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세헤라자데 vs 리시스트라테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입력2010-11-03 10: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슬프도다! 영혼과 생명을 지닌 자들 중 우리 여성들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존재일 것이다. 우리들은 지참금으로 남편을 사야만 한다. 그리고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때부터 우리들의 몸은 남편의 소유가 된다는 점이다.

    (…) 남자는 집안이 편안하지 못하면 ‘밖에서’ 그들의 영혼을 진정시켜줄 무언가를 구할 수 있다. 친구 곁에서, 혹은 동료들 곁에서. 그러나 우리 여성들은 ‘고독의 방’을 지키고 앉아 있어야만 한다. 입버릇처럼 남자들은 그들이 군대에 나가 있는 동안 여자는 아무 위험 없이 집에서 편안하게 살림만 한다고 한다! 허튼 소리! 나는 오히려 세 번 전쟁에 나가길 바란다. 단 한 번 산고(産苦)에 시달리는 것보다도.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중에서

    1 ‘여성혐오증’에 걸린 사회와 소통하기 위하여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미하일 포킨이 안무한 발레 ‘세헤라자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아내가 “우리, 얘기 좀 해”라고 말을 걸면 반사적으로 ‘움찔’ 놀라는 남편이 자주 등장한다. 여성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로 시작하려 하지만 남성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일단 ‘침묵’하기를, 상대방도 자신의 침묵을 이해해주기를 바라곤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어두운 내면의 동굴로 숨어버리고, ‘금성에서 온 여자’는 굳게 닫힌 방문을 향해 손마디가 시리도록 노크를 하며 “제발 이야기 좀 하자”고 요구하는 장면이 일상에서 수없이 반복된다.



    이는 고전문학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장면이다. 여성의 ‘대화를 통한 협상’ 요구 vs 남성의 끈질긴 ‘침묵시위’. 한쪽에서는 필사적으로 대화를 원하고 한쪽에서는 기필코 침묵을 사수하고자 하는, 남녀 관계의 영원한 딜레마. 그러나 ‘문학’은 언제나 ‘침묵’보다는 ‘대화’의 손을 들어준다. 침묵만으로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갈등을 ‘이야기’로 풀려 하는 여성과 갈등을 ‘침묵’으로 은폐하려 하는 남성 간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대화’의 승리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가 바로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에 등장하는 여성들이다.

    ‘천일야화’에서 왕비의 혼외정사를 뒤늦게 눈치 채고 분노와 상실감에 치를 떨다가 마침내 그녀를 죽여버린 샤리아 왕. 그는 아내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분노를 이 세상 모든 여성에게 확대시킨다. 매일 새로운 여성과 결혼해 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 그녀를 교수형에 처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현숙한 여인은 한 사람도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으며, ‘앞으로 취하게 될 여인들이 또다시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못하게끔’, 아예 그녀들의 목숨을 끊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처녀들이 아무 죄 없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매일 한 명씩 죽어나가고 집집마다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신의 딸 세헤라자데가 나선다. 자신이 직접 ‘신부’로 나서서 왕의 마음을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저는 딸을 잃게 될까봐 떨고 있는 이 도성 어머니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싶답니다. (…) 술탄께서 매일 새 결혼식을 거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버님의 중개를 통해서잖아요? 그러니 저에 대한 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에 힘입어 간절히 부탁을 드리건대, 술탄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영예를 제게도 허락해주세요. (…) 저에게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아요. 만일 제가 죽는다면 그건 영광스러운 죽음일 거예요. 반대로 제 계획이 성공한다면 저는 이 나라에 중대한 기여를 하게 되는 거고요.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천일야화’, 열린책들, 2010, 33쪽

    세헤라자데는 흔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화려한 용모’ 때문이 아니라 기막힌 말솜씨와 엄청난 독서량,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극히 제한되던 시대, 세헤라자데는 드디어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의 용처(用處)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독서 체험과 갖가지 지혜를 다른 여성을 구하는 데 사용하려 한다.

    그녀가 ‘위험한 신부’를 자청하는 것은 단지 왕의 광기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는 처녀들을 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 평화를 ‘여인의 정절’에서 찾으려는 남성의 병적 집착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벼랑 끝에 놓인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도 바쁜 처지에 다른 모든 여성을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나서는 세헤라자데. 그녀는 장장 1001일 동안 매일 밤 샤리아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처형을 하루하루 미루어 마침내 왕의 광기를 멈추는 데 성공했다.

