교회 건물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어떤 남자가 나왔다. 그 남자가 나온 문을 열어보니 나영이가 앉아 있었다. 일으켜 세웠지만 다시 주저앉았고 범인으로 몰릴 것 같아 그냥 아이를 화장실에 두고 나와 집으로 갔다.”

    범인 조두순의 법정 진술 및 탄원서 내용이다. 당초 사건 당일 그 화장실엔 간 적도 없다고 부인하던 조두순은 범행 현장에서 자신의 지문이 나오고, 운동화와 양말에서 나영이의 혈흔까지 발견되자 ‘기억해보니 제3의 진범이 있는 것 같다’는 시나리오를 내놓으며 범행을 부인했다. 법원은 조두순이 출석한 법정에 비디오 중계 장치를 설치하고, 나영이가 옆방에서 그를 지켜보며 증언하게 한다.

    “머리카락색이 그때 범인과 비슷한가요? 피고인은 흰머리가 있는 것 같나요? 사건 당일 본 범인과 피고인의 머리카락색이 비슷한가요? 그런데 왜 조금 전에는 검은색이라고 말했나요? 사진상의 검은색 머리를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가요? 혹시 다른 사람을 본 것 아닌가요?…”

    재판과정에서 나영이에게 쏟아진 질문들이다. 머리색뿐 아니라 범인의 점퍼 색깔, 신발 모양, 허벅지에 있는 문신과 손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질문에 답하다 나영이는 그만 “모르겠어요…” 포기하고 만다.

    딴 생각에 팔린 사이 현실의 나영이는 재잘재잘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제가 방학숙제 중에서 만들기랑 가족 신문 만들기에서 상을 받았는데요, 그건 선물도 있었어요. 아, 선물이 아니라 상품이다. 히히.”

    좀 친해지니 이제 소리 내 웃기도 한다. 그러면서 예의 코 찡긋 웃음을 짓는다. 작은 단어 하나도 예민하게 따져 말하는 아이에게 그 많은 질문과 답변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이의 웃음을 보며 길었던 재판 과정의 참혹함을 새삼 느낀다. 왜 나영이가 웃기만 하면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까 자책이 든다.

    조두순은 아이까지 증언대에 세운 이 재판을 통해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신 교수에 따르면 나영이는 당시 심리치료를 받으며 조두순에게 “납치죄 10년, 폭력죄 20년, 유기 10년, 주머니를 이렇게 달게 한 것과 인공장치 달게 한 것 20년 해서 60년의 징역을 살게 해야 한다”는 훨씬 중한 형을 내렸다. 조두순이 벌레가 득실대는 감옥 속에서 흙이 들어간 밥을 먹는 모습의 그림도 그렸다.

    핑크색 하트

    ▼ 만들기랑 가족신문 만들기에서 상을 받은 걸 보면 미술을 정말 잘하나보다.

    “그런가? 히히.”

    나영이를 만나러 오기 전, 작은 선물을 하고 싶어 고민했다. 그때 신 박사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그와 관련된 거면 뭐든 좋아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나영이는 사건 이후 말수가 확 줄어들었을 때도 그림을 통해서만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고 한다. 그걸 떠올리며 전문가용 색연필과 파스텔을 건넸다. 포장을 뜯으며 얼굴이 점점 밝아지더니 금세 그림을 그리겠다고 종이와 가위를 찾는다.

    “집에서도 그림은 아주 잘 그려요. 만화 캐릭터도 그대로 따라 그리고. 아 오늘 가져올 걸 안 가져왔네. 어제는 나한테 이~만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만들어줬어요. 얼마나 큰지 끼고 다니기가 힘들 정도예요.”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나영이는 뚝딱뚝딱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하얀색 A4지 위에 핑크색 하트 세 개가 어우러진 그림이다. A4지를 가위로 오려 하트 모양을 만든 뒤 다른 종이 위에 얹고 파스텔을 덧칠했다. 아이가 “여기요” 하며 종이를 건네는데, 핑크색 하트를 그리는 마음이 고마워 뭉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이는 금세 또 다른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색연필을 들었다.

