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천안함 사태 그 후, 이명박 정부 위기대응능력 비판

사장된 매뉴얼과 청와대-군 관계 부실이 ‘총체적 난맥’ 불렀다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04-28 1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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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터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취약한 영역, 바로 군에서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인수위 출신 인사의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사건 발생 자체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이후 대응과정의
    • 문제점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 민간인 수색 참여부터 함미 절단면 공개에 이르기까지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대응을 풀이할 키워드는, 대통령과 군을 매개할 청와대 참모조직이 어느 때보다 부실한 현 정부의 한계다. 특히 ‘신동아’가 입수한 2005년의 ‘대형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사장되어 이번 사건에서 활용되지 못한 일련의 과정은 위기대응 방식의 구조적 취약성을 명확히 폭로한다.
    천안함 사태 그 후, 이명박 정부 위기대응능력 비판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3월26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군관계자들은 내부원인을 두려워하고 청와대 참모들은 외부원인을 부담스러워한다. 외부원인 가운데서도 어뢰는 군의 경계태세 문제가 남고 기뢰는 누가 설치한 것이냐에 따라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렇게 보면 최종 결론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뢰’로 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술적으로도 출처를 확인하는 게 어려울뿐더러, 확인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해피’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수일 후, 한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오랜 논란이 이어지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시점의 말이었지만, 이후 상황은 상당기간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북한에 의한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발언과 섣부른 단정을 경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 부딪치는 듯한 정황이 그것이다.

    여기에 수습과정에서 야기된 쟁점과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대응방식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민간 어선과 잠수사의 수색 참여 여부,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과 교신기록의 공개, 생존가능시간 69시간을 둘러싼 혼선, 생존자들의 기자회견, 최근에는 조사단 구성이나 인양되는 함미의 이동, 절단부의 언론 공개 문제까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어지러운 정부의 행보는 엄청난 논란을 야기하며 상상 이상의 불신을 유발했다.

    최악의 위기를 맞이해 군과 청와대가 이견을 보이는 듯한 현상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이른바 ‘관료정치’가 언론플레이와 정보장사를 통해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과연 이 같은 난맥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됐고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이었나. 청와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사건 대응과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의문에 답해보기로 한다.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청와대 내부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은 초기에는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위원장을 겸임하는 위기상황센터가 맡았고 인양 국면으로 접어든 후에는 국방비서관실로 옮겨갔다. 여기에 정무수석실과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이 해당업무와 관련한 논의에 관여해왔다는 것. 그러나 이 사안을 책임지고 관리할 별도의 TF나 조직은 따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대처능력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첫 번째 지점이다.



    ‘책임자 VIP’의 함정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2003년 만들어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를 대통령실장 직속 위기정보상황팀으로 축소했다. 센터장 역시 비서관급에서 2급 행정관으로 조정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청와대는 이를 현재의 위기상황센터 체제로 확대개편하고 외교안보수석이 위원장을 겸임토록 했다. 센터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위기상황팀장도 1급 비서관급으로 격상해 국가정보원 출신의 인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위기대응에서 청와대가 담당하는 역할의 기본개념은 복원되지 않았다. 현장 상황을 상황실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지침을 받는 시스템 자체는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응과정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난점을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 이전 정부에서는 청와대 NSC가 상대적으로 작은 쟁점까지 체크해 실무부처에 일일이 지침을 하달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부처에 상당부분 결정권이 이양돼 있다. 특히 안보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와 결정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실무부처에 개입하는 경우가 상당부분 줄어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천안함 사고 대응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이 “청와대 내에서 사안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인물은 VIP 본인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계가 깊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무수한 국정현안을 관리해야 하는 대통령이 진행과정마다 발생하는 모든 쟁점을 직접 챙기고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다 보니 사건 이후 발생한 상당수 결정사항은 모두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처리했고, 현장에서는 합참과 해군이 1차적으로 진행상황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군 당국의 결정사항에 대해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 그제서야 청와대와 대통령이 개입해 수정을 지시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조사단 구성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일련의 과정은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공개됐고 국민에게 정부 대응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한 전직 국방 분야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군 당국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지만, 사실 조직 내부 논리로 보자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조직의 수장이든 사고가 발생하면 자신의 책임하에 1차적인 수습을 마치고 그 결과까지 상부에 보고하고 싶어한다. ‘이런 문제가 터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보다는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라고 보고하길 원하는 것이다. 군이 실제로 무언가를 은폐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군은 특정상황이 벌어지면 그에 대응하는 표준대응절차(Standard Operating Plan·SOP)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인데, 군의 SOP에 민간부문의 참여나 정무적 판단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게 훈련받은 조직이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누군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결정사항 하나하나를 챙겨야 괴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민통제의 전통이 강한 서방에서는 보통 국방장관이 그 역할을 하지만, 한국의 국방장관은 여전히 군의 수뇌라는 자의식이 더 강하다. 청와대가 나서야 했겠지만 이를 하나하나 챙길 만한 시스템도 사람도 없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지금과 같은 난맥상이 발생했다고 본다.”