    세헤라자데가 불가피하게 1001일 동안의 이야기 퍼레이드라는 ‘장기전’을 시작했다면, 리시스트라테는 파격적으로 여성들의 ‘파업’을 이끌며 목숨을 건 ‘단기전’을 시작한다. 늘 전쟁에만 미쳐 있어 도무지 남편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아테네 여자들. 그녀들은 리시스트라테의 선동으로 그리스의 모든 여자와 힘을 합해 남자들이 전쟁을 멈추기로 약속할 때까지 ‘잠자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한다. ‘성인 남성만의 배타적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하던 아크로폴리스는 ‘여성들의 잠자리 파업동맹’이라는 초유의 사태 발생지로 거듭난다. 리시스트라테는 여인들을 선동하며 외친다. 전쟁이 빼앗아간 우리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잠자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2 당신을 사랑해요…그러니, 당신을 떠나겠어요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2007년 그리스 팔레스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리시스트라테’의 한 장면.

    여러분은 애아버지들이 그립지도 않나요? 그들이 집을 떠나 군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말예요. 여러분 중에 남편이 집을 떠나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하는 말예요. (…) 사랑하는 남편은 코빼기도 볼 수가 없어요. (…) 우리에게는 가죽으로 된 원군(援軍)이라 할 모조 남근도 나는 구경하지 못했다니까요. 그래서 내가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낸다면 여러분은 나와 함께 전쟁을 끝낼 용의가 있나요? (…) 앞으로 우리는 남근을 삼가야 해요.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단국대학교출판부, 2006, 216~218쪽

    아리스토파네스 특유의 풍자와 익살로 가득 찬 희극 ‘리시스트라테’는 ‘전쟁’이 곧 ‘일상’이던 시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증언한다. 남편은 참전을 핑계로 몇 달씩 집에 들어오지 않고, 남편이 곁에 있건 없건 그 모든 집안 살림을 아내 혼자서 처리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성교’와 ‘출산’의 도구 이상으로 대접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리시스트라테는 남편과의 사랑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여성들을 선동해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수만 있다면 전쟁터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은 남성의 어리석음을 끝장낼 수 있다’고 선언한다.

    “집에서 나는 남편과 어떠한 성적 접촉 없이 지낼 것이며, 사프란색 가운을 입고 화장을 하고, 남편이 나를 몹시 열망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성들은 우여곡절의 토론 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임에 합의하고 사상 초유의 집단 ‘섹스 파업’을 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함께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빗장과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근 채 남성들과의 ‘성적 접촉’을 거부한다. 이 전대미문의 여성 총파업 사태를 알게 된 남성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남성들은 여성들과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은 채 일단 그녀들을 ‘진압’하려 한다.

    “우리가 소리쳐도 여자들이 문을 열기를 거절하면 문에 불을 질러 연기로 그들을 질식시켜야지!”

    ‘고약한 여인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야 한다’며 분노와 광기를 앞세우는 남성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에 스스로를 가둔 여성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불에 타죽을 위기에 처하자 도처에서 ‘여성 원군’이 도착한다. 파업 소식을 들은 여인들은 저마다 ‘우리 아낙네들이 타죽지 않도록’ 물동이를 들고 와서, 리시스트라테가 주도한 여성들의 총파업 선언에 열광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잠자리를 무기로 남성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광기를 끝장내고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일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섹스 파업’까지 불사하면서 참아야 했던 슬픔과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로, 다짜고짜 여성들의 파업을 ‘오만불손한 하극상’으로 판단하고 그녀들을 불에 태워 죽이겠다며 아우성친다. 그러나 아내가 집에 없으니 잠자리뿐 아니라 ‘삶’ 자체가 멈춰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남성들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협상에 나선다.

    “아아,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가장 예쁜 상대를 빼앗기고 어디서 상대를 구하지? (자신의 남근을 가리키며) 이 고아는 누가 돌보지?”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단국대학교출판부, 2006, 267쪽

    3 ‘세 치 혀’의 위대한 힘

    ‘리시스트라테’에서 여성들의 총파업으로 완전히 기가 질린 남성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진짜 두려움’을 고백한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유를 허용하면 저들은 틀림없이 남성들보다 뛰어난 전사가 될 것이라고.

    “여자들이 기마술을 익히게 되면 난 우리 기사들을 명단에서 지워버리겠소. 여자는 날 때부터 승마의 명수인 데다가 말을 타기 좋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들은 달리는 말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없거든요. 아마조네스족을 보시오!”

    남성들은 드디어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여성을 길들이기 어렵기 때문’임을 인정한다.

