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한국 대기업 글로벌화 성적표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11-02-23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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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그룹 부회장.

    SK C·C 모바일 커머스 사업본부의 티에리 씨는 회사에서 유일한 프랑스인이다. 컴퓨터공학 석사인 그는 3년 전 대대적인 글로벌 스태프 채용 때 SK C·C에 입사했다. 해외 시장 리서치와 모바일 커머스 솔루션 프리세일(presale·일반 판매에 앞선 특별 판매)을 담당하는 그는 요즘 기업 문화의 진화를 실감하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채용하면서, 회사가 어떤 나라의 직원도 문제를 느끼지 않는 ‘표준화된 기업 문화’를 빠르게 만들어가고 있다. 외국인 직원이 영어에 능통한 직원에게 업무와 일상에 대한 조언을 언제나 받을 수 있는 ‘글로벌 카페’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SK C·C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국내 거주 기준)은 63명. 이들의 출신국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중국, 대만, 러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스페인, 아제르바이잔, 인도, 카자흐스탄, 몽골, 터키 등 모두 16개국에 달한다. 아프리카와 남미를 제외한 모든 대륙 출신 구성원이 한 기업에 모인 셈이다.

    SK C·C가 글로벌 조직으로 빠르게 변모한 이유는 활발한 해외 진출에 있다. 2007년 중국과 인도에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국내 정보기술(IT)업체로는 최대 규모의 해외 프로젝트인 아제르바이잔 ITS 구축사업과 몽골 ITS사업, 카자흐스탄 우편물류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에는 미국법인을 설립하며, 북미 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전자지갑(m-Wallet) 서비스 제공 계약까지 체결했다. SK C·C 관계자는 외국인 채용의 강점에 대해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해당 국가 직원이 참가함으로써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인력과 일하는 것에는 숱한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 장벽. 한국인 직원 입장에서는, 외국인이 업무를 수행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영어로 알려줘야 하니 번거롭다. 지시한 업무 범위 외에는 일이 추가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한국 직원에 비해 생산성도 낮은 편이다.



    ‘외국인 직원 활용의 극대화’와 ‘공평한 대우’는 이 회사가 외국인 인력 운용에서 가장 유념하는 이슈다. SK C·C 관계자는 “언어 장벽 때문에 외국인이 보유한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외국인 직원에게는 주로 해외 사업과 연관된 역할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그뿐인가. 외국인 직원에게는 한국어 교육을, 한국인 직원에게는 영어·중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외국인 임직원 1만명 시대

    외국인 임직원 1만명 시대가 열렸다. 앞서 소개한 SK C·C처럼, 2000년대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글로벌화’를 외치며 외국인 고급 인력 영입에 박차를 가해왔다. 박형철 머서코리아 공동대표는 “매출의 50% 이상이 해외 시장에서 발생하는 기업이라면, 직원의 50%를 외국인으로 고용할 만큼 ‘글로벌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준에 비춰볼 때, 한국 대기업의 글로벌화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말 삼성그룹 임원 인사에서 화제의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외국인 임원의 증가’였다. 왕퉁 삼성전자 DMC연구소 베이징통신연구소장이 전무로 승진하는 등 모두 8명의 외국인 승진자가 탄생했다. 이는 2009년 4명에 비해 2배 늘어난 수치다.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스타 임원으로 통하는 데이비드 스틸 삼성전자 전무.

    현재 삼성전자의 외국인 임원은 모두 13명. 이들은 국내가 아니라 모두 해외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북미총괄 홍보팀장인 데이비드 스틸 전무다. 삼성전자의 스타 임원인 그는 북미 시장에서 TV 및 휴대전화 판매 1위를 달성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2005년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삼성전자의 고화질 디지털 TV에 디스커버리채널 방송을 독점 제공하는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고화질 TV로 보기 좋은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을 삼성전자 TV에 방영해 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것이다. 이는 스틸 전무가 특유의 국제 감각으로 글로벌 방송채널과의 파트너십을 이끌어낸 사례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근무하는 삼성전자 외국인 직원은 900여 명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전체 임직원 숫자는 9만4000여 명. 전체 임직원 중 외국인 비율이 0.9%를 차지하는 셈이다. 한 헤드헌팅업체 관계자는 “수치가 매우 낮아 보이지만, 0.1%의 차이를 만드는 데 기업은 엄청난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에 근무하는 인도인 키란 씨는 ‘삼성맨’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 출신인 그는 “삼성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두 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며 “많은 사람이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걸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의 삶보다 일에 무게 중심을 두는 한국 문화는 그가 모국의 기업 문화와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대목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아시아 국가에서는 드물게 다양성을 갖춘 기업’으로 주목받았던 LG전자는 지난해 말 남용 전 부회장이 대거 영입한 ‘C 레벨(부사장급)’ 임원들과 결별했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더모트 보든, 최고구매책임자(CPO) 토머스 린튼,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 디디에 쉐네브 등 계약 만료가 임박한 3명의 임원에 대해서는 연장을 포기했다. 최고인사책임자(CHO) 피터 스티클러, 최고전략책임자(CSO) 브래들리 갬빌 등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이들과는 합의를 통해 계약을 해지했다.

