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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저처럼 아픈 아이들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나영이’ 첫 인터뷰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저처럼 아픈 아이들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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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 얼굴 알려지면 안 돼요”
  • ●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 아이
  • ●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좋아하는 음식은 파인애플
  • ● “가을 되면 친구들과 줄넘기 할래요”
“저처럼 아픈 아이들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나영이 그림

나영이(10)는 잘 웃었다. 활짝 미소 지을 때면 고른 치아가 싱그럽게 드러났다. 재잘재잘 얘기하다 말문이 막히면 콧등을 찡긋하며 애교를 부릴 줄 알았다. 길을 걸을 때는 아빠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웃을 때나, 얘기할 때나, 깡총깡총 뛰는 순간에도, 환한 이마 아래 두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참 예쁘구나. 그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이는 2008년 겨울, 등굣길에 참혹한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은 주먹을 휘두르고, 목을 조르고, 얼굴까지 깨물면서 나영이를 제압했다. 그 상처를 치유해온 2년여 동안, 나영이는 다시 웃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나영이의 이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기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딸의 일상이 늘 끔찍한 고통인 것처럼 기억되는 게 싫다고 했다. 낱낱의 상처가 남아 있다 해도, 아이는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찾고 있다.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뛰어놀면서 자신의 삶을 산다. 그를 만나는 자리에는 사건 직후부터 나영이를 상담해온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신의진 교수와 법률적인 문제를 돕고 있는 이명숙 변호사가 동석했다.

그날은 마침 지난 1월 복원 수술을 받은 나영이의 항문이 탈 없이 자리 잡은 게 확인된 날이었다. 아이는 ‘그 사건’으로 대장과 항문을 잃었다. 배꼽 옆 인공항문에 배변주머니를 달고 대변을 처리해왔다. 항문 복원 수술 직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수술이 잘됐다. 배변주머니를 뗄 수 있게 됐다”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사실 나영이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왔다. 이날 마침내 의사가 “잘 아물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이제 두 달 뒤에나 보자”며 미소 지었다. 그때 만나면 장을 항문으로 연결해 일반인처럼 배변할 수 있게 하는 2차 수술 일정을 잡게 될 것이다.

“사진 찍으면 안 돼요”



“수술 뒤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내내 불안했어요. 오늘 ‘됐습니다’ 하시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어땠어? 기분 좋았지?”

아버지는 손에 꼭 쥔 분홍색 휴대용 게임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딸에게 말을 걸었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영이는 약속 장소에 들어온 뒤 한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곁에 바싹 다가앉은 채 게임기만 들여다봤다. 푹 숙인 정수리와 동그랗게 모은 어깨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읽혔다.

▼ 나영아 불편해? 그냥 편하게, 나영이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는 거 보러온 거야. 그냥 갈까?

“사진 찍으면 안 돼요.”

한참 만에 기자가 말을 걸었을 때 아이가 한 첫마디였다.

▼ 그럼. 절대 안 찍을 거야.

“아빠도 찍으면 안 돼요. 아빠 보면 친구들이 다 안단 말이에요.”

▼ 그래, 알았어. 약속할게.

“사진 찍고 나서 얼굴 지우는 것도 안 돼요. 그냥 찍지 말아요.”

▼ 여기 아빠랑 신의진 선생님이랑 이명숙 변호사님 계시지? 언니가 사진 찍으면 이분들이 혼내주실 거야. 절대 못 찍어.

그제야 아이는 안심을 했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찍고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낸 게 상처가 된 모양이라고, 아버지가 귀띔했다. 얼굴 부분은 세심히 가렸지만 옷은 그대로 노출됐다. 나영이는 그걸 보고 “아빠 이 옷 입고 학교에도 온 적 있잖아.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떡해” 하며 속상해 했다고 한다.

아이 주변에서는 누구 하나, 이 아이가 나영이인 걸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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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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