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동물을 사랑하는 여인

  • 입력2010-04-30 10: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동물을 사랑하는 여인

    <릴리트> 1887년, 캔버스에 유채, 200×104㎝, 사우스포트 애킨슨 미술관 소장

    여자가 모피를 좋아하는 것은 모피가 따뜻해서가 아니라 부와 우아함을 상징하고 있어서다. 또 남자가 모피를 두른 여자에게 반하는 것은 여성미와 야성미가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침략자로부터 여자를 보호해주고 싶은 보호본능 또한 들어 있다.

    하지만 특이한 애완동물을 키우는 여자는 남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뱀을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그린 작품이 존 콜리어의 ‘릴리트’다. 이 작품은 릴리트를 황금빛과 초록빛 그리고 청색의 무늬가 있는 뱀으로 비유한 낭만파 시인 키츠의 작품 ‘라미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유대신화에 나오는 릴리트는 태초에 아담의 아내로 아담처럼 흙으로 만들어졌다. 히브리어로 밤의 괴물을 의미하는 릴리트는 밤에 잠이 든 남자를 유혹해 자신의 욕망을 채웠으며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고자 아담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까지 잡아먹었다. 아담의 보호자인 하나님은 릴리트에게 벌을 내려 낙원에서 추방해 버린다. 그리고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

    커다란 뱀이 릴리트의 몸을 친친 감고 올라가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다. 릴리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으로 뱀을 쓰다듬고 있다. 늘어뜨린 머리와 살포시 감은 눈 그리고 붉은 뺨은 릴리트가 성적 황홀경에 빠져 있음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악의 상징인 뱀과 아름다운 여체를 하나로 묶은 것은 여자라는 존재가 천사의 모습과 남자를 무자비하게 유혹해 파탄에 빠뜨리는 사탄의 모습을 지녔다고 생각해서다.

    존 콜리어는 릴리트가 뱀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팜파탈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뱀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동물원에서 뱀을 자세히 관찰했다고 한다.

    파충류가 혐오감을 주는 동물이라면 말은 강한 남성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말에 대한 성적 욕구는 영화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1982년 1편이 개봉된 이래 1995년 11번째 작품이 나온 ‘애마부인’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긴 머리 휘날리며 잠옷 바람으로 말을 타는 애마부인은 한때 남성들의 로망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여인

    <환희> 1894년, 캔버스에 유채, 310×275㎝, 크리코우 나르도우 미술관 소장



    말을 통해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그린 작품이 포드코빈스키의 ‘환희’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의 황홀함을 표현하고 있다.

    벌거벗은 여자는 숲 속에서 손으로 말의 목을 꼭 끌어안은 채 얼굴을 검은색 말목에 기대고 있다. 그녀는 말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허벅지를 말의 허리에 붙이고 있다.

    그녀가 탄 말의 입에서는 거품이 품어져 나오고 콧구멍은 숨을 들이쉬기 위해 크게 벌어져 있다. 말은 힘차게 도약하기 위해 발을 앞으로 뻗고 있다.

    이 작품에서 검은색 말은 여자의 흰색 살결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숲은 밤을, 하늘은 아침을 암시한다. 숲을 향해 바람에 날리는 말 갈기와 여자의 머리는 밤에 벌어진 섹스를 암시하며 말의 허리에 밀착된 여성의 허벅지는 섹스 중임을 의미한다.

    포드코빈스키는 도약하는 말을 통해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표현했으며 화면 중앙의 여성은 남성을 지배하는 것은 여자임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말의 거품과 내밀고 있는 혀는 남성에게 섹스는 힘든 노동임을 암시하며 말의 눈동자는 여자의 눈치를 보는 남성을 나타낸다.

    동물을 사랑하는 여인

    (좌) <포르노크라테스> 1878년, 파스텔과 고무수채, 70×48㎝, 나무르 펠리시앵 봅스 미술관 소장 (우) <앵무새와 함께 있는 여인> 1866년, 캔버스에 유채, 129×195㎝,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남자는 자신이 섹스를 밝히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여기지만 여자가 섹스를 밝히는 것은 정숙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돼지를 통해 정숙하지 못한 여자를 표현한 작품이 봅스의 ‘포르노크라테스’다. 이 작품에서 돼지는 애완동물은 아니지만 원초적 본능을 상징한다. 돼지는 먹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여자가 눈을 가린 채 돼지 목에 달린 끈을 잡고 걸어가고 있고 하늘에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환호하는 아기 천사들이 있다.

    이 작품에서 검은색 스타킹과 구두 그리고 장갑과 허리 뒤의 리본은 보수적인 현실을 의미하며 벌거벗은 몸은 내면의 욕망을 나타낸다. 아기 천사는 사랑을 상징한다.

    펠리시앵 봅스의 이 작품에서 돼지 목에 달린 줄을 잡고 있는 여자는 본능에 끌려가고 있음을 암시하며 눈을 가린 것은 본능 때문에 현실을 바라보지 못함을 나타낸다. 화면 아래 다양한 남자의 모습은 욕망에 충실한 여자를 바라보고 싶지 않은 남성의 내면을 암시한다.

    동물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좋아하는 동물도 각각 다르지만 보통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그 동물이 순종적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쿠르베의 ‘앵무새와 함께 있는 여인’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에 벌거벗은 여성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 구겨진 시트 위에 편안하게 누운 여인은 앵무새와 놀고 있다.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는 일상의 편안함을 나타낸다. 커튼 사이로 풍경이 살짝 보이지만 어둡게 처리해 여인의 매끄러운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여인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 졸업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졸업

    강릉대 강사 역임

    개인전 9회

    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 ‘명화 속의 삶과 욕망’ 등


    갈색 톤의 이 작품에서 앵무새의 깃털만 색조를 띠고 있으며 아라베스크 문양의 커튼이 쳐져 있지만 여인은 오달리스크가 아니라 평범한 여인이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후기 누드화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1866년 살롱전에 출품되었으나 흐트러진 여인의 머리와 긴장감 없는 여인의 자세 때문에 비평가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