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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⑪

선운사 단풍 숲

비울수록 크게 채워주는 감홍난자(紅爛紫)의 선계(仙界)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선운사 단풍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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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단풍 숲

선운사(영산전 뒤편)의 천연기념물 184호 동백 숲.

어디 선운사 단풍 숲만이 마음에 풍요를 안겨주고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할까. 이 땅의 수많은 절집이 절기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천년 세월 동안 표출해왔지만, 그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이는 오직 절집을 찾는 이들만일지도 모른다.

선운사 절집을 찾는 순례자들의 화색이 밝고 행복한 모습을 본 적은 또 있다. 철옹성 모양으로 아기단풍나무의 잎이 견고한 녹색으로 가득했던 지난 8월, 금강문을 들어서는 방문객들의 반응을 문 앞에서 한동안 지켜봤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눈앞에 바로 선홍색 꽃이 만개한 배롱나무가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왜 절집마다 오래된 배롱나무를 키우고 있는지 평소 품은 의문은 참배객들의 “아…!” 하는 외마디 탄성으로 모두 풀렸다. 장대비가 그친 뒤라 숲길의 공기는 물먹은 듯 습했고, 그래서 체감온도는 더욱 높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녹색뿐이던 숲길을 지나온 순례자들이 금강문을 들어서자마자 만난 것은 무더기로 활짝 핀 선홍빛 배롱나무 꽃이었다. 녹색의 세상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홍색의 파격을 만나는 감흥은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아…!”라는 탄성만이 그 순간의 감동을 강렬하게 나타낼 뿐이었다. 금강문 앞에서 순례자들의 감흥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배움이었다.

선운사 경내에는 300년 묵은 배롱나무가 네 그루 있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왼편 만세루 앞에, 명부전 옆 수각 곁에, 그리고 대웅보전 앞 축대 양 곁에 자라고 있다. 종무소의 이성수 총무과장은 꽃이 귀한 여름철에 부처님께 꽃 공양을 하고자 옛날부터 절집에서 아껴온 나무라고 한다.

선운사는 검단선사(黔丹禪師)가 577년(백제 위덕왕 24년)에 창건했다. ‘선운사사적기(禪雲寺寺蹟記)’는 창건 당시에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는 대가람이었다고 전한다. 고려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폐사로 있던 절을 중수(1354년, 공민왕 3년)했고, 조선 성종의 숙부 덕원군의 후원으로 1472년(조선 성종 3년)부터 10여 년간 대대적으로 중창했지만 정유재란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오늘날의 대웅전·만세루(萬歲樓)·영산전(靈山殿)·명부전 등은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원준(元俊) 스님과 함께 1613년(광해군 5년)부터 3년에 걸쳐 건립한 전각들이다. 주요 문화재로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과 대웅전(보물 제290호) 등이 있고, 생명문화재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184호), 장사송(천연기념물 354호), 송악(천연기념물 367호) 등 3점의 자연유산을 보유한 절집으로 유명하다.



선운사 단풍 숲의 감상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곳에 머무르면서 주변을 완상(玩賞)하는 방법과 두 발로 숲길을 거닐면서 단풍 세상 속에 직접 풍덩 빠져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한 곳에 머물면서 단풍 숲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좋은 장소는 금강문 앞을 흐르는 도솔천 주변의 들머리 단풍 숲이고, 거닐면서 단풍 숲에 빠져들기 좋은 곳은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숲길이다.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면서 정적(靜的)인 풍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면 먼저 좋은 자리를 찾아야 한다. 금강문 앞의 단풍 숲을 감상하기 좋은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삼각대에 사진기를 고정시켜 놓고 적당한 광선을 기다리는 사진작가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해마다 개최되는 선운사의 단풍사진 촬영대회에 천 수백 명의 사진작가가 참가하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의 사진기가 향하는 곳은 색동 단풍 숲이 자아내는 최고의 풍광일 수밖에 없다.

자줏빛과 붉은빛의 대향연

그러나 사진작가들이 모여 있는 장소는 대체로 혼잡하고, 공간도 협소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감상 장소를 찾고자 하면 걸음품이 필요하다. 들머리 단풍 숲은 도솔천 주변 어느 곳에서든 감상할 수 있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진입로에서 도솔교 쪽으로 바라보는 풍광이 더 아름답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는 도솔천의 남북축과는 달리, 동서축으로 감상하고자 할 때는 절집 쪽에서 도솔천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도솔천 건너편에서 절집을 바라보는 풍광도 나쁘지 않으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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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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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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