    직제상 청와대 내부에서 천안함 사건을 담당하는 조직은 외교안보수석실이다. 대외전략, 외교, 국방, 통일비서관실과 위기대응센터가 그 하부조직이고, 각 비서관실에는 8명 내외의 행정관이 있다.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각 비서관실은 업무분야에 따라 구분돼 있고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국방비서관실이 주무 역할을 맡고 있다.

    국방비서관은 장관의 참모?

    천안함 사태 그 후, 이명박 정부 위기대응능력 비판

    4월5일 오후 천안함 함미 침몰지역인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에서 민간 잠수사들이 인양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업무분야별 조직구성은 비중이 매우 큰 사안이 발생해도 다른 비서관실이 개입하기 쉽지 않은 형태다. 남북관계의 파장이나 조사 결과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기방안은 각각 통일비서관실과 대외전략비서관실이 검토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후 북한의 금강산 부동산 동결 문제와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및 2012년 회의 유치가 겹치면서 해당 비서관실의 업무도 폭증했다. 사건 자체의 대응과정에서 발생한 무수한 쟁점을 ‘청와대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제어할 인원은 국방비서관실 행정관 8명뿐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기능별로 조직이 구분돼있어 융통성 있는 TF 구성이 가능한 백악관의 안보관련 참모조직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하다.

    더욱이 업무분야별 구성은 특정 비서관실과 특정 부처의 연관관계를 극대화하는 문제가 있다. 김병기 국방비서관만 해도 육사35기 출신의 현역 장성으로 직전까지 국방부에서 근무했다. 휘하 행정관 역시 상당수가 현역 군인이다. 국방비서관실을 대통령을 보좌해 국방 분야를 통할하는 참모조직이라기보다는 국방부의 청와대 연락부서 정도로 생각하는 군 주변의 분위기는 이와 관련이 깊다. 4월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 과정에서 언론에 포착된 이른바 ‘VIP 메모’와 관련해 김태영 장관은 4월7일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국방비서관도 제 참모라고 볼 수 있는데…지휘관에게 오해의 소지를 알려주는 것은 참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방비서관실이 과연 대통령을 대신해 군 당국을 제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정무수석실과 외교안보수석실 사이의 구분도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사고수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논란을 예측하고 합리적인 대응책을 도출하는 작업은 상당부분 정무수석실의 몫이지만, 국방부가 사태대응을 주도하면서 외교안보수석실 이외의 파트가 이에 개입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 전직 청와대 수석급 인사의 말이다.

    “남북 간의 교전 등 군사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던 초기에는 당연히 군이 대응의 최전선에 서는 게 옳다. 그러나 이후 구조와 인양, 원인규명 작업에서는 발상을 전환해 전(全) 정부적인 차원으로 판을 키웠어야 한다고 본다. 국방부 위기대응반이 관계부처에 협조를 요청하는 형식이 아니라, 청와대 안에 위기대응TF를 만들고 이 조직이 각 부처의 행정력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그 틀 안에서 필요한 부분에는 군의 특수한 역량을 동원하는 형식으로 투입해야 했다. 사안의 파괴력이 군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판단이 섰다면, 더 이상 부처 간 업무분장 같은 틀에 머물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다. 각각의 결정사항이 범정부 차원에서 기획되고 조율됐다면 ‘군이 책임문제를 의식해 뭔가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최소화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군에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판단이 다른 것 같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일이나 정무적 판단이 배제된 채 군 특유의 사고방식 때문에 여론의 반감을 사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국방부는 몰랐던 매뉴얼의 존재

    이러한 맥락에서 위기대응 매뉴얼의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사건 발생 이후 해군은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사태에 대처했다고 주장해왔지만, 4월14일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이 매뉴얼이 사건발생 당일 급조된 것이고 침몰상황까지 대비한 매뉴얼은 없었다고 폭로했다. 같은 날 SBS 보도에 따르면 김태영 장관 역시 답변과정에서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침몰 등 위기상황에 대한 매뉴얼은 존재했다. 다만 국방부 차원에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군 당국이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었을 뿐이다. ‘신동아’가 단독입수한 ‘주변해역 해상사고 대응매뉴얼’이 그것이다. 2005년 작성되어 2007년 갱신된 이 매뉴얼은, 총 33개 분야에 걸쳐 국가적 위기발생시 정부 각 부처와 기관이 즉각 수행해야 할 행동 및 조치를 규정한 285개 실무지침 가운데 하나다. 각 위기상황의 보고와 전파양식까지 포함된 5부 51쪽 규모의 매뉴얼은 군과 민간 소속을 특정해 구분하지 않고 선박의 침몰과 좌초, 조난 등 대형 해상사고가 벌어졌을 경우를 아울러 다루고 있다.

