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여존남존(女尊男尊) 세상 꿈꿨다 사람은 메밀 같은 존재인 것을…”

  • 이소리│시인·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입력2011-08-22 17: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종이가 귀하던 20세기 허리춤께, 앉은뱅이책상 크기의 상자에 모래를 담아 물을 뿌린 뒤 꼭꼭 다져 그 위에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천자문을 쓰며 글을 배웠다. 종이가 없어 넓적한 나뭇잎을 댓돌에 눌러 반듯하게 펴, 그 나뭇잎을 종이 삼아 글을 익혔다. 그가 1980년대 허리춤부터 지금까지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독자들 가슴에 빛을 툭툭 던지는 유안진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시인 유안진을 ‘수필가 유안진’으로 여기는 독자도 적지 않다.

    유안진 시인은 한국 시단을 빛내는 시인이다. 시인 스스로도 수필가가 아니라 “나는 영원한 시인”이라고 못 박는다. 그렇다고 그가 절로 뛰어난 시인이 된 것은 아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시인이 살아온 삶은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여존남존(女尊男尊)’으로 바꾸려는 고된 몸부림이었다. 시인이 젊은 날 여성 판사였던 황윤석을 잇는 여성 법관이 되고 싶었던 것도, 극서정시를 쓰면서 ‘거짓말로 참말하려 하고, 부정함으로써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써 승리하고 싶은’ 까닭도 모두 여기에 있다.

    최근 시집 ‘둥근 세모꼴’을 펴내 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유 시인을 8월4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만났다. 시인은 이날 어머니 ‘한(恨)’으로 이어진 가족사와 아들이 아니라 딸로 태어난 죄 아닌 죄 때문에 몸부림쳐야 했던 긴 세월, 그리고 온라인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을 잇는 것은 ‘소통의 문제’라는 세상 이야기, 시와 시단 이야기 등을 잔잔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헹궈냈다. 시인은 스스로 삶과 시인, 이 세상을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 하얀 꽃을 피우는 메밀에 견줬다.

    “춘궁기 구황식물인 메밀은 몸뚱이가 붉고, 세모꼴 열매 속에는 둥근 씨앗이 들어 있고 성질은 차서 열을 내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펴낸 시집 제목을 ‘둥근 세모꼴’로 붙인 까닭이다. 시인은 디지털로 불리는 온라인 세상과 아날로그로 불리는 오프라인 세상, 미래파와 전통파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소통의 문제”라며 스스로 ‘디지로그’ ‘낀 세대’라고 했다. 요즈음 우리 문단에서 여러 가지 말이 도는 등단 문제와 문학상에 대해서는 뼈아픈 말을 던졌다. “문학상이 너무 많아 행사에 가느라 시인이 반드시 거쳐야 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며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여러 문예지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시적인 시’를 쓰는 신인을 너무 많이 쏟아내고 있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비트겐슈타인만큼 펄펄 끓는 정오

    켄터키 프라이드 인간이 되는 중이다.

    메밀베개 베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시원해질까 하고

    메밀꽃 메밀꽃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밭이 제 발로 달려온다

    까만 세모꼴 속에 시침떼고 들어앉은

    동그랗고 하얀 알갱이까지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나물까지 군침 돌더니

    이마머리 자욱 핀 메밀꽃밭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가 뛰어온다

    삼복 여름-메밀밭.

