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디자인 한류스타 알리프 엄세영 대표

‘화장실 팔찌’‘선글라스 목걸이’…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프랑스, 일본 잡는다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8-19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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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한류스타 알리프 엄세영 대표

    알리프의 뱅글랭귀지, 이어폰 목걸이.

    해외만 가면 애국자가 된다. 한국 가수 사진만 걸려 있어도 반갑고, 비빔밥 불고기 파는 한국 음식점만 보면 괜히 기웃거리게 된다. 그런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네덜란드 반 고흐 뮤지엄 등 이름만으로 유명한 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팔리고 있다면? 그야말로 ‘비바! 코리아!’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액세서리 기업 알리프(Alife)다. 1999년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디자인 소품 브랜드 알리프는 2004년 프랑스에 진출했다. 현재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등 유럽과 미국, 일본, 대만 등 총 50개 나라에 제품을 수출한다. 특히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루이비통 계열로 프랑스에서는 ‘귀족백화점’으로 통하는 르봉마셰(Le Bon Marche) 백화점, 입점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 3대 미술관(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에서 알리프 제품이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이쯤이면 디자인계의 원조 ‘한류스타’다.

    1년에 30차례 해외 전시회

    8월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알리프디자인에서 엄세영(37)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은 분주했고 엄 대표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이틀 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제품 전시회를 앞두고 연일 밤샘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알리프는 1년간 30여 차례 해외에서 전시회를 연다. 8월만 해도 스위스, 덴마크, 독일, 일본 등에서 전시회에 참여한다. 1년 동안 쌓이는 항공사 마일리지만도 엄청나다. 엄 대표는 1년 중 60%는 외국에서 보낸다. 몸은 고되지만 그 성과는 달콤하다.



    “각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현지 배급 파트너의 눈에 들면 그 파트너를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합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총 직원 13명의 작은 회사 알리프가 세계에 진출하기에 전시회는 최상의 등용문이죠. 전시회는 꼭 콘서트 같아요. 최대한 준비해서 있는 힘껏 뽐내는 거예요. 가수들이 힘들어도 무대 위에서 박수 받으면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전시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피로가 다 사라져요.”

    알리프는 여행, 디지털 기기, 일상생활과 관련된 디자인 소품을 만든다. 여권 지갑이나 여행용 캐리어, 스마트폰 커버, 동전지갑, 이어폰을 고정하는 이어폰 파우치, 여행용 가방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다. 알리프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반질반질한 에나멜 소재를 이용한다는 점. 에나멜은 색깔이 선명하고 밝아 여자아이 구두나 소품에 많이 사용되는 소재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 화질이 좋아지고 HD TV가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이 색깔에 예민해졌어요. 이전에는 비닐 소재로 반질반질한 에나멜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이제는 생기 있는 색깔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죠. 유럽 시장에서 ‘에나멜=알리프’로 통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소비자 사로잡아

    알리프 제품 중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상품도 많다. ‘뱅글 랭귀지’는 식사, 화장실, 공항, 짐 등을 나타내는 그림(픽토그램)이 새겨진 팔찌다. 엄 대표가 중국 출장 갔을 때 화장실이 급한데 말이 안 통해 곤란했던 경험을 살려 만든 제품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팔찌 위에 그림만 보여주면 쉽게 길을 물을 수 있다.

    접이식 여행용 보조가방과 캐리어 연결 벨트도 재밌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현지에서 쇼핑한 물건 때문에 갈 때보다 짐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돌아올 때 쇼핑백 여러 개를 손에 들거나 급하게 보조가방을 사야 한다. 그런데 알리프 여행용 보조가방은 펼치면 1ℓ가량이지만 접으면 한 뼘밖에 안 된다. 접어서 가져갔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꺼내 쓰면 딱이다. 캐리어를 끌고 보조가방을 들기가 부담스럽다면? 알리프의 캐리어 연결 벨트로 캐리어 손잡이에 보조가방을 연결할 수 있다.

    디자인 한류스타 알리프 엄세영 대표


    디자인 한류스타 알리프 엄세영 대표

    프랑스, 네덜란드 등 해외 잡지에 알리프 제품이 소개됐다.

