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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여존남존(女尊男尊) 세상 꿈꿨다 사람은 메밀 같은 존재인 것을…”

  • 이소리│시인·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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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메밀은 모순과 충돌…겉은 세모꼴, 속은 둥근 알갱이
  • ● 아들 셋 일찍 죽자 첩 생활한 어머니의 恨
  • ● “니 아비 죽었을 때 내 눈에 눈물 나면 재 뿌려라”
  • ● 서울대 사범대 간 이유는 등록금이 없었기 때문
  • ● 황윤석 잇는 법관이 젊은 날 꿈…머리카락 팔아 시집 읽어
  • ● 문학상 너무 많아…“‘시적인 시’ 쓰면 시인 아니다”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종이가 귀하던 20세기 허리춤께, 앉은뱅이책상 크기의 상자에 모래를 담아 물을 뿌린 뒤 꼭꼭 다져 그 위에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천자문을 쓰며 글을 배웠다. 종이가 없어 넓적한 나뭇잎을 댓돌에 눌러 반듯하게 펴, 그 나뭇잎을 종이 삼아 글을 익혔다. 그가 1980년대 허리춤부터 지금까지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독자들 가슴에 빛을 툭툭 던지는 유안진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시인 유안진을 ‘수필가 유안진’으로 여기는 독자도 적지 않다.

유안진 시인은 한국 시단을 빛내는 시인이다. 시인 스스로도 수필가가 아니라 “나는 영원한 시인”이라고 못 박는다. 그렇다고 그가 절로 뛰어난 시인이 된 것은 아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시인이 살아온 삶은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여존남존(女尊男尊)’으로 바꾸려는 고된 몸부림이었다. 시인이 젊은 날 여성 판사였던 황윤석을 잇는 여성 법관이 되고 싶었던 것도, 극서정시를 쓰면서 ‘거짓말로 참말하려 하고, 부정함으로써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써 승리하고 싶은’ 까닭도 모두 여기에 있다.

최근 시집 ‘둥근 세모꼴’을 펴내 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유 시인을 8월4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만났다. 시인은 이날 어머니 ‘한(恨)’으로 이어진 가족사와 아들이 아니라 딸로 태어난 죄 아닌 죄 때문에 몸부림쳐야 했던 긴 세월, 그리고 온라인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을 잇는 것은 ‘소통의 문제’라는 세상 이야기, 시와 시단 이야기 등을 잔잔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헹궈냈다. 시인은 스스로 삶과 시인, 이 세상을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 하얀 꽃을 피우는 메밀에 견줬다.

“춘궁기 구황식물인 메밀은 몸뚱이가 붉고, 세모꼴 열매 속에는 둥근 씨앗이 들어 있고 성질은 차서 열을 내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펴낸 시집 제목을 ‘둥근 세모꼴’로 붙인 까닭이다. 시인은 디지털로 불리는 온라인 세상과 아날로그로 불리는 오프라인 세상, 미래파와 전통파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소통의 문제”라며 스스로 ‘디지로그’ ‘낀 세대’라고 했다. 요즈음 우리 문단에서 여러 가지 말이 도는 등단 문제와 문학상에 대해서는 뼈아픈 말을 던졌다. “문학상이 너무 많아 행사에 가느라 시인이 반드시 거쳐야 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며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여러 문예지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시적인 시’를 쓰는 신인을 너무 많이 쏟아내고 있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비트겐슈타인만큼 펄펄 끓는 정오

켄터키 프라이드 인간이 되는 중이다.

메밀베개 베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시원해질까 하고

메밀꽃 메밀꽃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밭이 제 발로 달려온다

까만 세모꼴 속에 시침떼고 들어앉은

동그랗고 하얀 알갱이까지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나물까지 군침 돌더니

이마머리 자욱 핀 메밀꽃밭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가 뛰어온다

삼복 여름-메밀밭.

-‘둥근 세모꼴’ 모두

▼ 시집 제목이 ‘둥근 세모꼴’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연잎이든 꽃잎이든 다 둥근데 이 세상 사람만 세모꼴인 것 같습니다. 메밀은 겉은 세모꼴이지만 속에 든 알갱이는 둥글어요. 메밀은 잡초처럼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줄기는 붉고 꽃은 하얗게 피지요. 메밀은 또한 그 성질이 차서 무더운 여름날 열을 내리게 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춘궁기 구황식물이기도 합니다. 시인과 이 세상 사람들도 메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특히 짧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시인은 ‘둥근 세모꼴’을 가진 메밀 같은 존재라고 봐요. 저는 시인은 물질을 너무 많이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기름지지 않은 메마른 땅 아무 곳에서나 잡초들과 어울려 잘 자라는 메밀처럼 모순과 충돌 사이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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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시인·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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