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골프 스타일은 경영 스타일을 닮는다

  • 윤은기│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경영학 박사 yoonek18@chol.com│

    입력2010-04-30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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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도 눈과 비가 많았던 긴 겨울을 보내고 친구들과 다시 필드에서 만나보니 모두 그 사이 기량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C회장은 드라이브 비거리가 10~20야드가 는 것 같았다. 티샷한 공이 멀리 나가 세컨드 샷이 편해져서 그런지 첫 홀부터 연속 파를 기록했다. 전반 9홀을 돌고 나서 C회장에게 비결을 물어보았다.

    “겨울 동안 어디로 전지훈련을 다녀온 거야?”

    “아니 혼자만 특별과외를 받은 거 아냐?”

    “장타의 비결이 뭐야?”

    그런데 C회장의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겨우내 헬스장에 가서 근육운동 했어요. 전담코치를 정해놓고 맞춤형으로 3~4개월 운동을 했더니 몸매가 달라지더라고.”

    C회장은 이 말을 하면서 동반자들에게 자기 가슴과 다리를 만져보라고 했다. 만져봤더니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요즘 골프만 좋아진 게 아니라 배도 들어가고 상체 모습이 달라지니까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더라고. 역시 우리 나이에는 운동이 보약이야.”

    C회장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는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후반 첫 홀에서 C회장이 힘차게 친 공이 훅이 걸리더니 OB가 나고 말았다. 비거리가 늘어난 데다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OB티에 나가서 치라고 했더니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냥 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힘차게 친 공이 첫 번째 공과 복사판이 되면서 OB가 나고 말았다. 게다가 세컨드 샷이 그린 벙커에 빠졌고 벙커에서 첫 번째 친 공이 턱을 맞고 내려왔고 두 번째 친 공은 홈런이 나면서 다시 OB가 되고 말았다.

    “당신이 양용은 선수처럼 느껴져”

    어프로치도 너무 길어 두 번에 걸쳐 그린에 올렸고 3퍼트로 마감했다. C회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고 그때까지 딴 돈 몇 만 원도 모두 물어내었다.

    “아니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골프장에서는 칭찬이 쥐약이라고 그러더니 딱 맞는구먼. 조금 전에 당신들이 띄워줄 때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C회장에게 K변호사가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역시 당신은 화끈하고 멋있는 사나이야. 가끔 대형사고를 치는 사람이 대형선수가 되는 거라고. 요전에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양용은 선수가 대형사고 치는 걸 보고 나는 양 선수를 더 좋아하게 됐다니까!”

    양용은 선수는 3월5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스 PGA내셔널 리조트 챔피언 코스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파4인 11번 홀에서 무려 5오버를 쳐서 이름도 생소한 쿼드러플보기를 한 것이다.

    티샷한 공은 248야드로 필드에 잘 떨어졌다. 그러나 189야드를 남겨두고 워터 해저드를 가로질러 그린에 공을 올리려다 2차례나 물에 빠뜨렸다. 여섯 번째 샷한 공이 그린에 올라왔고 3퍼팅을 해서 이 홀에서만 5타를 잃고 말았다.

    “C회장, 스코어는 양파까지만 계산하자고. 어쩐지 당신이 양용은 선수같이 느껴져.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가끔 사고 치던 녀석들이 지금 다 크게 됐잖아.”

    우리가 열심히 위로의 말을 건네자 C회장이 한마디한다.

    “그래 너희들 말이 다 맞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여학생 따라다니다 정학 맞은 녀석들이 회장이 되고 변호사가 될 줄 어떻게 알았겠니!”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P사장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야….”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범생이’였고 요즘 필드에서 별명이 ‘또박이’인 P사장은 오늘도 또박또박 공을 쳐서 전반 42타, 후반 42타로 평소 스코어인 84타를 기록했던 것이다.

    골프든 사업이든 너무 몸조심을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동안 내가 만나본 성공한 CEO들의 공통점은 유난히 간이 크다는 것이다. 과감히 도전하고 이런 도전을 하다보니까 당연히 실패도 하고 쓴맛도 본다. 그러나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열정이 있기 때문에 더 큰 성과를 내는 것이다.