    선글라스를 쓰고 밖에 나갔다가 보관하기 마땅치 않을 때는 티셔츠 목에 거는 경우가 많다. 이때 티셔츠 목이 늘어질까 걱정되고 확실히 고정되지 않아 선글라스가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알리프의 ‘선글라스 걸 수 있는 목걸이’는 아주 유용하다. 동그란 원 모양의 펜던트 안에 선글라스를 걸어놓을 수 있는 것. 목걸이 자체도 디자인이 심플하고 예쁘다.

    이밖에 이어폰 고정 목걸이, 크기별로 명함을 보관하게 고안된 명함지갑, 가방과 재킷을 연결하는 ‘재킷 그리퍼(gripper)’ 등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가장 비싼 알리프 제품은 30유로(약 4만5000원) 정도. 다른 디자인 소품에 비해 비싼 편은 아니다.

    “우리는 스타 옆을 따라다니는 로드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예요. 스타가 빛나도록 옆에서 운전하고 화장해주는 것처럼, 우리 제품을 사는 사람들이 개성 있는 ‘얼리 어댑터(early-adapter)’로 주목받을 수 있게 디자인합니다. 저렴한 가격은 기본이고요.”

    알리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99년.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엄 대표는 2000년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5년간 알리프는 한국에서 차근차근 명성을 쌓아갔다. 브랜드 론칭 1년도 안 돼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의 생활용품 매장에 입점했다. 2003년 국내 점포만 20여 개로 규모가 커졌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고객과 전문가에게 인정받았다. 그러다 돌연 2004년 초 프랑스에 진출했다.

    “브랜드 론칭 때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우리 디자인에 대한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2003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디자인 생활용품에 대한 요구(needs)가 많지 않았어요. 당시 같은 알리프 매장이라도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미아점 매출 차이가 상당했어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모방 상품도 많이 나왔고요. 막연히 전 국민이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때까지 손놓고 기다릴 순 없었으니,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죠.”

    한국 최초로 메종오브제 전시

    알리프 제품이 처음 세계무대에 선보인 것은 2004년 1월 파리 가구박람회에서다. 엄 대표는 “당시 전시회 사진을 보면 너무 부끄럽다”고 말했다. 알리프는 경험도, 자본도 부족했다. 전시 가구를 운반할 방법을 찾지 못해 합판, 벽 마감재 등을 원자재 상태로 비행기에 직접 가지고 탄 후 현장에서 재조립했다. 제한적인 제품만 전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회는 왔다. 세계 최고 권위의 디자인 전시인 프랑스 메종오브제(Maison·Objet) 감독이 알록달록하고 모던한 알리프 제품을 눈여겨본 것. 그는 그 자리에서 “9월 메종오브제에서 전시하라”고 제안했다. 엄 대표는 “메종오브제에 진출하려면 최소 4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고 회상했다. 대한민국 디자인 회사 중 메종오브제에 전시한 것은 알리프가 처음이다.

    전시회마다 반응은 좋았다. 그러나 유럽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판매 물꼬가 트이기까지 2년가량 걸렸다. 그러는 동안 한국 시장에 신경을 쓰지 못해 매출이 바닥을 쳤다. 2003년 20여 개였던 알리프 국내 점포는 2005년 거의 정리됐다. 엄 대표는 “당시 2년은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해외에 진출하려면 전시를 더 자주 해 제품을 선보여야 하고, 고객 반응에 따라 투자도 더욱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인력과 돈이 많이 들어요. 한국에서 돈 나올 구멍은 막혔고, 돈 쓸 구멍만 많아지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투자자도 찾기 어려웠고요. 물론 지금은 다 회복됐지만 경영난도 심각했습니다. ”

    한국의 유통구조 바뀌어야

    2005년 말 드디어 프랑스 배급업자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프랑스 최고급 백화점인 르봉마셰와 프랑스 최고 트렌드 스토어 콜레트(Colette)에 입점했다. 이듬해 독일, 미국, 스페인에 진출하고 2007년 도쿄문구박람회(ISOT)에 전시하며 일본 진출에도 성공했다. 2009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프랑스 푸조 자동차 상설쇼룸 ‘푸조애비뉴’에서 알리프 제품이 판매됐고 프랑스 3대 박물관 등 유럽 각지의 박물관에서 알리프 제품을 판매했다. 현재 프랑스 점포가 300개 이상이다.

