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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⑤

“승부는 끝나봐야 안다” ‘4대천왕’ 압박하는 ‘2虎’

왕양 광둥성 당 서기, 왕치산 국무원 부총리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승부는 끝나봐야 안다” ‘4대천왕’ 압박하는 ‘2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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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끝나봐야 안다” ‘4대천왕’ 압박하는 ‘2虎’

지난해 11월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왕양 중국 광둥성 당 서기를 접견하고 있다.

이들 6인은 모두 17기 중앙정치국의 25명 정(正)위원에 포함돼 있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똑같이 국가정상급 인사라면 중앙정치국 위원 25명은 똑같이 부(副)정상급(부총리급) 인사다. 중국에서는 부총리급 이상 지도자가 돼야 ‘국가영도(국가지도자)’라고 불린다. 또 국가정상급은 정국급(正國級), 부정상급은 부국급(副國級)으로 부른다.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중앙정치국 회의에 참여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한 표씩을 행사한다.

하지만 이들 중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와 왕치산 부총리는 1940년대 출생이다. 반면 시진핑, 리커창, 리위안차오, 왕양은 1950년대 출생이다. 1940년대 출생자는 2012년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된다 해도 2017년 18차 당 대회 때는 상무위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중국이 간부들의 연경화(年輕化)를 추진하면서 이미 굳어진 관행이다. 2002년 가을 후진타오 지도부가 출범할 때 장쩌민 전 주석의 동년배 지도자는 줄줄이 물러났다. 또 2007년 가을 17기 지도부가 출범할 때도 당 대회가 열리는 해를 기준으로 만 67세를 넘은 사람은 모두 퇴진했다.

앞으로도 이런 연령 제한에는 변함이 없을 듯하다. 따라서 1948년 7월생인 왕치산과 1949년 7월생인 보시라이는 2017년 가을이면 나이 제한에 걸려 일선 지도부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들이 2012년 가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더라도 ‘중국의 5세대 지도부’로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후 주석을 필두로 한 제4세대 지도부에 이미 진입했어야 할 인물들이다.

이들 6명을 제외하고 2012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사람은 링지화(令計劃·54) 중앙서기처 서기다. 일각에서는 위정성(兪正聲), 류옌둥(劉延東), 장더장(張德江),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 중앙정치국 위원과 왕후닝(王?寧) 중앙서기처 서기도 거론한다. 하지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단 9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위정성을 비롯한 이들 6명 또는 이들 6명을 포함한 다른 후보들은 위에서 언급한 7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2자리를 놓고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왕·양



중국에서 몇몇 ‘낙하산 인사’를 제외하고 특히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가 안정기에 들어선 이후 승진이 가장 빨랐던 사람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리커창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그리고 왕양 광둥성 서기 등 3인이다.

‘리틀 후’로 불리며 후 주석의 후원 아래 승승장구한 리 상무위원은 28세에 이미 공청단 중앙학교 부부장과 중앙서기처 후보서기로서 청장급에 승진했고 30세 나이로 차관(부부장)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에 올랐다. 이어 38세에 장관(부장)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거머쥐었다(제6세대 지도자군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승진하고 있는 루하오(陸昊)도 41세 때인 2008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맡았다). 리커창은 43세 때 당시 최연소로 성장급에 승진했다.

후 주석 역시 출발은 늦었지만 42세에 장관(부장)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역임한 데 이어 이듬해엔 43세의 젊은 나이로 구이저우(貴州)성 당 서기가 됐다. 49세의 나이로 국가지도자 중 한 사람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후 주석의 기록은 앞으로도 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갓난아기 시장’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왕양은 17세 때 다니던 고교를 그만두고 공장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승진 속도는 후 주석이나 리 상무위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26세에 안후이(安徽)성 쑤(宿)현 부서기를 맡은 데 이어 이듬해엔 처장급인 공청단 안후이성 선전부 부장에 올랐다. 이어 33세에 청장급, 38세에 차관(부부장)급에 올랐다. 비록 리 상무위원보다는 못하지만, 집안 배경도 미미하고 이끌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이 여기까지 자력으로 올라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왕양이 1988년 33세의 나이로 안후이성 퉁링(銅陵)시 시장을 할 때는 전국에서 가장 어린 청장급 간부 중 한 사람이다 보니 주변에서 ‘와와(娃娃) 시장’이라 불렀다. ‘와와’란 갓난아기를 뜻한다. 이처럼 젊은 시장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92년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하면서 특별히 그를 접견해 격려했다. 38세로 안후이성 부성장에 임명될 때도 전국 최연소 부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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