    -‘둥근 세모꼴’ 모두

    ▼ 시집 제목이 ‘둥근 세모꼴’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연잎이든 꽃잎이든 다 둥근데 이 세상 사람만 세모꼴인 것 같습니다. 메밀은 겉은 세모꼴이지만 속에 든 알갱이는 둥글어요. 메밀은 잡초처럼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줄기는 붉고 꽃은 하얗게 피지요. 메밀은 또한 그 성질이 차서 무더운 여름날 열을 내리게 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춘궁기 구황식물이기도 합니다. 시인과 이 세상 사람들도 메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특히 짧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시인은 ‘둥근 세모꼴’을 가진 메밀 같은 존재라고 봐요. 저는 시인은 물질을 너무 많이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기름지지 않은 메마른 땅 아무 곳에서나 잡초들과 어울려 잘 자라는 메밀처럼 모순과 충돌 사이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내야 합니다.”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 미래파, 전통파 등 특정그룹으로 묶이는 시인들을 부정하는 극서정시집이 ‘둥근 세모꼴’이라고 했는데요. 미래파는 새롭게 솟아오르는 젊은 세대, 전통파는 옛것을 지키려는 기성세대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세대는 그 세대가 지닌 사상과 정서로 이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기성세대가 종이와 산과 바다라면, 성장세대는 PC와 아스팔트 같은 존재입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도 그 세대에 있는 사상을 말하고 글로 쓰지요. 성장세대는 이처럼 기성세대와 정서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환경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장세대가 당대 미학과의 갈등과 모순을 거치지 않으면 역사발전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특히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예술가는 천상천하유아독존자(天上天下唯我獨尊者)입니다. 예술이 어떤 특정그룹에 묶이는 것은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로 예술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2년마다 시집을 내지만 항상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같은 시가 하나도 없어요. 시는 한 편 한 편이 예술인데 똑같거나 엇비슷한 내용으로 읊으면 안 되겠지요. 사람이 변해야 이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시집에 실린 시 ‘시도 다수결이 아니다’도 그에 견주어 쓴 시랍니다.”

    극서정시는 서정의 압축

    ▼ ‘극서정시’는 어떤 시인가요?

    “서정의 압축, 즉 양극과 음극은 서로 통하므로 같다고 봐야지요. 시는 압축의 미학인데 요즈음 시가 너무 길어요. 요즘 사람들은 전화를 걸기보다 짤막한 문자를 많이 주고받잖아요. 이러한 시대에 긴 시는 반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제 시를 늘려 쓰면 소설 한 편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말은 적고 울림이 큰 시를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 시가 극서정시라고 생각해요. ‘옛날애인’ ‘서울살이’ 같은 시가 그런 시라고 해야 할까요?”

    그가 말한 ‘옛날애인’과 ‘서울살이’를 잠시 감상해보자.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

    -‘옛날애인’ 모두

    서울 천리를 와서 가랑잎 하나 줍다

    -‘서울살이’ 모두

    ▼ ‘둥근 세모꼴’에서는 선생님 가족사가 언뜻언뜻 내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 삶을 한 올 한 올 시로 기워 엮은 시집처럼 여겨집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운명 조롱당하다’ ‘등산하는 배’ ‘퇴계선생 초상화’ 등을 꼼꼼히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머니는 아들 셋, 딸 셋을 낳았는데, 아들 셋은 불행하게도 백일을 넘기지 못하거나 한 살을 넘기지 못하고 먼저 떠나버렸습니다. 딸만 셋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아주 봉건적인 생각에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게 하셨지요. 그 때문에 조강지처였던 어머니는 졸지에 첩 비슷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외할아버지까지 ‘딸이 남의 집안에 시집을 가서 대를 끊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새장가를 가는 데 어쩔 수 없이 동의하셨지요. 그때부터 어머니와 저를 포함한 딸 셋이 겪은 모진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어요. 새장가를 든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그 할아버지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신줏단지 모시듯 했어요. 할아버지께서도 말년을 새어머니보다 어머니에게 맡기려 하셨지요. 어머니께서는 그 뒤 신앙(기독교)에 의지하면서 그 한을 달랬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께서 ‘니 아비 죽었을 때 내 눈에 눈물이 나면 재를 뿌려버려라’ ‘세 딸내미를 남의 집 열 아들 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말씀하겠어요. 제가 극서정시를 쓰면서 ‘거짓말로 참말하려 하고, 부정함으로써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써 승리하고 싶고, 넘어짐으로써 일어서려 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강인해지고 싶고, 어리석음이 지혜라고 믿고 싶고, 게으름이 중요한 일 하는 거라고 믿고 싶고, 꿈꾸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까닭도 제 삶을 통해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 시인의 이 말은 그의 시 ‘계란을 생각하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는 그런 거겠지

    -‘계란을 생각하며’ 모두

    ▼ 시집에서는 ‘나는 야생시인’이라며 이번 시집은 ‘거짓말로 참말하기’란 시집 심화 혹은 진일보라 하셨는데요.

