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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⑥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No Fear’정신으로 꼴찌 팀 패배주의를 한 방에 날린 지도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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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단은 완전히 새로운, 일종의 모험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신동빈 구단주가 연락한 사람이 바로 일본 야구단 지바 롯데 마린스의 바비 발렌타인 전 감독이었다. 메이저리그 명감독 출신인 발렌타인은 2004년 롯데 마린스 사령탑이 됐다. 부임 1년 만인 2005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일궈내며 파란을 일으켰다. 발렌타인 감독의 능력을 확인한 신 구단주는 그에게 외국인 감독의 추천을 부탁했다. 이때 그가 추천한 사람이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로이스터 감독이었다. 로이스터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동양의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검은 부산갈매기’ 한국 야구에 새 바람 일으키다

로이스터 감독은 2008년 시즌을 준비하는 스토브리그가 한창인 2007년 말 한국 땅을 밟았다. 언급한 대로 그는 부임하자마자 ‘No Fear’라는 팀 슬로건을 직접 지어 구단에 제시했다. 그는 겨울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씩 하던 훈련을 필수 훈련 3∼4시간을 제외한 자율훈련으로 대체했다. 선수들에게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줬다. 그라운드 와인 파티 등 선수들과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졌고, 꾸준히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로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을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롯데에는 홈런 타자 이대호와 에이스 투수 손민한만 존재한다는 일각의 편견을 깨고 무명 선수들에게도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덕아웃과 라커룸이 시끌벅적해졌고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공격에서는 정수근, 김주찬, 박기혁이 마음껏 뛰기 시작하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간판 거포 이대호와 멕시코에서 영입한 용병 타자 카림 가르시아의 홈런포도 불을 뿜었다. 에이스 손민한이 선발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는 가운데 젊은 투수인 장원준과 송승준이 한 단계 성장한 기량을 선보였다. 롯데는 초반부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위기도 있었다. 7월 중순 주장 정수근이 음주 폭행 사건으로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는 물의를 일으켰다. 롯데는 정수근 사건 후 5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내 새로 주장에 선임된 조성환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전열을 정비했다. 특히 8월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가진 2주간의 휴식기를 거치면서 롯데는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롯데는 올림픽 브레이크 직후 팀 창단 최다 연승인 11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결국 2008년 시즌을 3위로 마감했다.



구도(球都) 부산의 야구팬들은 이를 화끈하게 성원했다. 홈 개막전부터 만원사례를 기록한 부산 관중은 2008년 시즌에 열린 63번의 홈경기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1경기에 매진을 연출했다. 2008년 시즌 롯데의 총 관중은 최종 137만9735명으로 롯데 구단 사상 최다였다. 롯데의 선전과 부산 팬들의 열기 덕에 한국 프로야구도 1995년에 이어 무려 13년 만에 관중 500만명 시대를 다시 열 수 있었다.

부산 팬들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바로 로이스터 감독의 열창이다. 시즌 초부터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가 4강에 진출하면 부산 관중이 가장 좋아하는 응원가인 ‘부산갈매기’를 구장에서 부르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는 2008년 마지막 홈 경기였던 9월28일 기아와의 경기에서 3만명의 관중 앞에서 허남식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갈매기’를 불렀다. 허 시장은 노래에 앞서 로이스터 감독에게 부산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로이스터 감독은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국가대표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부산의 명예시민이 된 외국인 감독이라는 영예도 누렸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 관중은 세계 최고의 팬”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8년 만에 가을 잔치를 맞은 롯데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워낙 오랜만에 큰 경기를 치러본 터라 롯데 선수들은 경험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즌 성적은 롯데보다 한 단계 낮지만 30년 내내 한국 야구의 강팀으로 군림해온 노련한 삼성 라이온즈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내리 3패를 당하고 말았다. 포스트 시즌에서 거둔 부진한 성적은 두고두고 로이스터 감독의 발목을 잡는다.

갖은 악재 겪으며 강팀 기틀 다진 2009년

롯데의 2009년은 파란만장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출발해 천국에서 마무리한 한 해였다. 만년 하위에 머물다 무려 8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터라 시즌 전 롯데 팬들의 기대는 어마어마했다. 시범 경기 성적도 좋았다. 롯데는 시범 경기에서 11승 1패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지난해 선전이 돌풍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정규 시즌에 돌입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운드와 타선의 동반 침체로 바닥을 헤맸다. 에이스 손민한이 어깨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나머지 선발들도 컨디션 난조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와중에 주장 조성환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주장이자 롯데 선수들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조성환은 4월23일 SK와의 경기에서 SK 투수 채병용의 볼에 얼굴을 강타당해 광대뼈가 4곳이나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롯데 선수들은 크게 동요했다. 6월5일 롯데의 성적은 20승33패로 5할 승률에서 무려 마이너스 13경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독보적인 8위여서 도무지 치고 올라갈 기미가 안 보였다. 6월에 마이너스 13이라는 성적을 연출한 팀이 4강에 진출한 사례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2008년 당시 ‘성적은 좋지만 지나치게 메이저리그 식 야구만 추구해 한국 야구의 실정을 잘 모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로이스터 감독은 전술 변화를 시도해 난관을 돌파했다. 어지간하면 주전 선수만 주로 기용했던 2008년과 달리 그는 적재적소에 후보 선수들을 투입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가 기용한 후보 선수인 박정준, 김민성, 장성우 등은 팀이 어려운 시기에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200%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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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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