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다섯 번째 르포 : 삶과 죽음의 의미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4-28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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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암병동의 아침은 분주하다. 청소 아주머니가 대걸레로 복도를 닦는다. 환자, 보호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수를 한다. 춘천 할머니가 손에 침을 발라 귀밑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난소암으로 입원한 공○○(64)씨가 복도에서 큰 목소리로 남편과 떠든다.

    원장이 전공의를 데리고 회진을 돈다. 원장을 주치의로 둔 환자는 하나같이 원장을 반긴다.

    “어제 힘드셨어요. 변 보셨나요.”

    “한 번 봤는데 굵게 안 나와요.”

    허○○(64)씨는 위암이다. 소화가 잘 안 돼 과일을 먹으면 안 된다.



    김○○(54·여)씨는 왼팔이 오른팔보다 한 배 반쯤 두껍다. 유방암이 근육과 뼈로 퍼졌다. 아주머니는 씩씩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사는 게 목표다.

    “우리 사위가 엊그제 또 1등을 했어요. 하하. 런던에서 금메달 딸 거예요. 그 때까지는 살아야죠.”

    나른한 오후

    사위는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장모가 말기 암이란 소식을 듣고 미루던 결혼을 당겨 했다. 부모는 다 똑같다. 결혼 안 한 큰딸이 걱정이다.

    “입맛도 좋고, 머리도 안 빠져요. 사위 금메달 따는 거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진 순서가 돌아왔는데 난소암 환자 공씨가 병실에 없다. “휴게실에 간 것 같다”고 간호사가 귀띔한다.

    “퇴원 언제 해유?”

    공씨가 원장을 보자마자 묻는다. 고기를 꿀꺽 삼키면서.

    “고기를 많이 드시면 일찍 퇴원할 수 있어요.”

    유방암 말기인데, 난소로 암이 전이했다. 공씨는 “10년은 더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함평 한우를 살코기만 골라 찐 거여유. 주사 맞고 출출할 때 먹을려구유.”

    원장이 웃는다. 복도를 지나가던 구○○(71·여)씨를 부른다.

    “이것 좀 보세요. 이분처럼 드셔야 해요.”

    원장이 구씨를 따로 불러 귀엣말을 한다.

    “몸 상태가 저분보다 좋으신데 음식을 그렇게 못 드시면 어떡해요. 저렇게 먹어야 해요. 알았죠.”

    유방암을 앓는 조○○(57·여)씨도 삶은 고기를 씹으면서 원장을 맞았다. 아침밥상엔 상추와 풋고추가 올라와 있다. 원장이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보신탕”이라고 답하면서 웃는다.

    수용하거나 분노하거나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목련이 꽃잎을 바람에 내놓는다. 오후 햇살이 기도실을 비춘다. 초로의 여인이 다 큰 딸을 안고 기도한다.

    이 병동은 수술로는 암세포를 죽이지 못하는 이가 모인 곳. “암은 소리 없이 온다”고 원장은 말했다.

    햇살이 건물 깊숙이 들어온다. 병동의 오후는 나른하다. 휴게실 소파에선 남자 셋이 맨발로 잔다. 병구완만큼 고된 일도 없을 것이다.

    목사가 왼손을 환자 어깨에 포갠다. 환자가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뜬다. 복도 의자에서 일어나 말초정맥용 수액을 건 폴대를 밀면서 병실로 걸어간다. 배에 물이 괴는 병증(病症) 탓에 똑바로 걷지 못한다. 5년 전 눈 안쪽에 생긴 암이 혈액에 올라타 간으로 전이했다. 간암 말기(末期)다.

    목사는 이 병동에서 원목으로 수고한다. “활기찬 완벽주의자”라고 목사가 환자를 소개한다. 60대 아주머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일 하면서 살았다. 농협에서 주는 농가주부상을 받을 만큼 삶이 활발했다.

    목사는 미국 병원에서 6년간 암환자를 돕다가 이 병동으로 옮겨왔다. 목사는 언니와 오빠를 잃은 뒤 방황했다. 목사의 언니는 목사가 대학교 2학년 때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다. 오빠는 언니의 주검을 집에서 목격한 후 우울증에 걸려 7년간 투병하다가 죽었다.

