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까지 영업을 계속하던 이 여관이 폐업한 뒤 건물을 인수한 이는 최성우(51) 메타로그 아트서비스 대표다. 그는 수십 년 쌓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이곳을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새하얀 간판에 파란 고딕체로 쓰인 ‘보안여관’ 옥호(屋號)는 여전하지만, 이제 여관은 뜨내기손님 대신 ‘문화 투숙객’을 받는다.
“서울은 뭐든 부수고 새로 짓는 데 익숙한 도시죠. 하지만 이 공간을 그렇게 버릴 수는 없었어요. 건물을 산 뒤 보수하기 위해 천장을 뜯는데 80년 묵은 먼지가 풀썩 떨어지더군요. 그리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화 17년(1942)에 2층 천장을 보수했음을 기록한 상량판이 보였어요.”
알아갈수록 보안여관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서정주와 이중섭이 예술적인 교류를 나눴고, 시인과 작가가 장기투숙하며 신춘문예를 준비했다. 가난한 나그네와 배고픈 문인 예술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곳. 벽지만큼 켜켜이 쌓인 옛이야기가 오늘의 예술과 만난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조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보안여관은 ‘여관’ 간판과 외양을 그대로 간직한, 독특한 갤러리가 됐다.
‘아트플레이스’나 ‘컬처센터’ 같은 간판은 없다. 유모차 밀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나, 북악산에서 막 내려온 등산객도 부담 없이 들어온다. “이런 데 여관이 있네?” 하며 유리문 너머를 기웃거리다 한 걸음을 들인 이가 세월과 미술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곳. 오래전 문인들이 그러했듯, 화가들이 며칠씩 머물며 예술을 창조하고 자신의 흔적을 남긴 채 떠나가는 곳. 지금 보안여관은 그런 ‘문화숙박업소’로 자리매김했다.

최성우 대표의 사무실 벽에는 프랑스어로 ‘건물은 자란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보안여관을 보며 이 말의 의미를 실감했다. 건물은 지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이 그 안에서 숨 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흔적을 남김으로써 태어나고 자라며 변해가는 것이다. 그 실례가 서울 통의동에 있다.
● 위치 | 서울 종로구 통의동 2-10
● 운영시간 | 화~금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토·일·공휴일 오전 11시~오후 8시(매주 월요일 휴관)
● 문의 | 02-720-8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