    “프랑스는 ‘디자인 1번지’라고 불릴 정도로 디자인에서 ‘프리미어리그’죠. 세계 디자인 시장을 장악하려면 프랑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프랑스 사람들은 새로운 디자인에 관대하고 진부한 디자인에 상당히 비판적이에요. 제품 자체만으로 정면 승부를 낼 수 있죠.”

    디자인 한류스타 알리프 엄세영 대표

    알리프는 2011년 프랑스 최대 디자인 전시회 ‘메종오브제’에 참여했다.

    한국과 다른 프랑스의 유통체계도 신생업체 알리프에는 호재였다. 한국 백화점의 경우 점포가 입점하면 백화점에 수수료를 낸다. 판매는 입점업체가 직접 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상품기획자(MD)가 제품을 모두 구매한 후 판매한다. 제품이 ‘완판’되지 않았을 때 리스크는 MD가 껴안는다.

    “한국은 백화점과 디자이너가 절대적인 갑을(甲乙) 관계예요. 판매가 얼마나 잘되는지가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유럽 매장 MD들은 제품 고르는 눈이 뛰어납니다. 프랑스 트렌드숍 콜레트 MD의 경우 물건 고르는 일만 몇 십 년을 했을 정도죠. 어떤 디자이너보다 제품을 잘 고르다 보니 리스크가 크지 않습니다. 자본은 없어도 실력 있는 디자이너 제품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죠. 한국 유통구조도 유럽을 배워야 디자인 산업이 성장합니다.”

    프랑스, 모방하는 순간 시장에서 아웃

    디자인회사가 숙명적으로 마주하는 문제는 바로 저작권 분쟁이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디자인 모방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알리프 역시 저작권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몇 년 전 한 거대 통신사는 패션잡지 부록으로 자사 로고가 새겨진 마우스패드를 제공했다. 컵에서 물이 쏟아질 것 같은 모양의 이 마우스패드는 사실 알리프 제품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엄 대표가 항의하자 당시 광고대행사는 “외국 제품인 줄 알았다”며 사과했다.

    유명 디자인 문구업체가 알리프의 제품을 모방한 적도 있다. 국내 손꼽히는 모 문구 회사는 알리프의 액세서리 보관 비즈쿠션을 그대로 모방한 제품을 출시했다. 그들 역시 “외국 제품인 줄 알고 베꼈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외국 제품이라면 베껴도 된다는 건가?”라며 반문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엄 대표는 “다른 회사 제품을 카피한 업체는 바이어들과 고객들에게서 철저히 버림받는다. 우연히 비슷한 제품을 만들게 된 경우에는 원작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재생산이나 수출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제가 프랑스 르봉마셰 백화점에 있는데 한 젊은 디자이너가 자기 제품을 가지고 왔어요. 저희 제품과 소재, 스타일이 비슷하더라고요. 가격은 더 저렴하고요. 왜 왔냐고 물어봤더니 ‘MD가 르봉마셰 백화점에 입점하려면 알리프에 가서 보여주고 오라’고 지시한 거예요. 완곡한 거절의 방법이고, 우리 제품의 독자성을 인정해준 거죠. 그 젊은 디자이너는 자존심 상하는 경험 이후로 다시는 제품 모방을 하지 않겠죠.”

    한국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카피 제품이 많다. 법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판매중지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법적 분쟁에 돌입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엄 대표는 “관련 판례가 많아지고 문제가 공론화되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겠지만 그렇게 하기까지는 돈이 많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나서서 질서를 잡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유럽처럼 디자이너 사이에 저작권을 지켜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 디자이너는 실력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겨루기에 전혀 문제없어요. 색, 디자인 감각도 뛰어나고 아이디어도 기발하죠.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수출 유통채널도 많아졌어요. 저작권에 대한 자기 검열이 확실해진다면 해외 진출 성공은 시간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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