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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화해를 읊는 ‘고통의 시인’ 신달자

“내 운명을 미워할 시간조차 없었다”

  • 안기석│출판국 기자 daum@donga.com│

화해를 읊는 ‘고통의 시인’ 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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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와 예수의 탄생일에 태어난 사연

큰딸조차 어머니를 포기하고 싶도록 만든 그 가혹한 운명을 신씨는 “한번도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신씨의 생일이다. 그는 1943년 경남 거창군에서 6녀1남 중 다섯째딸로 태어났는데 실제로 태어난 날은 음력으로 사월초파일이고 호적에 출생신고된 날은 크리스마스다. 고행과 고난을 겪었던 두 성인의 탄생일과 같으니 ‘고통을 잘 견뎌내는 달인’이 된 것일까.

“강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저 낳았을 때 굉장히 실망하셨어요. 아들을 얻기 위해 계속 아이를 낳았는데 딸만 생기니 오죽했겠어요? 제 바로 밑이 남동생이었어요. 사월초파일에 저를 낳았지만 출생신고도 하지 않다가 군청에서 연말에 독촉하니까 12월25일에 출생한 것으로 신고한 겁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부유하게 자랐기 때문에 자존심은 셌지만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편이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어려운 일을 당하다 보니까 어머니로서 견딘 거지요.”

신씨의 부모에 대한 회상은 각별하다. 어머니는 신씨가 공부하러 떠날 때 “공부 많이 하고 돈 많이 벌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라”고 당부했는데 생전에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 한이 맺혔다는 것. ‘백치애인’으로 인세가 많이 들어오자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어머니 무덤이었는데 그곳에 수표를 묻고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화려한 사업가였지만 내면으로는 몹시 외로움을 타는 남자로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늘 근사한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중학생 때 아버지 일기장을 몰래 봤는데 ‘외롭다, 울고 싶다’는 표현이 많아 당혹스러운 적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글 쓰는 힘을 길러준 분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고 2학년 때 거창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갔는데 당시 아버지는 정미소와 제재소를 경영하면서 돈을 많이 버셨어요. 아버지는 저보고 편지를 잘 써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면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전상서’라고 쓰고 나면 그 다음부터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성여고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서점에서 명언집 3권을 사서 파스칼과 톨스토이 등의 명언들을 짜깁기를 해서 보내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똑똑한 줄 몰랐다’고 놀라시곤 했어요. 덕분에 용돈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경상남도 백일장 대회에서 시 부문 일등상을 받기도 했지요.”

신씨는 1961년 숙명여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활발한 문예활동을 하고 김남조, 서정주, 박목월 시인의 특강을 들으며 시인의 꿈을 키웠다. 어머니의 당부대로 공부 많이 하려고 석사과정에 입학했는데 조교 생활을 하면서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이던 15년 연상의 심현성 교수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 신혼부터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인 9년 동안은 행복했습니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신혼여행 떠나는 날부터 남자가 빨간 가방을 들고 갈 수는 없다며 저보고 들게 했어요. 성격 차이도 있었지만 시어머니도 한집에 모시고 있었으니 남편과 단둘이 식사한 기억도 없어요.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팍팍한 남자였어요. 소통을 포기했죠. 가난한 집안 출신인 남편은 부잣집 출신인 저를 훈련시키려고 그랬는지 모르죠.”

예를 들면 밖에서 자장면을 먹을 때에는 매번 “이 자장면 값이면 돼지고기를 사서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을 터인데…”라는 식으로 음식맛을 버려놓았다고 한다.

詩 쓰는 것이 고통의 탈출구

▼ 1969년에 ‘현대문학’에 ‘발’ ‘처음 목소리’ 등의 시로 등단했는데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됐습니까.

“그 당시 결혼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이유도 없이 서랍을 열고 뒤지곤 했어요. 어느 날 너무 견디기 힘들어 둘째아이를 재워놓고 집 안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종로로 무작정 나갔어요. 그때 우연히 박목월 선생님을 거리에서 만났어요. 발랄하고 멋 부리던 대학생 시절과 너무 달라진 부스스한 제 모습에 선생님은 직감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구나라고 느낀 거죠. 다방에서 커피를 한잔 사주시면서 ‘요즘도 글을 쓰나’ 하시는데 그 말이 제 가슴을 꽉 치는 거예요. 내가 찾아 헤매는 것이 글이었구나. 선생님이 시를 다시 쓰라며 봐주시겠다고 해서 힘을 내서 등단한 겁니다. 나는 내 자신의 인생을 거의 포기했는데 시에서 탈출구를 발견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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