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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 노벨상 앞에 당당하라!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x@naver.com|

‘과학 한국’, 노벨상 앞에 당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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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부산물’

‘과학 한국’, 노벨상 앞에 당당하라!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임(왼쪽)과 노보셀로프.

화학상 공동 수상자 중 2명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인이다. 그 점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에겐 경쟁 심리가 발동한다.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가 의식의 전면으로 나선다. 일본인은 한꺼번에 2명씩 노벨상을 타는데, 우리는 1명도 못 타다니? 여기에 그래핀 연구에서 가임·노보셀로프 연구진과 경쟁 중인 미국 컬럼비아대의 한국인 김필립 교수가 안타깝게 제외되고,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라는 고은 시인도 고배를 마셨다는 소식이 더해지자 이런 감정은 더 고조된다.

왜 일본은 타는데 우리는 못 타나. 노벨상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연구자라는 개인 자체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일본, 한국, 중국이라는 아시아 3대국의 경쟁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시각은 언론매체를 보면 더 뚜렷이 드러난다. 일본은 이번에 화학상 수상자를 2명이나 배출한 것을 비롯해 국적 변경자까지 포함하면 과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15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기사가 줄줄이 실렸다. 상세한 분석도 따라붙는다. 과학 분야 수상자로 보면 일본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에 이은 세계 7위 강국이고, 외국 ‘물’을 먹어본 적이 없는 토종 과학자, 학계에 몸담고 있지 않은 기업의 연구원까지 수상할 만큼 기초과학의 저변이 튼튼하며, 그것은 국가가 기초과학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과 투자를 한 덕분이라는 등등.

그런 반면에 우리에겐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여건이 미비할 뿐 아니라 가임 같은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는커녕 주입식 암기 교육에 치중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을 외면하고 홀대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등의 비판과 반성이 이어진다. 그리고 다양한 해결책도 제시된다.



요즘 노벨상을 다룬 기사에서 눈에 띄지 않는 내용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노벨상의 취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생략하는 모양이다. 알다시피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폭발물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인물이다. 그래서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고, 자신이 죽고 난 뒤에 그런 별명으로 기억될까 두려워서 인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한 인물에게 줄 상을 제정했다.

노벨은 국적 따지지 말라고 했건만…

노벨은 사실 바로 전해에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제공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했지만, 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얼마나 혜택을 줬는지는 시간이 좀 흘러야 드러날 테니까. 노벨도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겠지만, 굳이 유언장에 ‘전해’라는 말을 쓴 것은 젊은 학자를 지원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참신한 아이디어는 젊은 두뇌에서 나오게 마련이며, 젊은 학자가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면 곧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젊은 학자에게 거액의 상금은 후속 연구를 하거나 생활 기반을 잡는 데 아주 유용할 테고. 그러나 노벨상은 젊은 학자보다는 그 학자가 세월이 흘러 학계에서 확고한 기반을 잡은 뒤에 수여되는 경향이 강하다. 시간이 흘러야 인류에게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게 아닌가.

노벨재단의 마카엘 솔만 사무총장은 노벨상이 오늘날과 같은 명성과 권위를 지니게 된 데에는 최초의 국제적인 상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나라마다 자국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상을 줬다. 국적을 가리지 말라고 명백히 밝히며 상을 제정한 것은 노벨이 처음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국왕까지 나서서 이에 반대했다. 남의 나라 학자에게 굳이 상과 상금을 줄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벨상은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 오히려 스웨덴의 국격을 높이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다.

노벨은 국적을 따지지 말라고 했건만, 지금 우리 사회는 노벨상을 국가 차원의 상으로 보고 국격을 높이려는 쪽으로 이용하려는 듯하다. 본래의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로지 한국인이 받느냐 만 중요한 듯하다. 수상자가 어떤 연구를 했으며 인류에게 어떻게 얼마나 공헌을 했느냐는 질문은 조그맣게 다뤄지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못 받는가라는 부정적인 질문만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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