    “저 실은 이런 거 되게 갖고 싶었어요….”

    조용히 감사 인사를 하는 듯싶더니, 부끄러운 듯 금세 웃어버리고 만다.

    “나영이는 참 회복 의지가 강한 애예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많은 아이야.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죠. 다른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들 보면 끝까지 칙칙한 색으로 그리는 애들이 많거든요. 근데 이건 핑크색에 하트잖아요. 얼마나 밝고 고와요. 전 이 그림이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나영이는 정말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나영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신 교수가 그림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그는 “보통 재주가 아니다”라며 “본인은 의사가 되겠다는데 나는 화가로 키우고 싶다. 재능이 많은 아이”라고 감탄했다. 이 변호사는 옆에서 “정신과 의사가 돼 미술치료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장단을 맞췄다.

    “가을이 되면…”

    그 사이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나영이가 한 배변주머니는 몸에 딱 맞고 일상생활을 하기 편리하게 제조업체에서 따로 맞춰준 것이다. 크기가 작아 좋은 대신 금세 가득 차 자주 비워줘야 한다는 걸 그날 알았다.

    “우리는 화장실에 가면 한꺼번에 변이 나오지만, 얘는 소화가 되는 대로 조금씩 주머니가 차요. 밥을 많이 먹으면 그만큼 빨리 차죠. 이게 가득 차면 많이 아프대요. 그때마다 비워주거나 주머니를 갈아줘야 하는데 혼자 하기엔 번거롭고요. 얘도 그걸 아니까 한동안 밥을 안 먹으려고 해서 속을 많이 썩였어요.”

    사실 나영이는 또래에 비해 많이 작아 보였다. 처음 봤을 때, 사춘기가 시작되는 5학년생이라기보다는 아직 2~3학년 꼬마 같은 느낌에 놀랐을 정도다. 아이는 “3학년 때보다 키는 요만큼 크고 몸무게는 3kg 늘었다”고 했다.

    “요즘엔 밥을 잘 먹어서요, 예전엔 제가 우리 반에서 손목이 제일 얇았는데, 이젠 저보다 더 얇은 남자애도 있어요.”

    말하는 것도 아직은 천진한 어린애 같다. 아버지는 많이 먹고 푹 자야 건강하게 클 텐데 그걸 못 하는 게 큰 걱정이라고 했다.

    ▼ 잠도 늦게 자?

    “보통 새벽 1시 반쯤 자요.”

    ▼ 아니 어린이가 그렇게 늦게 자면 어떡해. 그때까지 뭘 하느라고?

    “할 게 많아요. 학교 숙제, 학원 숙제, 재능 숙제, 눈높이 숙제, 일기, 일기, 일기….”

    나영이는 후원단체의 도움으로 가정 학습지를 하고 있다. 사고를 당한 뒤 치료와 재판 때문에 한동안 빠진 수업을 학원과 학습지로 보충했다. 일기는 공식적인 것과 비밀 일기 두 종류를 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초등학교 5학년생이 매일 오전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 TV 보느라 그런 거 아니야?

    “아니에요. 일찍 자면 빵빵해진단 말이야….”

    나영이가 도움을 구하듯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린다. 알고 보니 배변주머니 얘기였다. 10시쯤 주머니를 비우고 잠자리에 들면 오전 4시쯤엔 주머니가 가득 찬다고 한다. 그럼 아이는 고통 속에 잠을 깨 주머니를 비워야 한다.

    “그전엔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던 아인데, 이거 달고부터는 약간만 땡기든가 하면 벌떡 일어나서 나와요. 자다가 그러는 게 곤욕스러우니까 아예 안 자는 거 같은데….”

    ‘일찍 자라’ 얘기하면서도 더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유다.

