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청송’의 마지막 보호감호자들

김길태가 불러온 新 보호감호…벌벌 떠는 87명의 하소연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0-04-28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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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교도소에서 날아온 16통의 편지, 지금은 사라진 사회보호법에 삶을 저당 잡힌 감호자들이 ‘신동아’ 편집실에 편지를 보내왔다. 하나같이 “보호감호자가 아직도 있다는 걸 세상에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주장도 있었다. 얼마 전 발생한 김길태 사건은 우리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던 ‘보호감호제’를 흔들어 깨웠다. 재범의 우려가 높은 사람들을 사회에 내보낼 수 없다는 여론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재소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인도 아닌 보호감호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청송’의 마지막 보호감호자들

    청송교도소 전경.

    “처음에 이곳에 올 때는 희망이 보였지만 지금은 작은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1년이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이제는 2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시점에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딸이 있고 부모님이 고향에서 이 못난 아들이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40대인 허OO씨는 강도죄로 6년을 복역했고 현재 청송교도소에서 2년째 보호감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허씨에게 보호감호 조치를 결정한 사회보호법은 그가 수감돼 있던 2005년에 없어졌다. 인권침해와 이중처벌 논란을 빚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허씨는 현재 죽은 법이 내린 처벌을 받고 있다.

    40대 초반의 중범죄 전과자인 윤OO씨도 마찬가지다. 준강도 및 절도죄로 여러 번 옥살이를 하고 보호감호를 받고 있는 그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2003년 구속 전까지 함께 살던 사실혼 관계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2008년 8월 저의 징역형이 끝날 때까지 2007년에 22번, 2008년에는 18번 접견을 왔을 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저의 곁에 머물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인도 ‘보호감호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작년 1월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습니다. 언제 출소할지 모른다는 것은 감호자에게나 가족에게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보호감호를 받고 있는 중범죄 전과자들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는 사회적으로 용서받기 어렵고 재범 가능성 또한 높다. 그런 점에서 사회보호를 위해 보호감호를 결정했던 법의 정신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들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3월 말 현재 87명

    보호감호는, 강력 범죄를 여러 차례 저지른 범죄자들이 징역살이를 끝낸 뒤 보호감호소에서 최장 7년까지 ‘보호’와 ‘감호’를 추가로 받게 하던 사회보호법상의 제도였다. 1980년 만들어진 이 법은 2005년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이 제정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 법 시행 전에 이미 확정된 보호감호 판결의 효력은 유지되고 그 확정판결에 따른 보호감호 집행에 관하여는 종전의 ‘사회보호법’에 따른다”는 내용의 ‘경과규정’(제2조)이 남으면서 사회보호법의 생명은 이어졌다. 교도소로 이름을 바꾼 ‘청송감호소’도 살아남았다.

    2005년 사회보호법이 없어질 당시 이 법의 존폐를 두고 말이 많았다. “흉악범들이 사회에 쏟아져 나오면 범죄가 다시 들끓고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었다. 2005년 당시 대구지검장이던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전 법무부 보호국장)은 언론사에 ‘보호감호제를 위한 변명’이라는 글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상습범죄나 조직범죄의 발호 등이 예상되는 만큼 보호감호 폐지는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보호감호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과거 범죄와의 전쟁을 부르짖던 시절처럼 사형제도가 확대되고 법정형을 대폭 올리는 특별법 제·개정이 오히려 줄을 이을 것이다.”

    사회보호법이 존재할 당시 청송에는 3개의 보호감호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 중 1,2 감호소는 현재 각각 제1청송교도소, 청송기술훈련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징역형을 받은 재소자들을 위한 수용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조두순 같은 흉악범들이 이곳 독방에 수감되어 있다. 보호감호 조치를 받은 사람들은 청송제3감호소로 불렸던 제3청송교도소에서 생활한다. 3월 말 현재 87명이 이곳에서 출소를 기다리고 있고 사회보호법 폐지 이전 보호감호가 결정된 재소자 100명 이상이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월16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청송교도소를 방문했다. 김길태 사건(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으로 여론이 좋지 않을 때였다. 이날 이 장관은 폐지된 지 5년 된 보호감호제의 재도입 계획을 밝혀 논란을 불렀다.