    당초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통합해 관리하는 것으로 기획됐던 위기대응 매뉴얼은 앞서 설명한 대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이 조직이 축소되면서 실무부처로 이관된다. 안보상의 위기에 대해서만 대통령실이 보유하고 재난이나 안전 분야는 총리실 이하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로 내려 보낸 것. 청와대 상황실 뒤편에 빼곡히 꽂혀 있던 매뉴얼의 상당수가 빠져나간 것이다.

    문제의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의 경우 청와대에서 총리실로, 다시 행정안전부를 거쳐 현재는 해양경찰청 상황실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형 해상사고 발생시 대응활동과 관련된 모든 정부부처·기관의 활동에 적용’된다고 적시돼 있는 매뉴얼이 모든 정부부처·기관을 통제하는 청와대가 아니라 일개 실무부처가 담당하는 문서가 된 것. 국방부나 해군이 매뉴얼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 아쉬운 대목은 해당 매뉴얼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건의 초기대응과 관련해 불거졌던 상당수 문제점을 피할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침몰한 함미 부분의 수색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과 관련해 제기된 탐색장비의 동원 문제나 민간 잠수사 참여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건 발생 초기 장비를 탑재한 해군 소해함이 진해에서부터 출동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수도권 지역의 민간업체나 소방방재청에도 관련 장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문제의 매뉴얼은 소방방재청 등의 관련 장비 긴급지원을 규정하고 있고, 침몰선박의 수색과 관련해 유관·민간단체의 심해잠수 지원도 명시하고 있다. 부록에 기재된 민간 구난조직 명단을 살펴보면 사고해상에서 가까운 인천지역에만 9개 업체의 이름과 주소, 등급이 분류돼 있다. 해상재난구조단 등 민간 구조대 역시 연락처까지 명시해 기재돼 있다.

    청와대 위기대응센터가 매뉴얼을 관리하며 대형사고의 초기 대응방침을 설정하는 이전의 시스템이 유지됐다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해당 매뉴얼이 활용됐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후의 처리과정을 국방부 위기대응반을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군 당국의 SOP가 가진 협소한 시야를 벗어나 ‘민간의 눈’으로 사안에 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사건 발생 당일 밤, 수화기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다급하지만 단호했다. 북한의 공격으로 추정된다는 일부 방송의 속보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관련 정보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예단이 몰고 올 수 있는 파장을 우려하는 기색이 분명하게 묻어났다. 그러나 이후 작업을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담당하면서 군 관계자들의 설명은 점차 북한 측의 공격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갔다. 당초의 단호한 태도와 달리 청와대는 원인과 관련한 성급한 예단을 정부 내부적으로 제어하는 데도 실패한 셈이다.

    정보 장사와 언론 플레이

    이 때문에 군 당국의 행보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시선은 차갑기 짝이 없다. 4월7일 대한노인회 회장단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 이 대통령이 한 “어느 누구도 조사 결과를 부인할 수 없도록 조사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인정 안 할지도 모른다”는 발언의 해석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두고 북한 연루설로 기울어지는 신호 아니냐고 해석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오히려 국방부를 포함한 군 당국의 책임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정보원의 움직임. 원세훈 국정원장은 4월6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사건을 전후해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었다”며 “북한 관련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원 원장이 사실상 대통령을 대리해 군 당국의 행보에 경계선을 그은 것”이라고 평했다. 군사정보에 있어 독보적인 영역을 갖고 있는 군을 제어하기 위해 청와대가 정보당국을 활용해왔다는 시각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이후 몇몇 정부당국 관계자가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 연루설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흘렸다는 정황도 포착된다. 1970년대 백령도 인근에 기설된 한국군 기뢰가 상당수 수거되지 못했다거나 4월 중순 들어 사실상 힘을 잃었던 전단파괴설 등이, 친이계 의원이나 북한 연루설에 힘을 싣고 있던 언론인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뿌려진 정황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일종의 ‘균형 맞추기’인 셈. 그 직후 일부 언론이 익명의 군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군 당국은 북한 정찰총국의 어뢰 공격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과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관련 뉴스에 목마른 언론과 정치권을 상대로 청와대와 국정원, 국방부와 군 당국 관계자들이 각각 입맛에 맞는 ‘정보 장사’를 통해 플레이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챌린저호 폭발사건 조사의 교훈