    ▼ 그렇게 자면 언제까지 자니?

    “한… 7시 반까지요….”

    제 잘못도 아닌데 아이는 눈치를 본다. 그러면서도 핑크색 하트를 그린다. “가을이 되면…” 요즘 나영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여름방학 때 배변주머니 제거 수술을 하고 나면, 많이 먹고 푹 자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친구들하고 같이 줄넘기 하고 싶어요. 지금 해도 100개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배변주머니를 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나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첩첩산중

    “쟤가 아주 사내애 같았거든요. 활달하고 재밌고. 지금 웃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래는 얼마나 까불까불했는데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 눈엔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사실 배변주머니 제거 수술을 받는다 해도 나영이에겐 첩첩산중 험로가 남아 있다. 변실금이다.

    “항문을 복원한 뒤 괄약근 조절 능력이 안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변이 만들어지는 대로, 계속 새는 거죠. 대장암이나 직장암에 걸려 항문을 제거한 분들이 이 수술을 많이 받는데 열 명 중 다섯 명은 적응을 못하고 다시 배변주머니로 돌아간다더라고요. 애가 고통스러운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나서 또 그리 되면 어쩌나 싶어 처음엔 그냥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내 자식이라면 나는 해준다’ 하시더라고요. 배변주머니 없이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번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 수술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나영이도 원했다. 그러나 항문 복원 수술을 받은 뒤 이미 나영이의 항문으로는 배변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 일부 소화액 등이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학교 갈 때 패드를 대면 돌아올 때쯤 흥건히 젖을 정도다. 이날 의사는 ‘항문 복원이 잘 돼 2차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이제부터 천천히 괄약근 조절 훈련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아직 나영이한테는 얘기 안 했는데, 수술 잘 되면 1년 정도 휴학을 시킬 생각이에요. 애가 말을 들을지 모르지만…, 집에서 같이 연습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수술이 잘 됐다고 하니 오늘부터 새로운 고민이 또 시작되네요.”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길, 아버지의 걱정을 모르는 나영이는 씩씩하고 즐겁다. 깡충깡충 날아가는 발걸음이다.

    “벌레가 사과를 파먹으면 뭐게요?”

    갈비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입이 짧다고 해 걱정했는데 꼭꼭 씹어 제법 잘 먹는다.

    “어, 채식주의자가 웬일이야?” 평소 고기를 잘 안 먹는 딸 때문에 속을 끓인 아버지가 농담을 건네니 “내가 무슨 채식주의자야. 편식주의자지~” 하며 애교를 부린다.

    ▼ 어떤 음식 좋아해?

    “오늘 점심에 병원 갔을 때는 부대찌개 먹었어요.”

    ▼ 맵고 얼큰한 거 잘 먹는구나.

    “물냉면도 좋아해요.”

    그러고 보니 갈빗집에 들어가자마자 뭘 먹겠느냐는 질문에 ‘물냉면이요’ 하긴 했다.

    “과자 같은 건 별로 안 먹고, 과일을 좋아해요.”

    아버지가 거든다. 며칠 전에는 파인애플을 사달라는 딸과 안 된다는 아버지가 한판 기싸움을 벌였다. 나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파인애플. 하지만 웬만하면 사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섬유질이 많잖아요. 꼭꼭 씹어 먹으면 괜찮은데 그냥 삼키면 관 타고 그대로나오거든요. 많이 아프대요. 그러면서도 자꾸 사달라고 하니까. 잘 씹어 먹을 거야? 그래야 사주지.”

    아버지가 으름장을 놓는 사이, 식사가 끝나고 점원이 디저트를 가져왔다. 파인애플이었다! 나영이는 신바람이 났다. 한입에 냉큼 넣고는 아버지 눈치 보며 허겁지겁 씹는다.

    “여기다 내. 일단 뱉고서 조금씩 잘라 먹어.”

