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위험한 신부’를 자청하는 것은 단지 왕의 광기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는 처녀들을 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 평화를 ‘여인의 정절’에서 찾으려는 남성의 병적 집착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벼랑 끝에 놓인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도 바쁜 처지에 다른 모든 여성을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나서는 세헤라자데. 그녀는 장장 1001일 동안 매일 밤 샤리아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처형을 하루하루 미루어 마침내 왕의 광기를 멈추는 데 성공했다.
세헤라자데가 불가피하게 1001일 동안의 이야기 퍼레이드라는 ‘장기전’을 시작했다면, 리시스트라테는 파격적으로 여성들의 ‘파업’을 이끌며 목숨을 건 ‘단기전’을 시작한다. 늘 전쟁에만 미쳐 있어 도무지 남편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아테네 여자들. 그녀들은 리시스트라테의 선동으로 그리스의 모든 여자와 힘을 합해 남자들이 전쟁을 멈추기로 약속할 때까지 ‘잠자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한다. ‘성인 남성만의 배타적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하던 아크로폴리스는 ‘여성들의 잠자리 파업동맹’이라는 초유의 사태 발생지로 거듭난다. 리시스트라테는 여인들을 선동하며 외친다. 전쟁이 빼앗아간 우리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잠자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2 당신을 사랑해요…그러니, 당신을 떠나겠어요

2007년 그리스 팔레스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리시스트라테’의 한 장면.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단국대학교출판부, 2006, 216~218쪽
아리스토파네스 특유의 풍자와 익살로 가득 찬 희극 ‘리시스트라테’는 ‘전쟁’이 곧 ‘일상’이던 시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증언한다. 남편은 참전을 핑계로 몇 달씩 집에 들어오지 않고, 남편이 곁에 있건 없건 그 모든 집안 살림을 아내 혼자서 처리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성교’와 ‘출산’의 도구 이상으로 대접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리시스트라테는 남편과의 사랑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여성들을 선동해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수만 있다면 전쟁터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은 남성의 어리석음을 끝장낼 수 있다’고 선언한다.
“집에서 나는 남편과 어떠한 성적 접촉 없이 지낼 것이며, 사프란색 가운을 입고 화장을 하고, 남편이 나를 몹시 열망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성들은 우여곡절의 토론 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임에 합의하고 사상 초유의 집단 ‘섹스 파업’을 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함께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빗장과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근 채 남성들과의 ‘성적 접촉’을 거부한다. 이 전대미문의 여성 총파업 사태를 알게 된 남성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남성들은 여성들과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은 채 일단 그녀들을 ‘진압’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