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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⑥

옐친이 사랑한 술 러시아가 선택한 보드카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옐친이 사랑한 술 러시아가 선택한 보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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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이 사랑한 술 러시아가 선택한 보드카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정치지도자로서 수많은 음주 기행을 보였다.

1991년 8월18일 보수강경파에 의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고르바초프는 크리미아에 억류되고, 구소련 정국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옐친은 반쿠데타 세력의 선봉에 서서 그 유명한 탱크 위 연설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60시간 만에 쿠데타를 실패로 끝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고르바초프 권력은 급속히 약해지기 시작했고, 옐친은 그해 12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만나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 결성을 선언했다. 옐친의 이 모든 행보는 당시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으로서 쿠데타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던 고르바초프에게는 합법적으로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로 여겨졌다.

러시아 의회 건물 포격

결국 그해 12월24일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가 종전의 소비에트 연방이 가지고 있던 유엔 의석을 차지하자 고르바초프는 그 다음 날 사임한다. 이로써 소비에트 연방은 공식적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지 불과 며칠 뒤 옐친은 과감한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주로 서방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점진적인 개혁보다는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쇼크 요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경제 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러시아는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실업 증가, 그리고 GDP의 급격한 하락 등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경제 정책 실패에 따라 그의 대중적 인기도 하락하자 그의 측근 중 일부는 옐친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동시에 옐친을 정치적으로 가장 괴롭힌 것은 의회와의 갈등이었다. 끊임없이 정부와 정책 헤게모니를 다투던 러시아 의회는 1993년 옐친에 대한 탄핵 투표까지 시도해 600표 이상의 표를 모았으나, 탄핵에 필요한 3분의 2 득표에 72표가 모자라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 양측의 갈등은 점점 고조돼 러시아 내에 마치 두개의 정부가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지속됐고 마침내 옐친은 의회 해산을, 의회 측은 옐친의 대통령 직을 거부하는 최악의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된 가운데 1993년 10월 초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사태가 발생한다. 옐친이 자기를 지지하는 군부대의 탱크를 동원해 러시아 의회 빌딩을 포격하게 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무려 500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무력으로 의회 측을 제압한 옐친은 이후 불안하나마 러시아 정국을 주도한다.

이처럼 옐친은 러시아 개혁의 상징으로 세계 정치사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그의 첫 번째 임기는 경제정책 실패와 정치 갈등으로 불안하게 진행됐다. 게다가 정상적인 임무 수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는 건강상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더욱 수세에 몰렸다. 실제 그는 심장병으로 임기 중 수차 치료를 받았다. 음주와 관련된 그의 기행도 다시 구설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당시 러시아 내에서의 그의 지지도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음에도, 그는 1996년 대통령 재임을 위한 선거전에 임하겠다고 전격 발표한다.

옐친의 재선 상대는 공산당의 주가노프(Gennady Zyuganov·1944~)였다. 그는 서민층의 단단한 지지를 바탕으로 옛 소련의 영광을 다시 살리자는 선거 전략으로 러시아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었다. 선거 초기 여론은 누가 보아도 옐친의 일방적인 열세였다. 그러나 그는 선거 참모들을 대거 교체하고, 러시아 재력가들을 포섭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이끌어냈다. 동시에 매스컴을 장악해 선거 판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데 성공한다. 또 선거 기간 중에는 그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일축시킬 정도로 정열적인 유세 활동을 벌였다. 1996년 6월 선거에서 옐친은 35%의 득표로 1위를 했지만,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를 획득하지는 못해 2위 주가노프와 결선 투표를 하게 된다. 옐친은 3위 득표자로 당시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었던 레베드(Alexander Lebed)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7월 결선투표에서 53.8%의 득표율로 40.3%의 주가노프를 이기고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옐친의 두 번째 임기도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우선 그해 말 옐친은 심장수술(사중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고 수개월간 입원한다. 그리고 선거 중에 그를 도왔던 재력가들과의 정경유착설이 계속 제기됐고, 무엇보다 국가 경제가 위기를 거듭하는 등 악화 일로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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