    “세상에 여자보다 더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없어. 불도 그렇게 다루기 어렵지 않고, 표범도 그렇게 뻔뻔스럽지는 않아.”

    남성들은 ‘여인 없는 삶’의 끔찍함을 경험한 후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전쟁 영웅의 화려한 무용담’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드디어 오랜 전쟁을 끝내고 각자의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내에게 당한 이 뼈아픈 ‘패배’가 그 어떤 전쟁의 승리보다 달콤한, 진정한 삶의 ‘승리’임을.

    세헤라자데는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용기와 무한한 재치와 경탄스러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무수한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기억력 또한 비상하여 한 번 읽은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철학, 의학, 역사, 각종 예술에 능통했으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들을 능가하는 훌륭한 시를 짓곤 했다.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천일야화’, 열린책들, 2010, 33쪽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남편들이 전쟁을 끝내게 하기 위해 ‘섹스 파업’을 벌인 그리스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리시스트라테’의 한 장면.

    세헤라자데는 끊임없는 이야기의 ‘티저 광고’로 왕의 살인 욕망을 잠재웠다. “그 뒤의 이야기는 훨씬 더 재미있답니다!” “만약 술탄이 처형을 하루 연기해주신다면 나는 내일 이야기를 더해줄 수 있을 텐데!” “아, 벌써 날이 밝아오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남아 있는데”…. 세헤라자데는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이런 식으로 자극해 살얼음 같은 ‘처형 전날’의 공포를 1001일 동안이나 매일매일 이겨냈다.

    국왕은 처음에는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나중에는 목숨을 걸고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며 처형을 하루씩 연기하는 그녀 자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마침내는 그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 때문에 그녀를 버릴 수 없게 된다.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이야기 또한 재미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는 그녀, 그 이야기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그녀, 매일 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라는 존재가 궁금해진 것이다. 여자는 ‘언제든지 정절을 버릴 준비가 돼 있는 태생적인 바람둥이’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존재’, 일방적인 소유가 가능한 ‘재산목록 1호’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임을 국왕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헤라자데와 리시스트라테는 여성 혐오증에 걸린 남성, 나아가 여성에 대한 과도한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회 전체와 싸운다. 세헤라자데는 반짝이는 재치와 기지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기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여성들을 살려냈으며, 리시스트라테는 당시에는 결코 권장되지 않던 여성들 사이의 ‘공적 연대’를 시도해 성공했고 오직 출산과 잠자리밖에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여성들이 스스로도 모르던 자신들의 소중한 존재 가치를 일깨웠다.

    ‘여자는 혀부터 만들어진 것 같다. 마치 여우가 꼬리부터 만들어진 것처럼’이라는 프랑스 속담, ‘여우의 온몸이 꼬리인 것처럼 여자라는 족속은 온몸이 혀로 돼 있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남성들은 여인의 ‘세 치 혀’의 위력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자주 망각한다. 여성들이 ‘말조차 하지 못할 때’야말로 여성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때’보다 천만 배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더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여성의 ‘세 치 혀’ 때문에 귀가 따가운 순간도 있지만, 여성의 ‘세 치 혀’야말로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라는 점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건네는 아내의 위로가 없다면, 자신이 잘 모르는 일에서조차 천재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달콤한 조언을 해주는 연인의 위로가 없다면 ‘수다의 기쁨’에 익숙하지 못한 남성들은 얼마나 외로워질까. 자신을 향해 굳게 닫힌 방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여성의 대화 욕망. 그것은 남성의 우아한 침묵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갈등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안간힘이다. 그리고 여성의 ‘세 치 혀’가 지닌 마력은 단지 현란한 수사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삶이라는 모노레일 바깥에서 삶을 꿰뚫어볼 줄 아는 투시력이다.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인이라는 파랑새를 단단히 가두는 ‘새장’이 아니라 그녀들의 멋진 수다를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보청기’가 아닐까.

    사랑스러운 세헤라자데여! 정말이지 그대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끝없이 흘러나오는구려! (…) 나는 그대를 봐서라도 내가 정한 그 잔혹한 법(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그녀를 처형해온 것)을 기꺼이 포기하겠소. 이제 나는 그대를 정식 황후로서 영원히 사랑할 것이며, 앞으로 그대가 여인들의 구원자로 기억되기를 바라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내 원한으로 인해 숱한 여인들이 희생될 터였기 때문이오.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천일야화’, 열린책들, 2010, 1936~1937쪽.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