    신체적 유연성과 비거리

    나는 가끔 시공테크 박기석 회장과 골프를 한다. 이분 또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남다른 분이다. 박 회장을 처음 만나면 시공테크의 업종이 생소해서 다소 거리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 이름이 너무 독특해서 미 항공우주국(NASA) 같은 일을 하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시계 부품 만드는 회사 아닙니까?”

    그동안 전시 프로젝트 전문업체로 급성장해온 시공테크는 소비재를 다루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시공테크는 그동안 서울올림픽 레이저 쇼를 시작으로 한류우드 같은 대규모 테마파크를 기획해 박물관이나 전시문화공간 프로젝트, 대행 컨벤션 기획, 이미지 영상 등 독특한 사업영역을 개척했다.

    이 회사를 설립해서 22년째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은 그동안 코스닥 상장사 협의회 회장,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대통령 직속 비상경제자문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재계에서도 잘 알려진 경제리더다.

    박 회장과는 레이크사이드CC에서 가끔씩 골프를 함께 한다. 프로필의 취미란에 골프라고 써놓을 정도로 골프를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 골프실력도 만만치 않다. 보통은 70대 후반의 스코어를 유지하지만 가끔 이븐파에서 한두 개 넘는 실력을 보여주어 동반자들을 긴장시킨다.

    원래 몸매도 다부진데다가 국선도, 요가 등으로 꾸준히 몸 관리를 하고 있어서 신체적 유연성도 좋다.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 캐디를 따라 체조를 할 때 보면 손바닥이 발까지 닿는 유연성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가볍게 물구나무서기 시범을 한다. 이런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당연히 비거리가 좋을 수밖에 없다. 드라이브 티샷은 240야드 정도 나가고 아이언 샷 거리도 만만치 않다. 어프로치 샷도 정교하고 퍼팅도 수준급이다.

    도전자 강할수록 전투의지 강해져

    박 회장은 강한 의지력과 창의력을 지닌 분이다. 남이 무슨 사업인지 이해도 못하던 시절 전시전문사업을 시작했고 우리나라 IT기술과 접목해 독특한 영상전시관사업을 개척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각종 문화, 교육, 문화유산 콘텐츠를 데이터베이스한 전자교육프로그램을 사업화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사업설명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했고 투자자를 유치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난관을 뚫고 오늘날의 명품기업으로 키워왔으니 그 집념과 열정은 보통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생생한 교육데이터베이스를 공급하는 ‘아이스크림’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98%가 유료로 가입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예를 들어 교사가 개구리의 부화라는 걸 설명할 때 이 자료를 검색하면 생생한 실제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

    박 회장이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날은 동반자들이 내기로 자극을 하는 날이다. 골프를 할 때 도전자가 심기를 긁으면 대개는 무너지게 마련인데 박 회장은 도전자가 강할수록 더욱 전투의지가 강해지는 독특한 성품이다.

    “요즘 내가 공이 잘 맞는데 한 판 붙어봅시다.”

    “지난번에는 아슬아슬하게 졌는데 오늘은 나도 각오하고 나왔으니 끝장을 냅시다.”

    동반자들이 이런 소리를 하면 곧바로 “좋습니다!” 하면서 전투모드로 변신한다. 상대방의 도전을 피하는 일도 없다. 간혹 동반자가 심기를 흔들기 위해 내기에서 ‘더블’을 불러도 눈도 깜짝 않는다.

    도전자가 강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골프스타일은 확실히 그의 경영스타일과 닮은 꼴이다. 재미있는 일은 딴 돈을 대부분 돌려준다는 것이다. 박 회장에게 맹렬하게 도전했다가 내기에서 지고 잃은 돈까지 돌려받은 사람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요!”

    박 회장이 돈을 돌려주는 이유가 있다. 그의 좌우명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다. 도전해왔으니 받아준 것뿐이고 게임이 시작됐으니 최선을 다해 이긴 것뿐이고 이겼으니 수익의 일부를 돌려준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박 회장에게 사업성공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우리 직원들이 해외 출장 갔을 때 서점에 들러서 보고 싶은 책을 사 오면 회사에서 돈을 내줍니다. 이렇게 모은 책 중에는 우리 사업 분야와 관련된 귀한 것이 정말 많습니다.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학습하지 않으면 창의적인 경영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니 박 회장은 골프에 대해서도 늘 배우는 자세를 지닌 분이다. ‘도전-열정-학습-창의’ 이런 선순환 고리가 박 회장의 경영스타일이자 골프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주말 레이크사이드 동코스에서 박 회장과 함께 라운드를 했다. 경농의 이병만 회장, 가엘시큐리티의 양재열 회장과 함께였다. 아웃코스는 앞바람 때문에 모두 고전했고 스코어는 내가 41타, 나머지 동반자가 모두 40타였다.