    “흉악범들을 사회와 격리하는 보호감호 제도를 다시 도입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형법 개정안을 발의할 방침입니다. 교정시설이 모여 있는 청송교도소를 흉악범의 교정 및 보호감호 시설로 활용할 것입니다. 형법에 규정된 상습범과 누범 가중을 폐지하고 그 대신 보호감호 처분을 신설한다면 위헌 논란을 빚지 않을 것입니다. 교화와 치료를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호감호의 취지를 살리겠습니다.”

    이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법무부 측은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각계의 의견도 물어야 하고 입법과정도 거쳐야 한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회 여론을 감안해 아동 성폭행범과 상습적 성폭행범의 가석방을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방침 정도는 세운 상태다”라고 밝혔다.

    김길태가 불러온 보호감호 부활

    ‘청송’의 마지막 보호감호자들

    2005년 8월3일 경북 청송군 청송보호감호소 앞에서 교도관들이 ‘청송제3교도소’ 현판을 바꿔 달고 있다.

    법무부의 보호감호 부활 입장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일부 언론이 성폭행범 등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감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보호감호는 80년 국보위가 제정했다가 민주화 이후 위헌 결정에 이어 2005년에 폐지된 제도다. 바로 이중처벌의 위헌성과 인권유린 때문이었다. 이 장관의 발언 취지가 보호감호를 모든 범죄에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인권의 후퇴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에 국한한다면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폭력 범죄는 일종의 ‘정신병’과 비슷해 교화(敎化)나 완치(完治)가 어렵고 따라서 재범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3월18일 사설)

    “이 장관의 발언은 부산 여중생 납치·피살 사건 등 일련의 흉악 범죄로 커진 국민적 불안과 공분을 명분과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보호감호제 부활은 섣부르고 위험한 발상이다. 교정 행정의 주무 장관이라면 강력 범죄자의 교화와 치료, 사회 복귀에 효과적인 방안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그런 노력은 뒤로 미룬 채 즉각적·현시적 효과만 의식해 어두웠던 과거의 낡은 유산을 불쑥 꺼내 드는 것은 무책임하고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한국일보 3월18일 사설)

    “보호감호제도는 명백한 이중처벌일 뿐만 아니라 사생활 침해와 선거권 전면 제한 등 헌법에서 명시한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반인권적 법제였다. 흉악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이용해 사법개혁의 성과들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으며, 치료 프로그램 중심의 교정정책을 강화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3월16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논평)

    “우리 위원회는 2004. 1.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하여 보호감호제를 규정하고 있는 사회보호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보호감호제도는 이중처벌 및 피감호자 처우 등 집행현실에서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제정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국가인권위원회 3월18일 보도자료)

    감호자들이 ‘신동아’에 보낸 편지는 대부분 이 장관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씌어진 것들이다. 편지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큰 사건만 터지면 그 사건 때문에 감호자들은 출소에 지장을 받는다. 김길태 사건 이후 감호자들은 벌벌 떨고 있다. 징역형을 살고 있는 재소자들은 이런 사건과 관계없이 출소하는데 재소자가 아닌 감호자들은 왜 출소를 못할까요”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비닐장갑 넣는 일

    그렇다면 현재 보호감호를 받는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혹시 필요 이상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선, 많은 감호자가 편지에서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이후 감호자들에 대한 관리 감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보호법 폐지와 함께 감호자 관리 업무를 맡았던 법무부 보호국이 없어지면서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설명. 실제로 감호자 관리권한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으로 넘어갔지만 수용 책임은 법무부 교정본부, 출소는 법무부 치료감호심사위원회에서 맡는 등 업무가 분산되어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워졌다. 한 감호자는 편지에서 “예전에는 불편사항이나 민원이 있을 때 보호국에서 접수해 답변도 해주고 시정조치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문제가 있어도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의를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저마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다른 부서로 일을 떠넘기고 해결을 안 해준다”고 주장했다.

