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정치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번지는 신호탄이었다.
모든 금융협력은 자연히 개별 주권 국가의 이해와 상반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2가지 필요조건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모든 국가가 동의할 수 있는 계약을 근거로 공동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강대국, 혹은 힘을 합칠 수 있는 두 강대국이 존재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각국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에 상관없이 각국의 자주권을 희생할 수 있을 만큼의 탄탄한 동맹과 의지가 존재해야 한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두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되어야 각 국가 사이의 약속이 꾸준히 이행될 수 있다. 문제는 동아시아가 처한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일관된 리더십이 없다. 예컨대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법적 차원에서 국가 상호 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나라가 공조해 지역을 이끌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두 나라 간의 신뢰가 부족한 탓에 상호 격렬한 언쟁과 의심이 넘쳐난다. 두 나라 모두 상대방에게 더 큰 영향력 혹은 특권을 내주게 될지 모르는 공동의 구상에 몸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역내 진정성 있는 확고한 유대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동아시아에는 동질감이 없다는 것이다. 지리적인 요인 말고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한데 엮을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 오히려 여러 요인이 합쳐져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언어, 종교, 이념, 사회 구조 등이 그 예이고,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유물 또한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잔재는 우호라는 개념과는 상극이기에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불신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금융지역주의가 가져온 성과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점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필요조건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백이 더 눈에 띄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행동을 통한 변화
하지만 정치적 의지란 불변의 것은 아니다. 행동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원인과 결과를 역으로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안보 긴장 문제가 동아시아 국가들을 망설이게 하지만, 미래에는 다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각국 정책결정자들에게 금융 협력을 위한 임시적인 조치들이 주는 혜택을 알게 하고, 이들을 사회화(socialization)함으로써 지역 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각국 정부는 안보에 대한 우려를 재고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선순환(virtuous circle)’의 금융 정책들을 추가로 탄생시키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 간의 협력이 CMI나 CMIM과 같이 제도화로 이어지면 자연히 사회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열쇠를 찾는 데 있어 각국 정책결정자들의 공조가 많이 이루어질수록, 과거부터 매달려온 서로를 향한 의심에 더 이상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점차적으로 서로를 향한 조롱과 우려는 상호 신뢰로 대체되고, 궁극적으로 보다 포괄적인 구상들이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