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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드라마 ‘추노’의 정치학

권력은 정의롭지 못하고, 정의는 권력을 잡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분투

  • 위근우│ 기자 eight@10asia.co.kr│

드라마 ‘추노’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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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의 정치, 저자의 정치

드라마 ‘추노’의 정치학

몰락한 양반 대길(가운데)은 도망 노비를 잡아 기존 정치 시스템의 위엄을 세우려 한다.

저자(市場)라는, 기존의 사극에서 양념처럼 등장하기만 했던 공간이 부각되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어도 ‘추노’ 안에서 저자는 주막과 포졸이 있는 공간적 배경이 아닌, 권력을 향한 수많은 힘의 이동이 이뤄지는 정치적인 공간이다. 독살당한 소현세자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하는 저자를 뛰어다니고, 권력의 정점에 선 인조와 좌의정 이경식은 거리의 해결사 대길을 고용하는 동시에 권력의 하수인 철웅을 파견한다. 세상을 뒤엎을 꿈을 가진 업복은 총을 들고 밤마다 저자의 양반을 사냥한다. 간혹 이경식의 무리와 그 반대파가 인조 앞에서 서로의 뜻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손쉽게 헤게모니를 쥐는 건 늘 이경식, 더 정확하게는 인조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에서 실제로 정치적 욕망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공간은 저잣거리다.

‘추노’에 앞서 등장한 또 다른 사극 ‘선덕여왕’이 탁월한 건, 궁에서 벌어지는 미실과 덕만(선덕여왕), 진평왕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이 그저 영웅끼리의 다툼이 아니라 궁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라는 것을, 그래서 정치란 궁 바깥과 함께 호흡해야 하고 영웅다움이 아닌 그들을 위한 좋은 정책 경쟁으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점이었다. 그런데 ‘추노’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궁 바깥 역시 정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시대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난세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능동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궁 안의 독재자와 그 추종세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만들어진 난세, 그렇다면 이 너머 새로운 시대를 꿈꾸지만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이들이 몸을 던져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곳은 저자일 수밖에 없다.

탁월한 액션 신을 보여준 액션 사극으로서의 ‘추노’와 정치 사극으로서의 ‘추노’는 바로 이 저자에서 조우한다. 드라마 초반, 대길과 태하, 철웅이 합을 겨루는 장면의 영상은 탐미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한데 이들의 싸움이 정말 치열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무술의 고수여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합이 실상 서로의 정치적 신념을 건 대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안을 몰살시키고 도망간 노비 언년이와 큰놈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대길은 도망 노비 따위는 어서 잡아 시스템의 위엄을 세워야 하고, 태하는 이 대결에서 살아남아 석견을 왕위에 올려야 하며, 태하의 대의나 장인인 이경식의 술수 모두 권력에 대한 욕심일 뿐이라고 믿는 철웅은 태하를 쓰러뜨리고 이경식까지 무너뜨리겠다는 마음으로 검을 휘두른다. 이 때문에 대길은 영춘권에 기반을 둔 신속한 손놀림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철웅의 검은 합과 합의 엇박 사이에 상대의 급소를 노리며, 최강의 무장인 태하는 자신의 압도적 기량으로 석견을 위해 활로를 연다. 말하자면 그들이 펼치는 활극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몸으로 부딪치는 방법밖에 남지 않은 시대를 사는 서로 다른 인물들이 펼치는 몸의 정치에 가깝다. 비록 이 무리에 끼진 않았지만 총으로 양반을 사냥하는 업복이의 방식 역시 몸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식이다.

변화를 위한 주저함



하지만 태하가 석견을 구출해 조 선비를 비롯한 은둔 사림에 합류한 뒤 그들과 갈등하고, 대길은 자신이 평생을 걸어 쫓던 언년이가 태하와 혼인한 것에 절망하며, 업복이는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 때문에 나쁜 놈과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면서 ‘추노’의 치열했던 흐름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다. 그동안 외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던 정치적 갈등을 주인공들이 자신의 내면으로 갈무리해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이 ‘주저함’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극 초반 ‘추노’가,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질주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목적하는 바와 수단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길은 노비를 잡기 위해, 태하는 석견을 구하기 위해 칼을 들었고, 업복은 못된 양반을 잡아 노비들이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을 들었다. 하지만 정작 언년이를 보게 된 대길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칼을 든다면 결국 그것으로서 취하고 싶었던 언년이와의 행복한 미래는 무너지고 만다. 석견을 왕위에 올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갈 거라 여겼던 태하는 당장 반정을 꾀하는 것이 죽은 소현세자의 뜻을 세우려는 자신의 신념과 맞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업복이가 자신의 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른 체하고 ‘그분’이 지정해주는 양반을 잡을 때마다 자금책 노비는 자신의 배를 불리고, 업복이네 어린 여종은 부모와 생이별하는 부조리가 벌어진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믿음도 꿈도 없는 철웅만이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며 학살극을 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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