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윤범의 클래식으로 세상읽기 ⑨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2/3
조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alestrina·1525~1594)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팔레스트리나란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지명을 성(姓)처럼 사용하곤 했다. 순천에서 시집 온 아낙네를 ‘순천댁’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는 소년 합창단원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교황청 합창단에 들어갔다. 그러나 모든 단원이 독신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쫓겨났다.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돈 많은 과부가 나타나자 재혼했다. 이후 100곡이 넘는 미사곡을 남겼다.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미사곡이 여러 개의 선율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미사곡인 모테트를 검열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도 팔레스트리나는 ‘교황 마르첼로의 미사’와 같은 곡을 만들어 폴리포니가 미사곡으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보여줬다.

조스캥 데 프레, 팔레스트리나와 함께 3대 르네상스 작곡가로 불리는 올란도 디 라소(Orlando de Lassus·1532~1594)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어 어릴 때 합창단에 세 번씩이나 유괴를 당했다. 합창단에선 목소리가 아름다운 아이를 거세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지만, 다행히 라소는 무사했다고 한다. 그는 무려 2000곡 이상의 음악을 만들며 대작곡가로 성장했다. 그를 원하는 곳이 많았지만 여행하기를 즐기고,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몇 개월씩 떨어져 지내는 직업은 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은 죽기 4일 전에 남긴 ‘성 베드로의 눈물’이다.

전위적인 작곡가가 살인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여왕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0~1623)는 ‘아베 베룸 코르푸스’라는 곡을 남겼다. ‘성체 안의 예수’라는 뜻의 이 종교음악은 훗날 모차르트와 엘가에게도 영향을 주어 동명의 작품을 남기게 했다. 같은 시대의 존 다울런드(John Dowland·1563~1626)는 ‘Air’라는 음악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처럼 오늘날 ‘아리아’로 알고 있는 음악이 바로 이것이다. 다울런드는 왕실연주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는 이중적인 성격의 작곡가로 알려졌는데, 그가 얽힌 사건들 때문에 그렇다. 그는 개신교가 국교가 될 때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여행 도중 가톨릭교도들이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을 모의하는 것을 목격하고 돌아와 그들을 고발했다. 이후 작곡가로 계속 명성을 쌓는다.

더 독특한 인생을 산 사람도 있다. 스페인의 작곡가 카를로 제수알도(Carlo Gesualdo·1566~1613)는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을 신비스럽게 보이기 위해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 스스로 참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진짜 이름을 밝혀버린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던 사촌누이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얼굴 값 한다’는 말처럼 아내를 노리는 많은 남자 때문에 제수알도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결혼하고 몇 년 뒤 아내가 외간남자를 집에 불러들였다. 제수알도는 사냥을 간다며 집을 나선 뒤 몰래 다시 들어와 불륜현장을 적발했다. 그 다음이 문제다. 그는 그만 두 사람을 살해한다.



제수알도의 말년이 어땠을까? 처참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 그는 젊었고, 그 사건이 있은 뒤로 더 많은 곡을 남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내가 먼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제수알도의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법이 그랬다고 하는데, 요즈음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무튼 사건 이후 잠깐 은둔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열심히 작곡했고, 교회에서는 그런 그를 위해 성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살인자 제수알도가 아닌 작곡가 제수알도로 배운다. 대중을 위한 모테트라고 할 만한‘마드리갈’을 여러 권 남겼는데, 모두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의 반음계적인 기법이 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당시에는 보기 힘든 전위적인 기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들으면 다 옛날음악처럼 들리지만, 전위적이라 하면 뒤지지 않는 스트라빈스키 같은 현대음악가는 제수알도의 곡을 찾아내 자신의 작품에 소재로 삼기도 했다.

지휘봉에 찔려 죽다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1567~1643)는 19세기 음악가 주세페 베르디와 다른 사람이다. 오페라 ‘오르페우스의 전설’로 유명한데, 옛날 하프인 ‘에올리아 하프’를 잘 연주하는 오르페오가 지옥에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작품에서는 오르페오가 노래할 때 하프와 닮은 류트라는 기타가 사용되지만, 몬테베르디는 파격적으로 현악기 반주를 사용했다.

독일에서는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tz·1585~1672)가 오라토리오 같은 합창곡과 오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독일음악의 전성기가 열린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베토벤의 그것과 흡사한 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궁정에서 일했던 그는 말년에 작곡을 하지 않고 은퇴하려 했지만,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후원자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오랫동안 고생했다. 후원자였던 게오르그 선제후는 여러 음악가를 이런 식으로 괴롭히기로 유명했는데, 나중에 헨델도 이 사람 때문에 음악으로 여러 봉사를 했다.

2/3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목록 닫기

황당하고 재미있는 고(古)음악 이야기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