    도리도리.

    “100번 씹어서 넘겨야 돼”

    끄덕끄덕.

    그렇게 나영이는 수십 번씩 씹어 손가락 한 마디만한 파인애플 다섯 조각을 먹었다.

    “아빠, 사과를 벌레가 먹으면 뭐게~요?”

    신이 나서 수수께끼도 낸다. 정답은 파인애플. 사과가 벌레에 ‘파인’ 것이란다. 나영이와 함께 보낸 3시간 동안, 아이는 단 한 번도 자기를 딱한 눈빛으로 바라볼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 발랄함이 애틋했다.

    “제 이름은 OO이에요”

    헤어질 무렵, 내내 ‘나영이’로 불리던 그 아이가 기자의 명함에 연필로 뭔가 쓰기 시작했다.‘OOO.’자기 이름이었다.

    “언니, 제 이름이 OO거든요. 언니 이름이랑 비슷하죠. 그래서 제 별명이 OO인데, 언니도 그래요?”

    처음 만나던 때, 제 얼굴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이던 아이가 꾹꾹 눌러 이름을 써주는 순간, 그 활짝 웃는 눈을 바라보다 그만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이는 더 이상 끔찍한 피해를 당하고 울부짖는 나영이가 아니었다. 잘 웃고, 줄넘기 잘 하고, 수학을 좋아하고, 파인애플을 꼭꼭 씹어 먹는 OO이가 됐다.

    나영이 아버지는 사건 이후 한 인터뷰에서 “나영이를 착하게 키운 게 내 실수였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사고 당일, 범인이 학교 앞 골목길에서 아이를 잡고 ‘너 이 교회 다니니?’ 말을 걸었을 때 무시하고 도망치기만 했어도 끔찍한 사고를 면하지 않았겠느냐는 자책이었다. 아이가 “아니요, 다른 교회 다니는데요” 대답하며 멈추는 순간, 범인은 그 작은 몸을 번쩍 안아들고 건물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제는 “낯선 사람은 조심해라”고 가르칠 거라는 기사를 읽으며, 이 참혹한 경험이 아이에게 남겼을 깊은 상처를 생각했다. 나영이가 다시는 세상을, 사람을 믿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이 아이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있었다. 따뜻하게 마음을 열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 OO야, 언니 그림 하나 그려줄래? 언니가 OO이 보고 싶으면 보려고 그래.

    간신히 목소리를 다듬어 말을 건네자 아이는 색연필을 꺼내 명함 귀퉁이에 예쁜 버섯을 그려 넣었다.

    “언니가 송씨니까, 송이버섯이에요. 히히.”

    꼼꼼하게 색도 칠했다. 주황색, 초록색, 노란색을 고루 쓰더니 버섯 볼에는 새빨간 연지를 발랐다. 역시 모두 밝고 명랑한 색깔이었다. 아이는 식당 밖으로 나온 뒤에도 기자의 차가 떠날 때까지 아빠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을 들어 계속 흔들어줬다. 까만 구두 위에서 반짝이는 은빛 꽃장식보다, 그 웃음이 훨씬 더 눈부셨다.

    나영이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문서창을 열어놓고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영이의 활짝 웃는 얼굴, ‘제 이름이 OO거든요’ 하며 바라보던 눈빛을 담을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기사는 없을 것 같았다. 지난 2년여 동안, 얼마나 많은 이가 나영이의 곁을 든든히 지켜줬나에 대해 생각했다. 나영이를 치료한 의사들, 경찰이 오고가는 걸 지켜봤을 이웃들, 한 아이의 오랜 결석과 조퇴를 눈치 챘을 교사들…. OO이가 나영이임을 알게 됐을 그 많은 이가 아이를 지키고 감싸줬기에, 아이는 큰 상처를 안고도 여전히 사람을 믿고 마음을 나누며 자라고 있었다. 나영이가 앞에 놓인 첩첩험로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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