    모두 분발하기 위해 인코스에서는 한 타에 만원씩 내기를 하기로 했다. 전반 스코어가 같으니까 핸디조정은 없었다. 나는 버디 3개를 몰아치며 후반을 2언더로 끝냈다. 박 회장은 아슬아슬하게 퍼팅을 계속 놓치면서 43타를 치고 말았다. 이렇게 끝내고도 박 회장은 특유의 시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제 너무 잘했더니 오늘 내 핸디 균형을 잡으려는구먼.”

    박 회장은 캐디피까지 얼른 계산했다.

    ‘사업도 골프도 화끈하게 한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박 회장의 매력적인 사업관이고 골프관이다.

    의사결정의 연속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나 골프에 입문하고 있고 이제 그 열풍은 30대 젊은층과 여성에게 확대되고 있다.

    LPGA는 이미 한국 선수들이 주력이 되었고 PGA에서도 최경주, 양용은 선수 등이 선전하고 있다. 24시간 골프 전문 TV채널이 두 개나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골프 열풍을 반영하고 있다.

    식사나 술자리 약속은 사양하면서도 골프장에서 만나자면 곧바로 달려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국 사람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를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재미있는 답변들이 나왔다.

    첫째는 아파트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정원이 없는 좁은 공간에서 살다보니 넓은 잔디밭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스피드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사람들은 피드백이 빠른 것을 좋아하는데 골프는 샷하는 순간 잘했는지 못 했는지 바로 알 수 있고 매 홀 점수가 바로바로 나오는 운동이다.

    셋째는 경쟁문화와 관련이 있다. 늘 경쟁 속에서 살아오다보니 골프장에서 점수를 가지고 경쟁을 하고 내기를 하면서 경쟁을 즐긴다는 주장이다.

    넷째는 고스톱의 대체문화라는 주장이다. 좁은 공간에서 고스톱을 하는 대신 넓은 잔디밭에서 당당하게 내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CEO들이 골프를 즐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골프는 18홀 매니지먼트 게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경영도 의사결정의 연속이고 골프도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많은 아마추어 골퍼가 골프는 ‘기술(skill)’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스윙연습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골프연습장에 가보면 많은 사람이 공을 멀리 쳐내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방향성이 좋아지고 비거리가 확보된 다음에는 골프는 경기(game)이고 운영(management)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골프장에 가기 전이나 도착한 이후에 필요한 정보부터 잘 챙겨야 한다. 골프장마다 코스의 개성이 다르게 마련이다. 페어웨이가 넓고 평평한 골프장도 있고 좁고 울퉁불퉁한 골프장도 있다. 연못이 많은 골프장도 있고 개다리(dogleg)홀이 많아서 OB가 잘 나는 골프장도 있다. 좀 짧은 골프장도 있고 유난히 긴 골프장도 있다. 이처럼 코스의 특성이 다르면 매니지먼트가 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골프는 모의 경영게임

    우선 티샷을 할 때 티잉 그라운드 한가운데에 설 것인지 아니면 우측이나 좌측에 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슬라이스 홀이라면 당연히 우측에 서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페어웨이 벙커나 워터해저드가 들어와 있으면 드라이버 대신 우드나 아이언으로 바꿔 잡아야 한다. 나무가 숲속에 들어갔을 때는 모험을 할 것인지 공을 옆으로 빼낼 것인지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퍼팅도 승부가 걸려 있을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컵에 붙이기만 해도 승자가 되는 경우가 있고 반드시 집어넣어야 승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부드럽게 퍼팅해서 붙이기만 해도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다소 강하게 퍼팅을 해주어야 한다.