    외국인 임원 축출은 전임 CEO(남용 부회장)의 유산과 단절하겠다는 구본준 부회장의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LG전자의 실적 부진이다. 한 외부 전문가는 외국인 임원 도입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인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임원을 대거 기용해 의사 결정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이제 한국에서 근무하는 LG전자의 외국인 임원은 2명이다. 국내 직원 3만명 중 외국인은 100여 명이다. 전체 직원 중 외국인 비율이 약 0.3%를 차지한다. LG전자가 과거로 회귀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사실 외국인 임원 고용으로 단기적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장, 사업의 성장

    인력관리 전문가들이 ‘외국인 임원 영입의 성공사례’로 동시에 언급한 기업은 바로 두산그룹이다.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그룹 부회장은 2006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그룹의 대표이사가 됐다. 2009년에는 서버러스 캐피털 홍콩법인의 아시아 운영총괄 담당자인 찰스 홀리가 두산 지주 부문 인사총괄 사장으로 선임됐다. 지난해에는 박용만 두산 회장이 ‘매의 눈’으로 볼보 건설기계 CEO였던 안토니 헬샴을 두산인프라코어 건설 CEO 자리에 스카우트 했다. 헬샴 사장은 볼보 건설기계(VCE) 전문경영인(2000~08)으로 일하는 동안 회사를 이 부문 세계 3위로 키운 바 있다.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박용만 회장이 스카우트한 안토니 헬샴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두산그룹이 ‘외국인 인재 영입’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던 건 해외기업과의 인수합병(M·A)으로 성장했기 때문. 2007년 소형건설기계 업체인 미국의 밥캣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외부 전문가는 “두산이 외국기업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외국법인 HR책임자를 한국에서 일하게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해왔다”고 전했다.

    두산의 경영전략 중 기본은 2G다. 이는 ‘사람의 성장(Growth of People)’과 ‘사업의 성장(Growth of Business)’을 의미한다. 박용만 두산 회장은 필요한 외국인 인재를 뽑기 위해서라면 전세계를 찾아다니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은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연공과 타이틀을 중시하던 기존의 인사 관행도 파괴했다. 평가와 보상도 타이틀이 아닌 직무가치와 기여도에 따라 이뤄지게 만들었다. 외형에 걸맞게 조직 시스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바꿔가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인재 채용’에 적극적인 또 다른 산업은 바로 플랜트업계다. 해외 플랜트 수주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수행할 국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GS건설은 2005년 이후 매년 50~60명 의 외국인을 선발해왔다. 현재 국내에 근무하는 GS건설의 전체직원은 5641명. 이 중 외국인은 119명으로, 외국인이 1.9%를 차지한다. 영국, 프랑스, 미국, 루마니아, 호주, 이집트, 이탈리아, 방글라데시, 우크라이나, 필리핀 등 출신 국가도 다양하다.

    GS건설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 대부분이 플랜트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모두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70~80%는 싱글이다. 상당수 엔지니어는, GS건설에서 2~3년 경력을 쌓아 캐나다나 미국의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목표다.

    필리핀인 산 호세씨는 GS건설 근무의 장점에 대해 “중동지역 프로젝트 등 큰 규모의 작업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기업이 외국인 직원에 대한 장기 계획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도 밝혔다.

    외국인 직원들이 한국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회사는 어떻게 지원할까. 윤인섭 GS건설 인사관리팀 과장은 “외국인이 한국 생활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도록 1대 1 멘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멘토는 외국인 친구와 함께 주말에 여행도 떠나고, 취미 생활도 공유한다.