    “저는 문학창작과나 국문과를 나온 ‘만들어진 시인’이 아니라 성장기 환경에서 시가 좋아 시를 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인이 되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솔방울에 든 씨앗이 자연스럽게 싹을 틔워 소나무가 되고, 들이나 산속 여기저기 피어난 들꽃이 향기가 훨씬 더 진한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매화를 보세요. 그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자연스레 꽃을 피워 짙은 향기를 뿜지 않습니까. ‘야생시인’이란 그런 뜻이 담겨 있어요. ‘거짓말로 참말하기’란 갈 ‘지(之)’ 자로 살면서 몸으로 실천한 비트겐슈타인(1889~1951·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처럼 일종의 제 시작(詩作) 기법인 반어법이지요. 사실 ‘참말로 참말하는’ 것은 불경과 성경, 논어 등에 다 나와 있잖아요. 장 콕토(1889~1963·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도 ‘시인은 거짓말로 참말하는 사람’이라 했지요. 저 또한 거짓말로 참말하는 예술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200도 이상 열려 있어야”

    ‘둥근 세모꼴’ 펴낸  유안진의 인생토로
    ▼ 21세기 들어 온라인(디지털)과 오프라인(아날로그) 세상이 함께 날개를 퍼덕이고 있습니다.

    “저는 ‘디지로그’ 즉 ‘낀 세대’라고 여깁니다. 어떤 때는 아날로그이다가 또 어떤 때는 디지털로 바뀌는 그런 어정쩡한 세대지요. 갈등하지 않고 사는 세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균과 전우치, 서경덕을 보세요. 이런 분들은 모두 좌우 경직된 그 어떤 이념을 가지지 않은, 사통팔달 열려 있었던 분이지요. 조선 중기 유학자 서경덕(1489~1546)은 특히 기생이었던 황진이까지 받아주잖아요? 예술가는 360도는 아니더라도 200도 이상은 열려 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열려 있어야 세대 미학과 충돌을 일으켜 새로운 미학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 젊은 시인들의 시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시인들만 아는 시, 혹은 시인들도 잘 모르는 시, 독자를 무시하는 시라고 꼬집는 이도 꽤 많습니다.

    “소통의 문제 아니겠어요? 저는 나름대로 정서를 가지고, 자기들 세계를 가지고 당대 미학에 도전하는 젊은 시인들을 존중해요. 문제는 ‘소통의 기법’이지요. 젊은 시인들이 시가 독자에게 잘 소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웹진(온라인)을 통한 등단 제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웹진을 통해 등단하는 시인들은 온라인 세상에 갇혀 있는 탓인지, 문학작품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시는 혼자만 즐기는 작품이 아니라 다수와 만나야 하는 예술작품입니다. 예술작품으로서 ‘시다운 시’가 나와야 하는데, ‘시적인 시’를 예술성을 지닌 시라고 여기는 것은 문제입니다. 정식으로 훈련과정을 거쳐 등단해야 피카소처럼 그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겠어요?”

    ▼ 요즘 우리 문단에 문학상과 시인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죠. 문학상과 시인이 많은 것은 좋지만 그 기준이 문제예요. 남발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이러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이 시인이 되고 문학상을 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물론 잡지사로서는 생존의 문제겠지만. 저는 요즘 문학상 행사에 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시인이 반드시 거쳐야 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없어 제 스스로 안타깝습니다. 박목월 선생님께서는 ‘시 몇 편 좋다고 시인 시켜줄 수 없다’고 하셨어요. 박 선생님께서는 이 사람이 평생 시를 쓸 것인지, 돈을 많이 벌어도 시를 버리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하신 다음 등단을 결정하셨던 것 같아요. 시인은 그만큼 오랜 자기 갈등과 고뇌를 거쳐야 해요. 요즘은 시 5, 6편으로 쉽게 등단하는 것 같아요. 제가 등단할 때에는 3회 추천을 거쳐야 등단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0~15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1회 등단제도보다 예전 3회 추천제도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유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에 박목월 시인으로부터 초회 추천을 받은 뒤, 1966년 2회, 1967년에 3회 추천을 마쳤다. 등단하기까지 3년이 걸린 셈이다. 박목월 시인은 당시 유 시인에게 “숙맥이니 시는 제대로 쓰겠다”고 말했다.

    ▼ 유 시인의 고향인 안동은 이육사 시인과 ‘월식’ ‘하급반 교과서’를 펴낸 김명수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죠. 왜 시인이 되려고 하셨나요?

