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의 변화는 더 눈부셨다. 2008년 롯데로 온 홍성흔은 이적 첫해 3할7푼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며 두산 김현수에 이어 타격 2위에 올랐다. 그러나 중심타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홈런과 타점은 생산해내지 못했다. 타율은 높지만 한 방이 부족한, 즉 카림 가르시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선 선수였다.
타격 2위를 기록한 3할 타자에게 타격 자세를 바꾸라고 주문할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괜히 타격 폼에 손을 댔다 잘 맞는 타자가 부진에 빠지면 선수도 구단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를 과감히 시도했다. 주위에서는 우려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홍성흔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감독의 지원에 힘입은 홍성흔은 엄청난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파워를 키우고, 타구에 보다 더 강한 힘을 싣는 소위 갈매기 타법을 완성했다. 찬스에서 주저 없이 방망이를 힘껏 돌리며 ‘노 피어 스윙’에 주력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홍성흔은 2010년 타율 0.350(2위), 26홈런(공동4위), 116타점(2위)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했다. 홈런과 타점은 프로 데뷔 후 최다였고 전체 성적 또한 누가 봐도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이대호의 선전은 롯데의 불방망이에 정점을 찍었다. 이대호는 2010 시즌에 사상 초유의 타격 7관왕 즉, 타율(3할6푼4리), 홈런(44홈런), 타점(133점), 최다안타(174개), 득점(99점), 장타율(6할6푼7리), 출루율(4할4푼4리)에서 모조리 1위를 석권하며 토종 우타 거포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타격 7관왕은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특히 그는 9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전세계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대호는 8월4일 두산전부터 8월14일 기아전까지 9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리면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대호와 홍성흔뿐 아니라 나머지 롯데 선수들도 로이스터의 ‘노 피어 스윙’을 장착하며 장타력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포수 강민호도 생애 첫 20홈런 고지를 넘어섰고, 손아섭과 전준우도 두 자릿수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로 성장했다. 롯데는 팀 타율, 팀 홈런 등 타격 주요 부문에서 8개 구단 중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롯데는 포스트 시즌에서는 또 고비를 넘지 못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가 열리기 전 전문가들은 막강 타선을 자랑하며 페넌트레이스 후반기 승률 1위를 기록한 롯데의 우세를 점쳤다. 뚜껑이 열리자 전문가들의 예상이 들어맞는 듯했다. 롯데가 1,2차전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두산은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두산은 3차전부터 불펜과 타선의 응집력을 앞세워 내리 세 경기를 따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특히 흐름이 넘어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속출한 롯데의 수비 실책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롯데 구단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구단 측은 이제는 4강이 아니라 우승을 노릴 때이며 감독의 단기전 운용 능력에 실망했다는 뜻을 밝혔다.
로이스터 감독과의 이별을 가장 아쉬워한 이는 롯데 팬이었다. ‘꼴데(꼴찌+롯데)’라는 오명을 썼던 팀을 강팀으로 바꿔놓은 외국인 감독에 대한 롯데 팬들의 사랑과 지지는 대단했다. 롯데 팬들은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010년 시즌 후반에 로이스터 감독의 재계약을 위해 직접 나섰다. 부산의 한 신문에 로이스터 감독의 연임을 지지하는 광고를 내는가 하면, 관중석에는 ‘로이스터 감독님의 연임을 지지합니다’라는 영어 문구가 쓰인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했다. 당시 로이스터 감독은 이 일을 추진한 팬 카페에 “광고를 보고 눈물이 났다. 너무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로이스터가 주는 교훈
1) 리더는 조직원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야구계의 은어 중 ‘노예’라는 말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려나와 던지는 불펜 투수(중간 계투 요원)들을 일컫는 용어다. 로이스터 감독이 높게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결코 투수를 혹사시키지 않는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로이스터는 선수를 감독이라는 자신의 커리어를 연장하기 위한 장기판의 ‘말’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선수들은 야구를 같이 하는 동반자였다. 몇몇 감독은 자신의 재계약 시즌이 다가오면 성적 조급증 때문에 선수 보호를 생각하기보다 무조건 팀 승리를 위한 운영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단 한 번도 그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부상을 안고 팀을 위해 뛰는 것을 ‘투혼’이라고 칭송하며 박수를 치는 일부 한국 감독과 달리 그는 유일하게 ‘아픈 곳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내게 말하라’고 강조했다.
다른 팀에서는 뛰어난 구위를 가진 불펜 투수가 3~4일 연속 등판하는 사례가 많다. 불펜 투수가 웬만한 선발 투수보다 많은 100이닝 이상을 소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불펜 투수들에게도 선발 투수처럼 등판일과 휴식일을 구분해줬다. 휴식일을 맞은 불펜 투수는 아무리 1점 차이의 긴박한 승부라 해도 어지간하면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다. 국내 감독은 대부분 승부처가 되면 아낌없이 불펜 투수들을 투입해 경기를 이기려 한다. 때로는 선발 투수조차 불펜 투수로 썼다. 물론 이 작전이 잘 맞아떨어지면 해당 팀의 성적은 많이 올라간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당장의 1승을 위해 향후 투수 운영에 무리가 될 만한 선수 운용은 되도록 피했다. 일부 성미가 급한 팬들은 너무 여유로운 운용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3년 연속 4강 진출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용하는 일이 결국 좋은 성적을 낳는다는 점을 입증했다. 롯데 선수들이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하는 야구가 즐겁다”라고 이야기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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