    외국인 직원 비중이 높은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2008년부터 ‘영어 공용화’를 시행하고 있다. 사내게시판에는 영어로 글이 올라와 외국인이 정보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없다. 삼성엔지니어링 건물에서는 언제나 영어로 된 사내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첫 여성 외국인 임원의 소송

    국내 기업들은 조직과 산업의 특성에 맞게 외국인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갖가지 어려움이 발생한다. 외국인 임원과 기업 간의 견해차로 소송이 벌어진 경우도 있다. 국내 대기업에 영입된 최초의 외국인 여성 임원으로 주목받았던 린다 마이어스 전 SK그룹 상무는 지난해 5월 SK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SK그룹이 고용계약 만료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재계약거부 의사를 통지했으며 이는 부당해고에 해당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SK 측은 “계약 만료를 4개월 앞두고 상대방에게 재계약이 어렵다는 의사를 미리 통지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마이어스 상무가 회사의 통보를 부당하게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소송을 맡고 있는 김형준 변호사는 “마이어스 상무가 SK텔레콤에서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길 때 이를 승진이라고 들어서 근무계약도 계속될 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마이어스 전 상무는 ‘신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은 외국인으로 몇 년간 실험한 뒤, 이들에게서 조금 배웠다 싶으면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낸다”고 꼬집었다. 그는 “외국인 임원을 함께 성과를 만들어나가는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한국인의 성향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제기된 해고무효소송은 아직 진전이 없다. 여기에서 파생된 새로운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SK 측은 민사소송법 제117조 제1항을 들어 국내 주소지가 없는 마이어스 상무에게 소송비 예납을 요구했다. 1심(서울지방법원)은 “소송비용을 예납 또는 담보제공하라”고 결정한 상황. 이에 마이어스 측은 이 결정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 항고했다. 또한 항고심 진행 도중 소송비용담보제공의무의 근거가 되는 민사소송법 제117조 제1항에 대해 외국인의 재판청구권 침해,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고등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 신청은 현재 인용, 기각에 대한 결정 없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SK가 외국인에게 불리한 민사소송법 조항을 악용해 마이어스 상무의 발목을 잡은 건 아닐까. 이에 대해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소송비 예납을 신청한 건 마이어스 상무와의 신뢰가 무너져서다. 만약 소송예납금이 없으면 승소한 우리의 재판비용을 패소한 마이어스 상무로부터 돌려받을 방법이 사실상 없게 된다. 소송예납금 제도가 없다면, 국내인이 외국인과의 재판에서 승소해도 외국인이 모르쇠로 일관할 경우 비용을 보전받을 길이 없다. 이 제도는 국내인이 피해를 보는 걸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SK 관계자는 ‘외국인 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외국인 임직원을 채용할 때 커리어패스와 학력 등 제한된 자료밖에 접할 수 없고, 평판조회를 시도하기 어려워 기업이 원하는 ‘롤’에 맞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미래의 해외 주재원 자원을 키우는 CJ그룹의 글로벌 인턴십.

    CJ 글로벌 인턴십의 교훈

    사실 ‘외국인 인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는 모든 한국 기업의 고민거리다. 한국 직원을 해외 지사에 파견할 경우 ‘현지화’에 어려움을 겪고, 해외 지사에서 채용한 외국인은 회사에 대한 이해도나 충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하던 CJ그룹은 그 대안으로 2008년부터 ‘CJ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GI·Global Inter-nship)’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4주간 매주 토요일에 모여 CJ그룹의 다양한 사업장을 방문하는 GNs(Global Networks)와 GNs에서 선발된 학생이 CJ그룹 내 관심 사업 분야에서 6주간 근무하는 GI로 구성된다. 인턴십에서 높은 성과를 거둔 참가자는 정식으로 채용한다.

    전상현 CJ 인재개발위원회 과장은 이 프로그램의 기대효과에 대해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외국인 인턴이 CJ에 근무하며 기업 DNA를 체득해 글로벌 사업장에 나갈 경우 높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인턴십을 통해 선발된 외국인 직원의 국적을 보면, 중국인이 약 80%를 차지한다. 이어 일본, 베트남, 대만 등 아시아 국가와 구 소련 연방국가 출신 직원도 눈에 띈다. 이들 국가는 CJ그룹이 해외지사를 세웠거나 시장 진출에 관심을 가진 곳이다. 전 과장은 글로벌 인턴십에 대해 “회사에 로열티를 지닌 해외 주재원 자원을 미리 육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J인재원 글로벌역량팀 중국인 장란닝(27)씨는 훗날 중국에 설립될 ‘제2의 CJ인재원’ 원장이 되기를 꿈꾼다. 중국 베이징대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공부한 그는 2008년 ‘글로벌 인턴십’을 통해 CJ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장씨는 “다른 대기업의 글로벌 인턴도 경험했지만, CJ에서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고 털어놨다.

