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항아리에 담긴 ‘미드’.
왕위에 오르는 베오울프
흐로드가르 왕의 부탁을 한 번 더 들어주기로 한 베오울프는 최측근 부하 위글라프(브렌든 글리슨 분)만을 대동하고 그렌델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동굴로 향한다. 베오울프는 동굴 앞에 위글라프를 남겨두고 황금 뿔잔과 운페르드가 선물한 보검을 들고 홀로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괴물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형상을 한 그렌델의 어머니(안젤리나 졸리 분)를 만난다. 그런데 그렌델의 어머니는 베오울프에게 적대감을 보이기는커녕 그녀에게 죽은 그렌델을 대신할 아들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소원만 들어주면 베오울프를 왕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엄청난 부와 함께 영원히 남을 위대한 전설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베오울프는 매력적인 그녀의 유혹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동굴에서 나온 베오울프는 그렌델의 어머니 대신 죽은 그렌델의 머리만을 들고 흐로드가르 왕국으로 돌아와 그렌델의 어머니 역시 자기 손으로 처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녀에게 주고 온 황금 뿔잔도 그녀와 싸우는 도중 동굴 물속에 빠뜨려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렌델 어머니의 매력에 대해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웰소우 왕비는 베오울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다만 젊고 용맹한 베오울프에 대한 호감 자체는 숨길 수 없었다. 흐로드가르 왕 역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결국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곧 세상의 허망함을 느끼고는, 베오울프에게 왕위와 함께 모든 재산, 심지어 젊은 왕비 웰소우까지 맡기고 자신은 자살을 선택한다.
장면은 바뀌어 어느덧 베오울프가 왕이 된 지도 50년 세월이 흘렀다. 충성스러운 부하 위글라프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간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늙어가는 몸은 어쩔 수가 없다. 쇠약해져 가는 몸과 함께 지나간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점점 짙게 엄습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웰소우 왕비도 이미 늙어 베오울프의 옆자리를 애첩 우르술라(알리슨 로만 역)에게 넘겨준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와 운페르드는 당시 신흥 종교로 북구에 전파된 기독교 신자가 돼 있었다(북구에 기독교가 전파된 역사적 시점을 고려할 때 사실 관계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베오울프는 운페르드의 몸종이 우연히 황무지에서 황금 뿔잔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과거 그렌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아들은 불을 내뿜는 무시무시한 용으로 과거 흐로드가르 왕의 일까지 포함해 아버지들의 죄를 처단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베오울프 왕국을 불바다로 만든다.
이제 베오울프는 자신의 왕국을 위협하는 괴물이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용과 최후의 일전의 준비한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용의 급소를 공격해 그 심장을 제거함으로써 용을 처치한다. 그러나 그 역시 싸움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지쳐 죽어간다. 그런 그를 보며 오랫동안 그를 보좌했던 충신 위글라프는 ‘우리는 이제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늙은 모양이다’고 한탄한다.
위글라프는 자식이 없던 베오울프의 평소 유언대로 왕위를 이어받는다. 그리고 고인이 된 전설적 영웅 베오울프의 마지막을 위해 배에 그의 시신을 싣고 성대한 수장(水葬)을 치러준다. 그의 죽음은 웰소우와 우르술라, 운페르드뿐만 아니라 몰래 그의 시신을 찾아온 그렌델의 어머니에 의해서도 애도된다.
영화 베오울프의 원작인 고대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는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모두 3182줄의 이 작품은 10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필사본이 유일하게 전해지는데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작품은 게르만 민족의 영웅서사시로서 완전히 보존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고대 영어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영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미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고문을 가르치듯 이 작품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실제 영화에서 운페르드로 출연한 유명한 배우 존 말코비치는 고교 시절 이 시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수업 시간에 시 내용 중 일부를 암송하지 못하면 선생님에게 쥐어박힐 때도 있었다고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