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이재오 특임장관.
친이계 의원, 개헌 논의 회동(1월18일)→당·정·청 안가 회동에서 개헌 문제 논의(1월23일)→이명박 대통령, 신년 좌담회에서 개헌 필요성 제기(2월1일)→한나라당 개헌 의원총회(2월8, 9일)로 이어지는 과정이 한 편의 시나리오다. 이 대통령은 개헌 필요성을 이렇게 설파한다.
“그때(1987년)는 민주화를 하다가 개헌을 했는데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가 왔다. 거기에 맞게 남녀동등권의 문제, 기후변화, 남북관련에 대한 것을 손볼 필요가 있다. 개헌에 대해 17대 국회부터 연구해놓은 게 많다. 지금 하는 데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늦지 않다. 새로 시작할 게 없다. 올해 하면 괜찮다.”
“이제야 홀가분해졌다”
그는 2009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선거제 및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논의를 정치권에 주문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평소 하고 싶어 했던 말을 이번에 충분히 했다. 청와대가 개헌을 추진할 수 없는 만큼 이제 국회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당·정·청 회동에서도 “개헌은 당에서 주도하되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 장관은 MB의 개헌 발언이 나오자 “이제야 홀가분해졌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꾸준히 개헌론에 불을 지펴왔지만 이를 두고, ‘이심(李心·이명박 대통령 의중)이 담기지 않은 개인플레이 아니냐’는 눈총이 없지 않았다.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이 장관의 개헌 행보는 거침이 없다. 트위터와 방송 출연을 통해 개헌 단상을 밝힌다. “개헌을 두고 친이와 친박이 다투거나 얼굴을 붉힐 아무런 이유가 없다”, “2007년 4월13일 만장일치로 확정한 당론대로 하면 된다”,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나의 상대는 골리앗이다”, “여야가 합의만 하면 개헌은 60일이면 끝난다” 등등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 4년차 돌입 시점에 개헌 추진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8월 이 장관을 발탁하면서 개헌을 ‘특임’으로 맡겼다는 분석이다. 친박계의 서병수 최고위원은 2월10일 “누구나 자유롭게 개헌 의견을 표시할 수 있지만, 이 특임장관은 경우가 다르다. 특임장관이 개헌을 주장하려면 대통령이 개헌 사무를 특별히 지정했는지 여부부터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임장관이 정략적인 문제로 갈등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한 중진 의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MB는 대기업 CEO 출신이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을 직접 챙긴다. 장관에게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다. 총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총리는 그 시점에 맞는 특별 임무를 수행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초대 한승수 총리에겐 자원외교 임무가 주어졌다. 그 다음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수정이었다. 김태호 후보자의 경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중요성이 확인된 젊은 층과의 소통 필요에 의해 뽑으려 한 것이다. 다른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1일 한수진 SBS앵커, 정관용 한림대 교수와 함께 방송좌담회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이 대통령의 묵시적 동조 아래 이 장관이 여론을 건드려보는 수순이란 관측도 있다. 친이계 한 중진 정치인은 이 대통령이 신년 좌담에서 개헌론을 언급하기까지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대통령이 개헌전선의 컨트롤타워는 아닌 것 같다. 이 장관의 뒤를 받쳐주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다. 아마 이 장관은 개헌전선을 확대하는 데 따른 정치적 효과를 제시하면서 이 대통령을 설득했을 테고,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손해 볼 일은 없다는 판단에서 ‘정 그렇다면 내 이름을 내세워서라도 열심히 해보라’고 OK 했을 수는 있다고 본다. 앞으로 이 대통령은 개헌 문제에 의견을 활발히 내지 않고 국정 운영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