    “모 기업의 경우 홍보 목적으로 글로벌 인턴십을 운영했기에, 직원들이 외국인 인턴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CJ에서는 멘토가 외국인 인턴에게 인터뷰 기법이나 보고서 PPT 만드는 법 같은 실무를 가르치고 피드백도 줬다. 인턴십을 거치면서 CJ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는 현재 ‘중국지역연구회’라는 액션러닝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에게 논의할 화두를 던지고, 중국에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준다.

    장씨는 매일 아침 다른 팀원들에게 중국어를 한 마디씩 가르친다. 장씨가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팀원들도 중국을 알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는 셈이다.

    “입사 초기에는 서툰 말 때문에 사무실 전화도 못 받고 점심 때 뭘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언어도 늘고 팀원들과 친밀해졌다. 무엇보다 ‘인력개발전문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한데 섞여 협업하게 하라”

    이렇듯 국내 대기업의 ‘글로벌 인재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비슷한 문제와 고민을 포착할 수 있다. 첫째, 갈등은 기업과 외국인 임직원 간 서로에 대한 기대가 불일치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음은 박형철 머서코리아 공동대표의 설명이다.

    “국내 대기업은 외국인 임직원이 ‘히딩크’ 같은 사람이길 원한다. 단기적으로 회사에 와서 큰 성과를 내주길 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은 외국인 직원에게 ‘해외 기업의 다양한 경영 케이스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사실 하이레벨에서 근무한 외국인은 디테일에 약한 경우가 많다. 결국 회사는 ‘외국인 임직원을 뽑았더니 막상 주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외국인 임직원의 입장에서는 회사가 자신의 지식만 이용하려 하고, 새로운 업무를 해볼 기회를 안 줘 답답하다. 회사가 외국인 임직원을 채용할 때, 먼저 서로간의 기대수준을 맞춰야 한다. 회사는 외국인 임직원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외국인 임직원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또 다른 문제점은 ‘정보 소외’다. 2008년부터 2년간 SK텔레콤에서 글로벌 인사관리(HR)를 담당한 스티븐 프롤리 박사(조직행동론)는 ‘신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외국인 임직원이 한국 기업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임원들은 때때로 자신의 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결정을 내리는 데 소외돼 있다. 외국인 임원과의 의견 교류 없이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과 외국인 직원들 사이에 불신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임원들은 아웃사이더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뛰어난 외국인 임원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나쁜 뉴스든, 좋은 뉴스든 정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좋다.”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임원은 늘 운전기사, 멘토에 둘러싸여 개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2~3년 후 떠나는 불안한 입지 때문에 조직에서 자기사람을 만들기도 어렵다. 외국인 임직원이 조직에서 성과를 발휘하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박형철 대표는 “외국인 임직원과 한국인 직원을 계속 섞이게 만드는 협업(Co-work)의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지난해 말 삼성그룹 임원 인사에서 승진한 왕퉁 삼성전자 베이징통신연구소장.

    국내 대기업이 외국인 인재 구인난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이 한국을 매력적인 근무지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커리어케어의 신혜경 상무는 “한국에서 일했다는 것이 경력에 도움이 별로 안 돼 뛰어난 인재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 근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의 헤드쿼터가 밀집한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근무할 경우, 아시아 전체 지역을 관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살기에 적합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신혜경 상무는 “홍콩, 싱가포르에는 미국, 영국 학교와 학점이 교환되는 외국인 학교가 많은 반면, 국내에는 경쟁력 있는 외국인 학교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외국인 인재가 한국행을 주저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유명 글로벌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대기업의 DNA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닫혀 있다. 글로벌화를 위한 첫걸음을 겨우 뗐지만,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걷기를 배우는 중이다. 지금 글로벌화를 꿈꾸는 국내 대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두려움 없는 시도다.

    인터뷰 | 수잔나 샘스택 오 대성그룹 고문

    “외국인에게 ‘도전적 과제’ 주고, 정확한 ‘롤’ 인식시켜야”


    외국인 직원 900명 삼성전자 16개국 직원 모인 SK C&C

    외국인 임원 고용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수잔나 샘스택 오 대성그룹 고문.