    삶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절망과 우울이 밀려왔다. 후회와 회한도 일었다.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믿음을 통해 치유했다고 목사는 말했다.

    암을 인정한 이는 평화롭다. 암을 거부한 이는 분노한다. 눈을 부릅뜬 채 목숨 줄을 놓거나 마음을 돌보지 못해 극단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두 달 전에도 50대 남자가 외박 나갔다가 산에서 목을 맸다.

    사람은 죽는 걸 안다. 숨이 가쁘고, 맥이 느려진다. 죽음을 수용(受容)한 이는 삶을 포기(抛棄)한 이보다 여명(餘命)이 길거나 편안하다. 행복하게 죽는다. 정선 아주머니는 수용적이라고 목사는 말했다. 죽을 때도 행복과 불행이 나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이가 드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성격이 완고하거나 자아가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죽음을 수용하지 못한다.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목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 본성입니다. 목사나 스님도 마찬가지죠. 신을 뒤늦게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흙으로 돌아가면서 창조주를 찾는 거죠. 마지막 호흡을 토하면서 임종 세례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노를 나타내면서 죽는 이도 적지 않고요”라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사랑을 갈구한다. 소외당하는 걸 참지 못한다. 부귀영화(富貴榮華)도 소용없다. 돈이나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준다. 가족에 짐이 된다는 자괴에 시달린다. 오감을 열고 사물을 본다. 선한 일을 하고자 한다.

    죽음을 예비한 사람은 부정·분노·협상·우울·순응을 거친다. “잘못 진단했을 거다” “믿지 않는다”고 여기는 게 부정.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만…”이라면서 분노하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협상한다. 협상을 마무리하면 우울함에 빠진다.

    “우리 딸이 참말로 야무지다”

    춘천 할머니 김○○(69)씨는 교사로 일하다 5년 전 은퇴했다. 암세포가 뼈로 전이했다. 암이 신경을 누르거나 뼈로 전이했을 때 나타나는 통증은 아프다는 낱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뼈가 부스러질 때도 있다.

    할머니는 얼굴이 곱다. 교양이 넘친다. 모자 끝으로 흘러내린 귀밑머리가 날아갈 듯 얇다. “마음을 못 비우겠어요”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항암치료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었어요”라면서 귀밑머리를 넘긴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수용했다고 목사는 말했다. “우리 딸이 참말로 야무지다”고 할머니가 자랑한다. 딸은 지난해 11월15일 태권도를 전공한 남자와 결혼했다. 딸은 할머니를 닮아서 예쁘다. “손자를 봐야 할 텐데”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햇빛이 비스듬하다. 날이 길어졌다. 하지(夏至)가 두 달여 남았다. 복도에서 여자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가 말했다. “출근하는 여자 소리 있잖아요. 따각따각. 구두가 내는 소리. 그게 그렇게 부러워요.”

    할머니가 서둘러 딸 결혼시킨 사연을 길게 말했다. “외박 받아서 결혼식 다녀왔어요. 아들 녀석이 걱정이야.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자식이 눈에 밟히는 게 여자인가보다. 할머니는 마음을 비우신 것 같았다.

    할머니와 목사가 손을 맞잡는다. 할머니 목소리가 잠긴다.

    암 환자에 대한 병원 진료도 진화한다. 요즘엔 마음 건강도 챙긴다. 이 병동도 정신건강클리닉을 마련했다. 심리는 암의 발병과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마음치료를 병행하면 항암치료 효과가 두드러진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보호자도 적지 않다.

    “가장 강한 항암제는 희망”이라고 정신과 전문의는 말했다.

    항암치료가 주는 고통은 압도적이다. 약으로 통증을 줄이는 건 한계가 있다. 공포는 불안을 일으킨다. 날카로워진 교감신경이 불면을 가져온다. 머리칼이 얇아지고 구토가 나온다. 빈혈을 호소한다.

