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
석유는 자동차 선박 항공기의 연료, 발전소의 에너지원, 플라스틱과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등 실로 중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현 문명을 지탱해주고 있다. 이관영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1913년 석유로 만든 화학비료가 나와 식량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세계 인구는 비로소 15억명에서 60억명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거친 평화’시대 끝났다
‘생명체의 죽음’으로부터 태생한 석유는 종종 ‘전쟁의 숨은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1937년 중일전쟁을 개시한 일본이 석유 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로 진출하고 1941년 7월 미국이 석유금수조치를 취하자 이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것이 한 예다.(김재두 저서 ‘오일 100달러 시대는 오는가’) 1, 2차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석유자원으로의 접근 문제가 내재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김재두씨는 미국의 세계경영전략의 양대 축으로 대(對)테러전쟁과 에너지전쟁을 꼽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석유 확보’가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는 ‘자원 전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공산권이 몰락한 1991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2001년까지의 ‘거친 평화’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냉전’ 시대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새로운 냉전시대에는 에너지 안보가 최우선이 되어 각국 간에 투쟁과 공존이 일어난다고 한다.
사실 ‘30~50년 내 석유자원 고갈’을 알리는 경보는 이미 켜졌다. 녹색 대체에너지 활성화에 대한 지구적 공감대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인류는 아직 석유 문명을 대체할 과학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인도 등 거대한 인구의 신흥공업국은 세계 도처로부터 석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원유 소비는 2000년 하루 480만배럴에서 2009년 하루 850만배럴로 급증했다. 석유수입 의존도 100%, 연간 석유수입규모 908억달러(2007년), 전체 에너지 수입 대비 석유 수입 비율 82.3%의 한국으로서는 석유의 안정적 확보가 국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 되고 있다.
“지금보다 5배는 되어야”
그러나 한국은 자원 확보 경쟁에서 중국의 터무니없는 고가 매입전략에 고전했다(조선일보 2009년 8월10일 보도). 1조9500억달러(2008년 말)의 막대한 외환보유고의 중국 측에 덩치에서 밀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해외 석유자원 확보의 중추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는 하루 생산량이 5만배럴로 세계 93위 수준에 불과했다(미국 석유산업 주간지 PIW 조사). 한국의 모든 석유관련 기업을 합해도 하루 생산량 12만5000배럴, 전세계 물량의 0.09%에 그쳤다. 이라크 석유장관은 2007년 광구개발 참여조건으로 하루 20만배럴 이상의 생산능력을 요구했는데 이런 정도의 회사규모로는 참여기회조차 얻지 못할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3월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때 “석유공사가 지금보다 5배는 되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즉 에너지안보전략 차원에서 한국석유공사를 ‘글로벌 석유회사’로 키워 이 회사를 중심으로 에너지 확보 능력을 갖춰나간다는 전략을 세운 것.
2009년 석유공사의 납입자본금은 6조6500억원 규모.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에 비하면 영세한 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지시 이후 석유공사는 2012년까지 약 19조원의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다. 일부(4.1조원)는 정부에서 지원받고 나머지는 외부 차입등으로 조달할 예정이다. 석유공사의 변신이 성공할지 여부는 공기업 한 곳의 개혁 성패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석유의 안정적 확보라는 국가의 장래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강영원(姜泳元·58)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2008년 8월 취임 후부터 ‘석유공사 대형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전남 장흥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그는 ㈜대우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는 등 대우에서 잔뼈가 굵은 ‘상사맨’으로, “민간의 성과중심 마인드를 공기업에 접목하는”(한국경제 2010년 3월19일자 보도) 차원에서 현 정부에 의해 발탁됐다. 그는 대우에선 해외영업과 재무관리가 전문이었으며 지독한 일벌레였다고 한다. 다음은 강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