    앞에 커다란 나무가 가로막고 있을 때는 공을 띄워서 나무를 넘길 것인지 밑으로 낮게 쳐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싱글 핸디캐퍼들은 정보-창의적 해석-효과적 의사결정-성과의 과정을 잘 살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그린 근처에서 우드로 어프로치를 하는 사람도 있고 퍼터로 벙커샷을 하는 사람도 있다.

    ‘경영은 의사결정이다.’ 오래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교수의 명언이다. 경영활동은 각종 의사결정의 연속이며 경영성과는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골프 인구가 크게 늘고 있고 퍼블릭 골프장도 속속 개장하고 있다. 골프를 못 친다고 기업경영이나 인생경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골프를 잘 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업경영이나 인생경영을 잘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골프도 경영, 기업도 경영, 인생도 경영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나 놀이가 아니라 모의 경영게임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다.

    ‘rule is rule’

    골프 스타일은 경영 스타일을 닮는다

    골프는 의사결정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기업 경영과 비슷하다.

    의사결정과 실행에 따라 짜릿한 절정체험도 할 수 있고 뜨거운 절망체험도 할 수 있는 것이 골프다. 특히 티샷부터 순조롭게 공이 잘 맞아서 무난히 파 세이브를 할 때보다도 벙커나 해저드에 빠져서 위기에 몰렸다가 과감한 도전으로 위기를 벗어났을 때의 짜릿한 쾌감은 골프의 묘미를 더해 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방심하지 않고 샷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골프의 매력 때문에 우리나라 CEO들은 골프를 사랑하는 것이다.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과 함께 골프를 하다가 이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 첨단기술은 모방할 수 있어도 기업문화는 모방하기 어렵다.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강한 기업문화가 있어야 한다.

    ▲ CEO는 내일을 내다보는 혜안과 한 발 앞선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 CEO의 핵심과제는 유능한 인재의 확보와 관리다.

    손경식 회장의 어록이다. 손 회장은 여러 경제인 행사에서 자주 뵙고 있지만 좀 자세히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분이 우리 대학교와 기후변화센터가 함께 주관한 ‘기후변화최고지도자’ 과정에 참가했을 때부터다.

    워낙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분인 만큼 과연 제대로 수업에 참가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우려와는 반대로 꼬박꼬박 출석했을 뿐만 아니라 동기생 회장까지 맡아서 봉사를 했기 때문에 주최 측은 물론이고 동기생들도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짧은 스피치조차 임기응변으로 때우는 법이 없고 반드시 메모를 해서 핵심적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것을 보고 나도 크게 감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제단체의 회장이고 CJ그룹의 회장이며 연세도 있는 만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무게가 느껴지는 분인데 막상 수업에 참석해서는 격의 없이 대화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장점을 지닌 분이다. 특히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정말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손 회장과 제주도 사이프러스CC에서 골프를 함께 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여서 옷을 두껍게 껴입었기 때문에 모두 샷 감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골프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경영 스타일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손 회장과 함께 운동을 하다보니 그 말이 꼭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골프 스타일이 바로 모범생 그 자체였다. 스윙 폼이 간결하면서도 단정하고 드라이브샷이 대부분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젊은 사람보다 거리만 덜 나갔지 흔들림 없이 또박또박 전진하면서 3온 1퍼트로 파 세이브를 할 때마다 동반자들은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독일군 보병이 전진하는 것 같은 단정함이 느껴졌다. 또 하나의 특징은 준법정신이었다. 어차피 겨울골프이고 우호친선에 무게를 둔 것이니까 거친 지역으로 공이 떨어졌을 때 조금 옮겨놓고 치시라고 권유를 해도 ‘rule is rule’을 강조하면서 정도(正道)를 택할 뿐이었다.

    “나 지금 스윙 괜찮아요?”

    평소 노사문제와 관련해 노조도 준법, 사용자도 준법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 것같았다. 게다가 캐디에게는 몇 타를 쳤는지 꼬박꼬박 알리고 더블보기라고 쓴 것을 트리플보기라고 바로잡기까지 했다. 자칫 엄숙하게 진행될 듯한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조크를 하면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손 회장과는 1년 전에도 제주도에서 겨울골프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눈보라가 휘날리는데 귀 덮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18홀을 강행군해서 동반자들을 감동시켰다. 혹시라도 춥다고 운동을 중단하면 분위기가 깨질까봐 젊은 동반자들을 배려하면서 감투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손 회장의 경우 지도자의 덕목인 솔선수범이 경영에서도 필드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손 회장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동반자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청하는 것이다.

