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 정국 전망

“들불처럼 번지는 아랍판 프랑스 혁명의 불길 최대 기득권 집단 군부의 선택이 최종 변수”

  • 서정민│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중동아프리카학 amirseo@hufs.ac.kr

    입력2011-02-23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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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 정국 전망
    “이집트 시민혁명은 21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랍 근대사는 물론 세계사에도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발표된 2월12일 존스홉킨스 대학 중동학과 푸아드 아자미 교수는 CNN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레바논 출신 미국인으로 서방의 중동학을 이끌고 있는 아자미 교수는 또 “이번 아랍 민주화열풍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랍권 22개국이 모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실제로 민주화 시민혁명의 물결은 황량한 사막을 넘어 많은 아랍 국가로 밀려가고 있다. 32년간 예멘을 통치한 알리 살리흐 대통령은 2013년으로 끝나는 자신의 현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대통령직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입헌군주국 요르단도 내각을 해산하고 정치개혁 작업에 나섰다. 알제리도 19년간 이어진 비상계엄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 권력 부자 세습에 성공한 시리아도 정치개혁을 공언했다. 바레인에서도 국왕이 나서 식량 보조금과 사회보장비의 증액을 정부에 지시했다. 그럼에도 이들 나라는 물론 팔레스타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타 아랍국가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간헐적이지만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이 걸려도 이어질 혁명”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은 아랍인의 심리구조(mentality)를 바꾸어놓았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아랍 내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것만은 틀림없다.” 미 해군대학원 중동학과 로버트 스프링보그 교수는 이번 시민혁명의 성격과 파장을 이렇게 규정했다.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아랍권 전체의 정치적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앞 다퉈 민주적 조치의 이행 공약을 내거는 등 자구책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면상으로 아랍의 현 시민혁명 현상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비슷하다. 수십 년간 지속된 독재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에 더 가깝다. ‘아랍판 프랑스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단순한 독재타도 혁명이 아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단순한 서민혁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혁명은 신권왕정의 절대주의체제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한 ‘사상혁명’이었다.



    스프링보그 교수의 말처럼 아랍의 시민혁명도 ‘사상혁명’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아랍의 세속주의 지식인들도 20세기에 수많은 계몽적, 개혁적 성향의 글을 내놓았다. 이런 노력이 현재 시민 주도 민주화 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는 아랍권의 중요한 전통과 아랍인의 심리구조에 자리 잡았다. 지도자가 아버지로 여겨지는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부족을 수천 년 동안 지배해왔다. 근대에 와서도 무력을 기반으로 한 쿠데타 군부세력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국민은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과 심리구조를 떨쳐버리고 아랍인의 마음속에 ‘자신감’을 넣어준 것이 이번 시민혁명이다.

    인식체계 혹은 심리구조가 바뀌면서 발생한 시민봉기이기에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아랍권 최대의 정치·문화 강국 이집트가 무너진 날, 22개 아랍국가의 수도 중심가에 모여든 인파는 자국의 일인 양 환호했다. 압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심리구조의 변화가 이처럼 아랍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는 데는 위성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뉴미디어의 역할이 지대했다. “리더가 없는 혁명이었다. 시민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역할이 없다. 나는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혁명의 불길이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옮아 붙을지는 페이스북에 물어보면 알 것이다.” 구글의 직원이자 이집트 혁명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와일 구님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큰 틀로 보면 20세기와 21세기의 통신기술 발달이 아랍의 시민혁명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특히 위성방송, 인터넷, SNS 등 뉴미디어가 확산되면서 가부장적 권력에 도전할 힘을 결집할 수 있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50여 년 동안 독재와 부패, 미진한 경제발전에다 부의 불공평한 분배, 높은 실업률하에서 살아왔다. TV와 신문은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대부분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해왔다. 불만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결집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었다. 왕정국가를 제외하고 공화정 체제하에서 뉴미디어가 가장 발달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다른 국가보다 먼저 변화를 달성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떨고 있는 아랍의 독재자들

    아랍의 다른 독재자들도 떨고 있다. 1969년 27세의 나이에 집권해 현재까지 리비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등이 특히 그럴 것이다. 문제는 리비아뿐 아니라 다른 아랍 국가들도 정통성 면에서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정권이 바뀌지 않는 독재의 형태다. 장기집권에 따른 부패가 만연해 있다. 더불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다. 산유국도 소득이 높고 복지제도가 잘돼 있지만 석유를 제외한 산업이 거의 없어 유가가 하락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테러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은 저유가가 지속됐던 1980년대 말이었다. 급속도로 늘어난 인구로 과거와 같은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대 산유국이지만 현재 사우디의 1인당 GDP는 우리보다 낮은 1만7000달러 정도다.