    “초등학교까지 고향 안동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에게서 ‘동몽선습’을 공부했지요. 그 뒤 대전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중고교를 다녔어요. 그때 헌책방에서 ‘소월시집’을 사서 읽었는데, 그 시들이 너무 좋아 마치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 외워버렸어요. 그게 저도 모르게 시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쓴 시는 영화 ‘해저 2만 리’를 본 뒤 쓴 ‘바다’라는 시였어요. 그때 대전에 바다가 어디 있었겠어요? 영화를 보고 그 시를 썼는데 그게 교지에 실렸어요. 그때부터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헌책방에 있는 책을 모조리 사서 읽었어요. 그때는 머리카락을 샀거든요. 지금도 제 머리카락이 짧은 것은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댔고, 제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헌책을 사던 습관이 남았기 때문이죠.”

    ▼ 결정적인 계기가 소월시집이었군요.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고요. 제 질문에 얼굴을 붉힌 그 선생님도 잊히지 않아요. 김소월 시 ‘산유화’ 가운데 ‘갈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저는 그 가운데 왜 하필이면 ‘봄갈’이 아니라 ‘갈봄’이냐 의아했어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질문을 하니까 한참 동안 생각하시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소월이 그렇게 쓰려고 썼지’라고 얼버무리시는 거예요. 기가 찼어요. 그때부터 저는 ‘내가 시인이 되나 안 되나 두고 보자’고 마음을 다졌어요. 이후 혼자 시를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김소월의 ‘산’이란 시에 보면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 시에서도 ‘오리나무’가 딱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오리나무는 워낙 작은 나무인데, 왜 산새가 숲에서 울지 않고 하필 오리나무에서 우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죠.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이 시에서 말하는 ‘오리나무’는 제가 알고 있는 ‘오리나무’가 아니라 거리를 나타내기 위한 ‘오 리(里) 떨어진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는 그렇게 독학으로 시 공부를 했어요.”

    “황윤석 같은 법관이 되고 싶었다”

    ▼ 김용택 시인은 ‘시를 쓰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시와 정치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한 번도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 판사였던 황윤석처럼 법관이 되고 싶어 헌법 제103조까지 달달 외웠습니다. 제 어머니가 아들이 없다는 죄로 피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저는 황윤석 판사를 바라보며 ‘여자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하며 마음을 다졌어요. 제가 황윤석 같은 법관이 되어 어머니 한도 풀어드리고 아들만 선호하시는 할아버지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그렇게 다잡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려고 하니 당장 등록금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서울대 사범대에 들어간 까닭도 그때 서울대 사범대는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사범대를 졸업하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까지 될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웬만한 남자 뺨치는 직업 아니겠어요?

    지금은 시인이 좋습니다. 저는 여성 법관이나 초등학교 교장보다 시인이 된 것이 너무 좋아요.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인기가 많다보니 요즘에도 저를 시인이 아니라 수필가로 알고 있는 독자가 꽤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시인입니다. 제가 시인이기 때문에 수필집도 쓸 수 있었다고 여겨요. 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나는 시인입니다’.”

    ▼ 가장 존경하는 시인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시는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시인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이육사(1904~1944), 정지용(1902~1950), 김소월(1902~ 1934), 박목월(1916~1978), 서정주(1915~2000) 시인이고 이분들이 쓴 시들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우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위대한 시인들이죠.”

    ▼ 유 시인께서는 민속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와 ‘다시 우는 새’ ‘땡비 4권’을 펴냈습니다. 혹 색다른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쓰겠습니다. 사실 ‘지란지교를 꿈꾸며’도 문예지에서 갑자기 원고청탁을 해 하룻밤 만에 썼어요. 민속장편소설은 임하댐 때문에 수몰당할 위기에 놓인 제 고향 이야기지요. 임하댐을 건설하는 바람에 조상 묘소는 물론 그 마을 역사와 풍경이 다 물에 잠겨 사라졌고, 피붙이, 살붙이들 또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역사와 그 흔적을 민속소설로 거듭나게 하고 싶었죠. 댐은 더 이상 건설하면 안 됩니다. 안개와 냉해 때문에 농작물 피해는 물론 대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죠.”

    ▶▷ 시인 유안진은 1941년 10월1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임동초교, 대전여중, 대전호수돈여고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교육대학원을 다녔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시 ‘달’과 ‘별’ ‘위로’ 등으로 박목월 시인의 3회 추천을 받아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달하’ ‘절망시편’ ‘물로 바람으로’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등 신작시집 14권과 ‘세한도 가는 길’ ‘빈 가슴을 채울 한마디 말’ 등 시선집 13권이 있다. 정지용문학상과 한국펜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월탄문학상 등을 받았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