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세대는 그 세대가 지닌 사상과 정서로 이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기성세대가 종이와 산과 바다라면, 성장세대는 PC와 아스팔트 같은 존재입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도 그 세대에 있는 사상을 말하고 글로 쓰지요. 성장세대는 이처럼 기성세대와 정서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환경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장세대가 당대 미학과의 갈등과 모순을 거치지 않으면 역사발전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특히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예술가는 천상천하유아독존자(天上天下唯我獨尊者)입니다. 예술이 어떤 특정그룹에 묶이는 것은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로 예술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2년마다 시집을 내지만 항상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같은 시가 하나도 없어요. 시는 한 편 한 편이 예술인데 똑같거나 엇비슷한 내용으로 읊으면 안 되겠지요. 사람이 변해야 이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시집에 실린 시 ‘시도 다수결이 아니다’도 그에 견주어 쓴 시랍니다.”
극서정시는 서정의 압축
▼ ‘극서정시’는 어떤 시인가요?
“서정의 압축, 즉 양극과 음극은 서로 통하므로 같다고 봐야지요. 시는 압축의 미학인데 요즈음 시가 너무 길어요. 요즘 사람들은 전화를 걸기보다 짤막한 문자를 많이 주고받잖아요. 이러한 시대에 긴 시는 반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제 시를 늘려 쓰면 소설 한 편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말은 적고 울림이 큰 시를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 시가 극서정시라고 생각해요. ‘옛날애인’ ‘서울살이’ 같은 시가 그런 시라고 해야 할까요?”
그가 말한 ‘옛날애인’과 ‘서울살이’를 잠시 감상해보자.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
-‘옛날애인’ 모두
서울 천리를 와서 가랑잎 하나 줍다
-‘서울살이’ 모두
▼ ‘둥근 세모꼴’에서는 선생님 가족사가 언뜻언뜻 내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 삶을 한 올 한 올 시로 기워 엮은 시집처럼 여겨집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운명 조롱당하다’ ‘등산하는 배’ ‘퇴계선생 초상화’ 등을 꼼꼼히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머니는 아들 셋, 딸 셋을 낳았는데, 아들 셋은 불행하게도 백일을 넘기지 못하거나 한 살을 넘기지 못하고 먼저 떠나버렸습니다. 딸만 셋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아주 봉건적인 생각에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게 하셨지요. 그 때문에 조강지처였던 어머니는 졸지에 첩 비슷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외할아버지까지 ‘딸이 남의 집안에 시집을 가서 대를 끊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새장가를 가는 데 어쩔 수 없이 동의하셨지요. 그때부터 어머니와 저를 포함한 딸 셋이 겪은 모진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어요. 새장가를 든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그 할아버지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신줏단지 모시듯 했어요. 할아버지께서도 말년을 새어머니보다 어머니에게 맡기려 하셨지요. 어머니께서는 그 뒤 신앙(기독교)에 의지하면서 그 한을 달랬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께서 ‘니 아비 죽었을 때 내 눈에 눈물이 나면 재를 뿌려버려라’ ‘세 딸내미를 남의 집 열 아들 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말씀하겠어요. 제가 극서정시를 쓰면서 ‘거짓말로 참말하려 하고, 부정함으로써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써 승리하고 싶고, 넘어짐으로써 일어서려 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강인해지고 싶고, 어리석음이 지혜라고 믿고 싶고, 게으름이 중요한 일 하는 거라고 믿고 싶고, 꿈꾸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까닭도 제 삶을 통해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 시인의 이 말은 그의 시 ‘계란을 생각하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