    감호자들은 또 자신들이 감호기간에 받은 교육과 근로가 재사회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내놨다. 일반적으로 징역형을 받은 재소자들에게 보장되는 직업교육 같은 권리도 감호자들에겐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40대 후반인 감호자 박OO씨의 얘기다.

    ‘청송’의 마지막 보호감호자들

    지난 3월16일 경북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8세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을 예고 없이 접견했다. 이 장관이 창살 사이로 조두순에게 수감생활에 대해 묻고 있다.

    “일반 재소자들은 천안개발교도소나 안양 중간 처우의 집 또는 사회 외부통근이라는 제도와 본인이 원하는 전국 훈련교도소에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처우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감호자들은 이러한 처우의 혜택을 단 한 가지도 받을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할 뿐입니다. 현재 저희 감호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청송3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위생장갑) 봉투에다 비닐장갑을 넣는 일이 전부입니다. 본인이 정말 필요로 하는 기술교육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2005년 사회보호법이 폐지될 당시만 해도 법무부는 자치제, 휴게실, 귀휴활성화 등 감호자에 대한 처우 개선에 힘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혜택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감호자들이 주장하는 불이익의 예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감호자들은 일반사면, 특별사면, 경축일특사 등에서도 제외된다. 법무부 치료감호위원회의 심사에서 출소가 결정되지 않으면 나갈 길이 전혀 없다. 출소자를 위한 집, 취업박람회, 개방교도소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이와 관련, 법무부 측은 “감호자는 형기를 모두 끝낸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정국에서 행해지는 모든 기회와 절차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징역을 살고 있는 재소자가 아니기 때문에 재소자의 권리를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로수당 평균 40만원

    감호자들의 편지에는, 감호기간이 재사회화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기간이 될 수 있게 실질적인 혜택을 달라는 주장이 많았다. 감호자 남OO씨는 “법무부에서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 신분의 감호자들을 잡아놨다면 잡아놓은 기간에는 최저임금 이상을 벌 수 있는 근로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에 나간 뒤 최소한의 생활기반을 마련해 재범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재소자들보다 더 못한 대우를 하면서 자유를 박탈한 채 구금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분명히 인권침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감호자들은 재소자가 아닌 만큼 일반 재소자들과는 다른 처우를 받고 있다. 근로수당 체계도 재소자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감호자들은 근로수당 체계가 재소자들보다 더 못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일반 교도소의 경우 재소자들은 외부 근로작업을 할 경우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뉘어 근로보상을 받는다. 상급의 경우 월 45만원, 중급은 30만원, 하급은 15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반면 감호자들의 경우 5개 등급으로 관리되고 있다. 5개월 단위로 진급해 20개월 뒤 1등급이 되는 식이다. 5등급의 경우엔 하루 7000원~1만1000원의 최저금액(1일 8시간 근로기준)을 받는다. 한 달 기준 24만~14만원선. 최고 등급인 1등급이 되면 하루 1만5000원~4만5000원을 받는데, 한 달을 기준으로 보면 최고 80만원에서 최저 28만원까지 차등 지급을 받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호자들은 매달 평균 40만원 정도의 근로수당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감호자는 편지에서 “최고 등급(60만~80만원)을 받는 사람은 전체 감호자(87명) 중 취사장과 청소를 담당하는 15명(관용부) 정도”라고 밝혔다. 어쨌거나 이들이 받는 근로소득은 2010년 현재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인 월 92만원에 못 미친다.