    가장 강한 항암제는 희망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압도적 고통은 의사와 환자를 갈등으로 내몬다. 항암치료를 권한 의사를 환자가 몰아세운다. 가족회의가 열린다. 자식을 생각해서 항암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말기 암 환자는 가족이 잔인하게 말하는 걸 참지 못한다. 부모가 마음 쓸까봐 숨어서 우는 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게 부모다.

    정신과 전문의는 “죽는 날까지 심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소한 의사소통 문제로 상처 입기도 하고요.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사는 게 중요해요. 임종 때까지 할 일을 찾는 게 좋습니다. 의사도 때로는 울적해요. 낫는 환자보다 잃는 환자가 많으니까요”라고 말했다.

    호스피스실은 사망이 임박한 이를 돕는다. 환자를 덜 아프게, 덜 숨차게 하는 완화 의료를 맡은 곳. 간호사가“여명(餘命)이 행복하게끔 희망을 주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서 일화를 전한다.

    70대 할머니가 1개월도 못 산다는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실로 넘어왔다. 대장암이 간, 폐, 뼈로 전이했다. 할머니는 “죽기 싫다”고 말했다.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암 덩어리가 림프를 눌렀다. 간호사 봉사자가 몸을 주물렀다. 목욕을 돕고, 산책도 했다. 그림치료 면담치료를 병행했다. 라포(Rapport·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형성됐다. 8개월 지났을 때 할머니가 말했다. “몸이 좋아졌다”고. 할머니는 1년6개월을 더 살았다. “하나님이 나를 데려간다”면서 평온하게 돌아가셨다.

    간호사는 “삶을 끝까지 부여잡으면 고통스러워요. 행복하게 남은 삶을 살아야죠. 볼 수 있을 만큼 맘껏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맘껏 듣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맘껏 말하고, 먹을 수 있을 만큼 맘껏 먹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암을 가지고 사는 시대

    백혈병에 걸린 여섯 살 꼬마 녀석이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에펠탑을 그린다. 머리칼이 다 빠진 소아암 환자 철수(가명)가 중학교 1학년 국어책을 읽는다.

    벚꽃 지는 것 보니 /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노래한 시(詩)”라고 선생님이 가르친다. 나는 낭독을 들으면서 사춘기(思春期)와 청년(靑年)이란 낱말을 떠올렸다.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고 싶어하듯 백추(白秋)의 환자는 청춘을 그리워할 것이다.

    철수는 어린이병원학교에서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한다. 아이사랑 봉사모임에 적을 둔 초·중등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교를 다닌다는 정서적 지지가 병마와 싸우는데 도움을 준다고 교장은 말했다. 교장은 소아혈액종양을 전공한 의사다.

    꼬마 녀석들이 인터넷 게임을 한다. 백혈병 뇌종양 악성림프종을 앓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학교 앞 복도에 걸려 있다. 그림은 하나같이 밝다. 소아암 완치율은 80%에 달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철수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71) 할아버지가 퇴원 채비를 한다. 통원 치료를 받은 지 4년이 넘었다. 위암이 폐로 전이했다. “입맛이 없는 것만 빼고 다 좋아요.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편안하게 가는 일만 남았죠”라면서 웃었다.

    “할아버지처럼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암과 함께 오랫동안 사는 사람이 많아요. 완치의 개념이 바뀌어야 해요. 항암제가 우수하고, 신약도 계속 나옵니다. 심장병, 당뇨병처럼 암을 가지고 사는 시대가 곧 올 거예요”라고 원장은 말했다.

    바람을 맞은 목련꽃잎이 하얗게 흩날린다.

    ☞ 도움말 주신 분

    ● 정현철 연세대 의대 에비슨특훈교수·암센터 원장·종양내과 교수

    ● 유철주 연세대 의대 소아혈액종양학과장·교육부학장

    ● 김경란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임상조교수

    ● 허윤정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팀장

    ● 허수정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 김미정 세브란스병원 봉사자코디네이터

    ● 이경희 세브란스병원 원목·목회학박사

    ● 이재욱 세브란스병원 사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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