    신혜경 커리어케어 상무는 ‘한국 기업의 외국인 임원 고용이 성공한 사례’로 수잔나 샘스택 오(Suzanna Samstag Oh·53) 대성그룹 고문을 꼽았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기대역할에 충실한 역량과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 공기업은 오 고문의 활약을 보며, 외국인 임원 채용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오 고문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스러운’ 문화·홍보·마케팅 전문가다. 미국 조지타운대를 졸업한 그는 1980년 미국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는 사물놀이에 매료돼 고국행을 포기하고, 10년간 김덕수 사물놀이의 매니저를 지냈다. 서울대에서 영문학 석사와 국문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남이섬 문화원 원장을 거쳐 2006년 대성그룹에 입사한 오 고문은 현재 그룹회장보좌역 및 ‘코리아닷컴’ 부사장을 맡고 있다. 어떻게 하면 외국인 임직원이 한국 기업에서 성과를 거두게 만들 수 있을까. 그의 체험담과 조언은 다른 기업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대성그룹에서 오 고문을 채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한 주한 외국인 모임에서 김영훈 회장님을 우연히 만났어요. 제가 그 자리에서 ‘코리아’라는 브랜드 홍보의 필요성을 얘기했는데, 김 회장께서 특히 공감을 나타내셨죠. 한두 시간 함께 대화를 나눴는데, 나중에 ‘남이섬으로 출근하는 것 멀었죠?’ 하시더라고요. 그게 출근 제안이었어요. 김 회장님께서도 해외 진출 관련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고 계셨던 거죠.”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2013년 대구세계에너지총회 유치 업무를 담당했고, 회장님의 영어 연설문 작성도 도왔죠. 에너지 산업은 제가 처음 담당하는 부분이라서, 공부하는 게 정말 재밌어요. 대성그룹이 차세대 사업으로 관심을 갖는 분야가 문화콘텐츠인데, 저는 ‘코리아닷컴’의 글로벌화 프로젝트도 담당하고 있어요. 한류를 강화하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요. 그래서 코리아닷컴은 외국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해줘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중간 역할을 하죠.”

    ‘회사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일부 외국인 중에는 ‘한국 기업이 외국인을 잠시 이용만 한다’는 불만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제게 ‘도전적인 과제’를 많이 부여하세요. 그러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도전적으로 일하게 돼요. 기업이 외국인 직원으로부터 얻는 것과 외국인이 기업에서 배우는 것은 50대 50이 돼야 합니다. 회사가 외국인 직원이 성취감을 느낄 만한 경험을 선사하는 게 중요하죠.”

    외국인으로서 한국 기업에 기여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커뮤니케이션이죠. 에너지업계가 남성밖에 없는 보수적인 업종인데, 해외 비즈니스 미팅에 가면 한국 사람들은 자기네끼리만 모여 얘기해요. 그런 가운데 외국 회사 담당자들이 저를 만나면 무척 반가워합니다. 제가 국내 에너지업계 창구가 돼 해외 업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요. e메일 답변만 충실하게 해도 많은 성과가 있어요.”

    외국인 임직원을 선발할 때 한국 기업이 고려해야 할 부분은 뭘까요?

    “사전에 준비를 잘해야 해요. 정확한 업무 내용을 정하지 않고 외국인을 뽑을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외국인을 어떤 자리에 앉혀놨는데 주변에서 ‘그 사람 왜 와 있어요?’ 하면 곤란하잖아요. 외국인의 ‘롤(role)’에 대해 정확하게 명기하고, 그와 함께 일할 사람은 누구이며 업무 조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세부 사항을 정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인과 일할 때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요?

    “한국말 못하는 직원이 먼저 불평하기 전에, 먼저 다가가 ‘문제는 없느냐’ ‘어려움은 없느냐’고 묻는 게 좋아요. 외국인은 문제가 생겨도 자신이 불평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거든요. 사전에 대화로 풀면 앞으로 커질 문제도 미리 해결할 수 있어요.”

    한국 기업에 근무하려는 외국인에게 조언을 준다면?

    “회사에 다니다 보면 사교적인 문제가 생기는 데요. 외국인은 자신이 먼저 호스트가 되어 한국인 팀원들을 초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인 팀원들에게 자기 나라 음식이나 문화를 소개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거죠.”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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