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드라마 ‘도망자’와 현실세계의 사설탐정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10-29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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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도망자’와 현실세계의 사설탐정

    KBS 미니시리즈 ‘도망자’

    KBS 2TV 드라마 ‘도망자 Plan. B’는 의뢰인과 사설탐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진이(이나영 분)는 부모와 양부모가 의문의 사고로 죽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멜기덱’이라는 사람이 연관돼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진이는 사설탐정 지우(정지훈 분)를 찾아온다.

    “사람도 찾아주나요?”(진이)

    “물론이죠. 돈만 준다면.”(지우)

    거래는 성립된다. 지우에게 주어진 정보는 ‘멜기덱’이라는 세 글자뿐. 그러나 놀랍게도 지우는 며칠 만에 멜기덱의 중국 상하이 거주지로 좁혀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지우는 같은 ‘국제탐정협회’ 소속의 일본 탐정 나카무라 황(성동일 분)의 도움을 받는다. 대신 의뢰금의 일부를 ‘뿜빠이’ 해주어야 하는 조건이다.



    드라마의 사설탐정 이야기는 현실세계의 탐정 활동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나라에는 탐정이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취재에 탐정 고용

    탐정 연구로 한국체육대에서 석사학위(2002년)를 받은 김모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국민은 관련법이 없어 탐정 활동이 불가능하지만 외국인은, 탐정업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방품목이므로, 탐정 활동이 가능하다.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의뢰사건의 대부분은 ‘사람 찾기’다. 아니면 ‘증거 찾기’다. 대개 의뢰인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어떤 사건은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데 이때 탐정은 실제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탐정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건을 해결한 뒤 도움을 준 각 나라의 탐정과 이익을 배분한다.

    의뢰인은 대기업에서부터 언론사까지 다양하다. 국내 모 언론사는 전직 대통령의 해외비자금 의혹을 취재하면서 미국 탐정을 고용해 증거자료를 얻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탐정도 기업화되어 있고 수하에 변호사, 회계사를 거느린다. OECD 국가 대부분은 탐정을 허용한다. 일본에서 탐정업은 신고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하순봉 의원이 공인탐정법을, 이상배 의원이 민간조사법을 발의했으나 법사위 상정도 안돼 폐기됐다. 선진국에 다 있는 탐정이 우리나라에서는 허용이 안 되는 배경엔 ‘밥그릇 뺏길까’ 우려하는 법조인 집단의 배타성도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만난 경찰 대부분은 사설탐정 도입에 찬성했다. 사설경비를 허용한 뒤 수많은 기업, 상류층, 중산층이 사설경비업체와 계약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방범이 취약한 서민주거지에 경찰력을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사설탐정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는 논리다.

    현재 수사형사 1인당 40~50건의 사건이 물려 있는 건 예사다. 가족이 실종되고 사기꾼이 종적을 감춰 밤잠을 못 이루는 데도 수사는 차일피일 미뤄진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저급한 공권력 서비스를 받는 구조다. 사회 전체 불행의 총량은 더 커지게 된다.

    드라마 ‘도망자’와 현실세계의 사설탐정
    탐정은 경찰을 대신해 사람이나 증거를 찾아준다. 탐정에겐 일정수준의 정보접근권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대신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용할 땐 공무원과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탐정은 무허가 심부름센터와 다르다. 형사는 수사업무의 과부하를 덜게 된다. 탐정을 고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양질의 공권력 서비스가 돌아갈 수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셜록 홈스’나 ‘지우’가 필요한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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