    현 정부 들어 출소 늦어져

    이런저런 불만이 많지만 감호자들이 갖는 불만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출소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특히 현 정부 들어 출소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호자들에 따르면 사회보호법 폐지 직후인 2005~2007년경에는 재산범의 경우 3개월, 강력범의 경우에도 1년 안에 출소가 가능했다. 그 당시에는 치료감호심사위원회의 출소심사도 2개월 단위로 비교적 정확히 이뤄졌다. 그러나 1년여 전부터는 출소 심사가 3~6개월 단위로 이뤄지고 그것도 들쑥날쑥하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특히 김길태, 조두순 사건 같은 대형 사건이라도 터지면 아예 출소심사 일정이 잡히지 않는다는 설명. 그러다보니 성폭력 관련 범죄자들의 경우 3~4년, 절도 등 강력범의 경우도 최소 30개월은 감호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김길태 사건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했다.

    출소심사가 형식적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2년가량 감호생활을 해온 김OO씨의 얘기다.

    “3~6개월에 한 번 시행되는 출소심사를 통해 출소 여부가 정해집니다. 하지만 심사 자체가 형식적입니다. 심사위원들이 내려와서 그 사람의 생활태도, 마음가짐, 계획, 결의 등이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데 감호조치를 받게 된 당시의 사건기록만 가지고 출소를 결정합니다.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보통 5~6번은 기본으로 받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1~3년가량 감호소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호자 이OO씨도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2008년에 들어서면서 출소 인원이 급격히 줄어 한때 20여 명선까지 내려갔던 감호자 수가 지금은 90명 가까운 수로 늘었습니다. 청송에는 요즘도 매달 3~4명, 많게는 8~9명의 보호감호 대상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가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명 정도입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들이지만, 감호소 안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이룬 감호자도 많아 눈길을 끌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 중에는 60이 넘은 나이에 2개의 학사학위에 도전하는 사례도 있었다. 성폭력 범죄로 징역 7년을 살았고 보호감호 3년째인 이OO(66)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교도소 수감 중이던 60세 때 최고령으로 학사고시반에 선발됐다는 이씨는 검정고시를 거쳐 학사 도전 자격을 얻었고 영어영문학을 전공해 2008년 2월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영자신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그는 현재 국어국문학 학사학위에도 도전 중이다. 2011년 2월 학위를 받을 예정. 이씨는 편지에서 “10년의 세월 동안 내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수없이 반성했다. 법무부가 감호자들의 사회복귀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써줬으면 한다. 징역형을 사는 재소자들도 누리는 혜택을 왜 감호자들은 누릴 수 없는 것인지 답답하다. 내 돈 주고 타 교도소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데도 수용 구분 원칙상 감호자는 청송3교도소를 벗어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심경을 밝혔다.

    학구열에 빠진 감호자

    한편 청송감호소에서 7년간 복역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큐소설 ‘무궁화특급호텔’을 썼으며 현재는 감호자 처우개선을 위한 활동을 펴고 있는 소설가 김진씨는 “많은 감호자가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고 사회에서 격리가 될 필요가 있는 것은 맞지만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임을 우리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만드는 데 국가가 나서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회보호법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불량배 일제검거에 관한 계엄포고 13호’를 발동해 전국적으로 6만명 이상을 검거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3만9000여명을 강제로 군부대에 보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삼청교육대다. 당시 신군부는 “우리 사회의 인간쓰레기들을 청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리고 신군부는 1980년 12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사회보호법을 제정했다. 사법부가 처벌적 성격의 징역형을 피고인에게 선고할 때 죄질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최대 7년까지 ‘보호감호’ 처분을 추가로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 이들을 위한 시설인 청송보호감호소는 1983년 문을 열었다.

    2005년 사회보호법이 폐지되기까지 청송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생겼다. 1984년에는 한 감호자가 교도관들의 구타와 고문 끝에 숨진 뒤 몰래 화장되는 일도 있었고, 1987년과 2002년 두 번에 걸쳐 처우 개선과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는 단식농성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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