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역당국은 이 가축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발생 농장과 인근 지역의 소, 돼지를 살(殺) 처분해왔다. 이러한 예방적 살 처분으로 인한 매몰 두수는 2월12일 현재 329만두로 폭증했다. 사상 최대의 소, 돼지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 그럼에도 구제역은 더욱 맹위를 떨치는 결과로 나타났다. 방역당국의 초동대처 실패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살 처분 대신 백신 투여에 의한 예방 방식을 좀 더 선제적으로 도입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여권 내부에서도 나왔다.
최악의 방역실패 · 천문학적 손실
구제역은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수준이 됐다. 살 처분 보상비로 2조4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정부예산이 지출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같은 정부부처 1년치 예산을 넘는 규모다. 매몰 지역은 전국 4000여 곳에 달한다. 움직이는 가축들을 비탈지나 하천 부근 등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지역에 졸속으로 묻은 사실도 드러났다. 비닐 등 차단막이 찢기면서 사체의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내리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하수·상수원 오염 우려가 일고 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전례 없는 환경재앙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가 이미지도 손상을 입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안전기구(FAO)는 1월27일 “한국 내 구제역 확산 정도는 지난 50년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정도”라고 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2월10일 “한국에서 전례 없는 공중보건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면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 가축이 매장돼 심각한 2차 오염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유정복 책임론 등장 배경
야권은 구제역 방역 실패와 천문학적 손실을 들어 이명박 대통령을 질타했다. 류근찬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은 1월17일 “170만 우제류를 땅에 묻고 1조5000억원에 가까운 경제적 대가를 치른 뒤에야 대통령이 구제역 현장을 방문했다는 것은 얼마나 무감각하고 한심한 정권인지 여실히 증명한 것”이라고 했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도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구제역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산 채로 묻을 수는 없다. 최소한 안락사는 시켜줘야 한다. 완전 백치정부 아닌가? 비닐이 찢겨 나가고 침출수가 새어나오게 된다. 환경오염 대재앙이 목전”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뮤지컬 관람에 대해서도 호된 비판이 일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1월10일 “정부 초동대응 실패로 축산농가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수만 명의 공무원이 40일째 방역과 살 처분에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뮤지컬 관람이라니, 국정 상황을 모르는 무지의 극치를 보여준 꼴”이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1월17일 “정부가 구제역 발생 1개월 후인 지난해 12월25일에야 백신 접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구제역 확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백신 접종을 미적거린 이유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구제역을 종결하면 청정국 지위 유지에 유리하다. 그러나 청정국 지위에 따른 육류 수출은 연간 20억원 정도로 알려진다. 이를 위해 가축 살 처분을 고수하다 훨씬 큰 경제적 손실과 방역실패를 불렀다는 지적인 셈이다.
구제역 사태는 이렇게 의심의 여지없이 정부를, 그것도 최고 수장인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정부 여당 내부에서 구제역 사태에 대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책임론, 유정복 경질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