    “나 지금 스윙 괜찮아요?”

    “스윙이 조금 빨랐지요?”

    스윙 폼으로 볼 때 전성기 때는 완벽한 싱글 핸디캐퍼였음이 분명한데도 동반자에게 레슨을 청하는 것을 보고 이 또한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평소의 경영철학과 맥이 닿아 있는 듯했다.

    “회장님, 친구 분들과 내기하시면 돈 다 따시겠어요.”

    우리가 이런 말을 건네자 이런 조크로 응답을 한다.

    “확률이 높으니까 한번 투자해보세요.”

    18홀을 깔끔하게 돌고 난 후 저녁모임에서 다시 단정한 복장으로 연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골프와 경영, 골프와 삶은 정말 닮은꼴이구나!’

    골프를 하지 않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골프장에 달려가고 비가 와도 공을 치고 눈이 와도 공을 치는데 옆에서 보면 꼭 중노동을 사서 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골프에 빠지는 이유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좋아서 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가 시켜서 산속을 수십㎞씩 헤매고 다녀야 한다면 골병이 들고 말 것이다. 그리고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교활동 한다고 비싼 술 마시며 술병 드는 것보다는 싸게 먹힌다. 술 마시다 병원 다니거나 비싼 보약 찾는 것보다는 골프장에 미리 돈 갖다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그러나 골프 하면서 얻는 진정한 성과는 인간관계 강화에 있지 않을까!

    인간관계 지능 향상에 적합한 운동

    수년 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대기업체 CEO 527명을 대상으로 최고경영자가 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능 2개를 물어봤더니 29.2%가 인간관계 지능을 꼽았고 24%가 논리적 지능을 꼽았다. 그리고 더욱 나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꼭 개발해야 할 지능 두 가지에 대해서도 인간관계 지능(26.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수년 전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어떤 유형의 직장인이 더 빨리 승진하고 연봉이 더 많이 오르는지를 주제로 한 발표가 있었다. 심리학자들의 결론은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고 직장 내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인기란 무엇일까? 사교성, 팀워크, 친화력, 이미지, 신뢰성 등이 바로 인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량을 소프트파워라고 하는데 이것은 학력이나 자격증하고는 별 상관성이 없다. 따라서 고학력자나 일류대학 출신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파워가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소프트파워는 인간의 마음과 직결되어 있다. 이제는 마음의 힘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21세기는 ‘마음의 경제’ 시대다. 인류는 단순노동을 중심으로 한 ‘손발경제’를 거쳐 학식과 지식을 활용하는 ‘두뇌경제’로, 그리고 이제는 마음의 경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경제시대의 특징은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창의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과 유형자원보다는 무형자원이, 그리고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가 중시된다는 점이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마라. 그들은 상처를 받으면 직장을 떠나게 된다.” 요즘 경영컨설턴트들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고 칭찬과 격려를 하라는 것이다. 입사한 지 오래되었다고 우대하고 나이가 많다고 봉급 더 주면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의욕이 떨어진다. 그리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업무 능률도 함께 떨어진다.

    여기에는 칭찬과 격려, 권한부여, 인격존중, 신속한 피드백, 정당한 보상, 비전 제시 등이 있다. 이런 조치를 하게 되면 인간은 힘이 솟아나고 생생해진다.

    골프 스타일은 경영 스타일을 닮는다
    윤은기

    약력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경영학 박사,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회장

    저서: ‘時테크’ ‘스마트 경영’ ‘윤은기의 골프마인드, 경영마인드’ 외 다수


    권투, 태권도, 유도, 사격 등은 혼자서 하는 스포츠이고,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은 단체로 하는 스포츠다. 그러나 골프는 상대방과 몇 시간씩 담소하고 칭찬, 격려, 위로를 하면서 진행하는 교류형 스포츠다. 따라서 인간관계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골프를 잘할 수 있고 골프를 하다보면 저절로 인간관계 지능이 향상되게 마련이다.

    나는 오랜 구력을 지닌 골퍼 중에 성질 고약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난 성질을 가다듬고 인간관계 지능을 향상시키고 싶은 사람은 필드가 최고의 연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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