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가 중도실용이나 서민정책, 행정체계 개편에 개헌 이슈까지 꺼내는 동안, 야당이 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예상하지 못한 이슈들이 대통령 측근들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제기됐고, 대통령의 과감한 힘 싣기가 이어졌으며, 구체적인 정책방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각론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든 이어나갔지만, 이미 전선은 옮겨갔고 새로운 이슈에 대한 당의 공식입장을 결정하는 데도 한참이나 헤매야 했다. 일종의 심리적 무력감이었다고 할까.” -3월 중순 민주당 지도부 의원과의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진영이 꺼내든 정치개혁론이 여의도 정가를 뒤흔든 3월 중순, 한 여당의원은 “MB의 정치행보는 군사전략의 기동전 이론으로 풀어보면 가장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고착화된, 그래서 상대방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는 전선을 버리고 ‘공중폭격과 신속 이동이 가능한 전차 전력으로 예상치 못한 지역을 치고 들어감으로써 전선을 뒤흔드는’ 기동전의 기본공식이 대통령의 이슈 던지기 전략과 꼭 맞아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당시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 친이, 친박 진영의 대립이 정점으로 치닫던 상황. 정부의 수정안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원안고수 입장이 맞붙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전선이 고착된 상태에서 대통령이 직접 “정치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손을 대야 하는 기본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고 여당에 당부하며 전선을 뒤흔든 셈이다.
여의도에 팽팽한 대립전선이 형성됐을 때 뜻밖의 어젠다를 던져 전혀 새로운 논쟁을 만드는 방식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선보인 바 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논쟁 이후 고전을 계속했던 청와대가 이른바 중도·실용 혹은 친서민 정책이라는 이슈를 지렛대 삼아 극적으로 지지율을 회복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4대강 논의가 이어지는 와중에 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이슈를 적극적으로 꺼내 들었던 것이나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교육개혁이나 사교육 문제 해결이라는 대중성 있는 의제를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제기한 것도 모두 마찬가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 영남권 중진의원의 말이다.
“이런 식으로 제기된 어젠다는 당연히 매우 높은 집중력을 갖는다. 대통령 측근이나 친이계 핵심의원들의 발언으로 형성된 논점에 친박계 의원들이나 야권이 ‘뜬금없다’고 느끼는 다음 순간, 대통령 본인이 해당 문제를 직접 강한 톤으로 언급함으로써 힘을 실어준다. 여기에 정부 관련부처의 실무작업 추진이나 친이계의 입법안 마련이 일사천리로 급물살을 탄다. MB가 직접 챙기겠다고 언급한 교육개혁대책회의가 대표적인 경우다. ‘어어’ 하다보면 상황은 벌써 저만치 가 있고 이전의 논쟁점은 순식간에 힘을 잃는 것이다.”
‘내가 싸울 전장은 내가 고른다’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기동전 전략의 연원은 19세기 초 유럽을 석권한 나폴레옹 군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하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뜻밖의 모험을 감행했던 나폴레옹의 전략이 그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기동전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군사전략가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이 창시한 전격전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탁월한 속도를 자랑하는 전차부대를 앞세워 마지노선을 뚫고 들어가 9일 만에 프랑스 파리에 무혈입성한 에르빈 로멜 장군의 7기갑사단은 두고두고 기동전의 신화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