    결국 1980년대 말 동구 공산권이 무너진 것과 같은 도미노현상은 아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대부분의 아랍 정권이 이번 사태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다. 오일머니가 민주화 요구를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특히 국민의 가장 큰 분노를 사는 부분은 정권세습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왕정국가에서는 당연하듯 아들이나 형제가 왕위를 물려받고 있다. 시리아는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화정임에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미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집트, 예멘, 리비아 등에서도 권력세습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2004년 무바라크 차남 가말에게 권력이양설이 제기되면서, ‘키파야(Kifaya, 이제 그만 충분해!)’세습반대운동이 이미 거세게 일었었다. 최소한 공화정 국가에서는 권력세습 시도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걸프 산유국들의 경우 그 변화의 속도는 다소 느릴 것이다. 걸프 왕정이 가진 특징, 즉 ‘귀 기울이는 권위주의(List- ening Authoritarian)’를 무시할 수 없다. 걸프국가의 군주들은 지방 부족이나 관련 세력과 정기적으로 미팅(Diwan)을 하며 그들의 불만을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충족시켜왔다는 점에서 다른 면에서 보면 공화정 군부독재보다는 비교적 나은 정통성과 지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트머스 테스트’

    혁명의 전파 속도와 민주화 작업의 향방을 판단하는 근거로 이집트가 자주 언급된다. 이집트 소재 수니파 이슬람학의 본산 알-아즈하르대학 법학과 후삼 이사 교수는 “향후 아랍권의 민주화 여정에서 현재 이집트의 상황이 리트머스(Litmus Test)다”라고 언급했다. 이집트는 아랍의 정치대국으로 의회정치, 언론, 학문 등에서 중동의 구심점인 국가다. 특히 아랍권 내 영화와 드라마 생산을 주도하면서 중동 최대 문화강국의 자리를 6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또 아랍권 이슬람운동의 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창설지이기도 하다.

    “이집트 시민혁명은 성공했지만, 민주화 여정은 이제 시작”이라고 이사 교수는 강조했다. 이사 교수를 포함해 학자 대부분은 이집트 정국의 최대 변수는 군부라고 지적하고 있다. 18일간의 반정부 시위 기간 중 군은 중립을 지켰다. 총 한 방 쏘지 않았다. 시위대를 공격한 것은 내무부 소속 치안대였다. 이 때문에 국민의 신망이 더욱 두터워졌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보다 더 오래 이집트의 권력과 경제이권을 차지한 집단이 바로 군부다. 1952년 군사혁명 당시에도 사람들은 민주적인 정부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세속주의, 권위주의 독재정부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시민의 힘을 목격한 군이 과거와 같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군 최고위원회는 이미 의회를 해산했고, 구헌법을 중지시켰고, 비상계엄법의 철폐를 약속했다. 그러나 앞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준비하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포괄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야권세력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전면적이고 완벽한 민주개혁은 군의 기득권을 상당히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 정치역학 크게 변할 것

    야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재로서는 군부 출신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군 최고위원회가 민간 정부에 권력을 이양한다고 언급했지만, 퇴역장성도 분명히 민간인이다. 현재 실세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이다. 무바라크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은 군부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다. 그러나 둘 다 모두 무바라크의 최측근이다. 그가 집권하면 부패한 무바라크 정권을 청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국민의 불신이 큰 약점이다.

    따라서 민간인 출신으로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는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사무총장이다. 직업 외교관으로서 온유한 인상과 말솜씨로 이집트 국민과 국제사회의 호감을 얻어왔다. 국정운영 능력도 있다. 1991년부터 10년간 외무장관을 지냈다. 지나치게 인기가 높아지자, 무바라크 대통령은 2001년 그를 내쳤다. 이 점이 최근 반(反)무바라크 정서를 가진 국민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반면 세계 언론이 주목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는 이미 뒤로 처지고 있다. 지나치게 오랜 해외생활, 이중국적 소지 등으로 국내 기반이 약하고 민족주의 성향의 이집트인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

    ‘리트머스 테스트’ 이집트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중동의 정세는 장기적으로 요동칠 것이다. 중단기적으로는 아랍의 최대 정치 강국 이집트의 공백이 아랍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팔 분쟁의 가장 중요한 중재자인 이집트의 역할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주도 테러와의 전쟁 전면에 나섰던 무바라크의 모습도 한동안 볼 수 없다. 사우디와 더불어 수니파 이슬람의 주축인 이집트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이라크전쟁 이후 확대되고 있는 시아파 초승달의 주축 국가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이란을 축으로 서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남쪽으로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까지 연결되는 초승달 모양의 시아파 블록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특히 이란에 대적할 수니파 이슬람 정권이 아랍권에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이 우려하는 무슬림형제단의 집권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화혁명이 이슬람혁명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치게 확대과장된 것이다. 현재 아랍권에서 일어나는 반정부 시위는 민족적이고 세속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무슬림형제단은 현재의 시위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진다면 무슬림형제단의 후보 혹은 이 단체가 지지하는 후보가 적지 않은 표를 얻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아파와 달리 수니파는 1400여 년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권력을 차지한 적이 없다. 시아파와 달리 성직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 정국 전망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졸업

    이집트 카이로아메리칸대 정치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한국중동협회 사무총장

    중앙일보 중동전문기자

    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저서: ‘이란을 읽으면 북한이 보인다’ ‘부르즈 칼리파’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 그리고 한국은 위와 같은 지나친 우려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아랍권에 들어설 새로운 정치역학의 틀에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과거처럼 민주화나 인권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는 이제 버려야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랍권도 과거의 친미 혹은 반미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앞으로 정당정치에 기반을 둔 다원화 사회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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