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3월26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수일 후, 한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오랜 논란이 이어지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시점의 말이었지만, 이후 상황은 상당기간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북한에 의한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발언과 섣부른 단정을 경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 부딪치는 듯한 정황이 그것이다.
여기에 수습과정에서 야기된 쟁점과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대응방식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민간 어선과 잠수사의 수색 참여 여부,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과 교신기록의 공개, 생존가능시간 69시간을 둘러싼 혼선, 생존자들의 기자회견, 최근에는 조사단 구성이나 인양되는 함미의 이동, 절단부의 언론 공개 문제까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어지러운 정부의 행보는 엄청난 논란을 야기하며 상상 이상의 불신을 유발했다.
최악의 위기를 맞이해 군과 청와대가 이견을 보이는 듯한 현상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이른바 ‘관료정치’가 언론플레이와 정보장사를 통해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과연 이 같은 난맥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됐고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이었나. 청와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사건 대응과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의문에 답해보기로 한다.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청와대 내부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은 초기에는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위원장을 겸임하는 위기상황센터가 맡았고 인양 국면으로 접어든 후에는 국방비서관실로 옮겨갔다. 여기에 정무수석실과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이 해당업무와 관련한 논의에 관여해왔다는 것. 그러나 이 사안을 책임지고 관리할 별도의 TF나 조직은 따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대처능력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첫 번째 지점이다.
‘책임자 VIP’의 함정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2003년 만들어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를 대통령실장 직속 위기정보상황팀으로 축소했다. 센터장 역시 비서관급에서 2급 행정관으로 조정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청와대는 이를 현재의 위기상황센터 체제로 확대개편하고 외교안보수석이 위원장을 겸임토록 했다. 센터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위기상황팀장도 1급 비서관급으로 격상해 국가정보원 출신의 인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위기대응에서 청와대가 담당하는 역할의 기본개념은 복원되지 않았다. 현장 상황을 상황실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지침을 받는 시스템 자체는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응과정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난점을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 이전 정부에서는 청와대 NSC가 상대적으로 작은 쟁점까지 체크해 실무부처에 일일이 지침을 하달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부처에 상당부분 결정권이 이양돼 있다. 특히 안보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와 결정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실무부처에 개입하는 경우가 상당부분 줄어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천안함 사고 대응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이 “청와대 내에서 사안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인물은 VIP 본인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계가 깊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무수한 국정현안을 관리해야 하는 대통령이 진행과정마다 발생하는 모든 쟁점을 직접 챙기고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다 보니 사건 이후 발생한 상당수 결정사항은 모두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처리했고, 현장에서는 합참과 해군이 1차적으로 진행상황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군 당국의 결정사항에 대해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 그제서야 청와대와 대통령이 개입해 수정을 지시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조사단 구성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일련의 과정은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공개됐고 국민에게 정부 대응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한 전직 국방 분야 고위관계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