    안보당국 핵심부처 사이의 이견이 내부에서 조정, 통제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노출되는 현상은 조사단 구성 문제에서 정점을 찍었다.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구성한 조사단은 사실상 군 중심으로 이뤄졌고 단장 역시 현역 장성이 맡았지만, 청와대는 이를 사전에 조율하는 대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수정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했다. 해외 전문인력을 참여토록 하라는 지시 역시 같은 경로를 거쳤다. ‘대통령의 관점에서’ 사안을 미리 체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공개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위기대응 문제에 오랜 기간 천착해온 한 안보연구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1986년 1월 발사 과정에서 폭발한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 당국의 기밀주의와 여론의 반발, 대통령의 개입 등이 꼭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 논란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국민이 신뢰할 만한 제3자들을 조사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로 결정한 일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사결과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군 당국이 조사단 구성과 운영을 주도하는 지금의 흐름은 이와 너무 거리가 멀다.”

    사건 발생 초기 미 항공우주국(NASA)은 기밀사항이 소련에 유출될 수 있다며 발사 관련 인원들을 격리하는 등 강도 높은 보안조치를 취한 채 내부 인원을 중심으로 조사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곧 언론의 호된 질타와 내부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폭로에 부딪혔고 사회적 논란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갈등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백악관은 대통령 직속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직 국무장관을 위원장으로 임명한다. 위원회에는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등 명망 높은 인사들과 NASA와 관련이 없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 캘리포니아공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다시 앞서의 안보연구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위원회는 각 위원의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했고, 특히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파인만 교수는 이 과정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위원회가 사건발생 5개월 만에 보고서를 발표하자 논란이 급속도로 수그러들었다는 사실은 신뢰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천안함과 관련해 군 당국 주도의 조사단 활동이 과연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지 가늠해보면 결론은 명확하지 않은가.”

    대통령-군 관계의 특수성

    국방부가 대응을 주도하도록 한 청와대의 판단과 관련, 정보당국 핵심에서 일했던 한 전직 관계자는 “현 정부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청와대 참모라도 일단 군에 맡겨둬야 한다고 보고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동안 군이나 국방부를 제대로 제어해본 경험도 없고 전문성도 부족한 청와대 참모들이 섣불리 나설 경우 오히려 반발을 사기 십상이라는 것. 여러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참모들이 군을 상시적으로 강도 높게 압박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참모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는 장관들이 곧 대통령의 참모라는 조직운영 철학을 갖고 있다”고 기자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장관들이 대통령과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직접 지침을 실현토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 정부처럼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부처의 시어머니 노릇을 할 참모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에는 ‘우리는 이전 정권과 달리 관료사회의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이 보여주듯, 한국의 현실에서 대통령과 군의 관계는 이러한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특히 군 출신 국방장관이 수행할 수 있는 ‘대통령 참모로서의 역할’은 한계가 있기 마련. 이를 고려하지 못한 채 청와대 안보파트에 군을 통제할 능력과 인력을 축적해두지 못하다 보니 통제능력 한계와 관계 부실로 이어졌고, 결국은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이해 청와대와 국방부의 발언이 어긋나는 난맥상이 나타났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마디로 “평소에 잘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위기대응능력 부재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월초 청와대 기획파트는 이 문제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시스템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외교안보수석실과 별도로 국방안보수석실을 따로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나 NSC 시스템의 부활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문민장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군 수뇌부에 대한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다 보니 후임 인선에 관한 소문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청와대 주변에서 나오는 후임 장관 하마평은 모두 ‘강력한 통제력’과 ‘청와대와의 소통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무적 판단이 가능한, 혹은 대통령의 뜻을 ‘무자비하게’ 관철할 수 있는 인물로 신임 장관이 임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도 문민장관이 올까 염려하고 있는 국방부 분위기는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책이 마땅치 않다’

    청와대와 군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산은,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논란은 걷잡을 수없이 번졌고 그로 인한 여론의 불신도 비등점에 이르렀기 때문. 청와대 기획파트에서 준비하던 보고서 역시 4월 중순 현재까지 제출되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마디로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 별다른 대안 없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보고서를 싫어하는 대통령의 눈높이를 충족할 방안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토로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벌써 반환점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여의도 정가에는 벌써부터 레임덕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부시 행정부가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허리케인 피해의 초동 대응에 실패한 뒤 급속도로 힘이 빠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역대 정부도 레임덕은 옷 로비 같은 전혀 예상 못한 변수 때문에 침몰하기 시작했다”며 “천안함 사건이 유사한 후폭풍을 몰고 오지는 않을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과연 그 후폭풍을 막아줄 방파제가 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을 일신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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