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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성폭력 피해자 최소 30명 드러나지 않은 사건 여전히 많다”

‘도가니’ 피해자 상담·치료하는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성폭력 피해자 최소 30명 드러나지 않은 사건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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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겪은 일은 일일이 묘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몇 명이 성폭행당한 수준의 일이 아니에요. 그 학교에서는 교사가 체벌 수단으로 아이들 입에 혀를 넣었다고 합니다. 이 진술을 한 명이 하는 게 아닙니다. 가해자도 한 명이 아닙니다. 교사가 아이들 다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구강성교를 시켰다고 증언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걸 목격했다는 증언이 또 있습니다. 세 명을 불러다놓고 돌아가며 하도록 시켰답니다. 온 몸이 묶인 채로 성폭행을 당한 뒤 그대로 13시간 동안 방치돼 있던 피해자도 있습니다. 이들을 검사한 심리평가사는 오랜 임상 경험을 거친 잘 훈련된 분인데도 얘기를 듣다 말고 울었습니다. 남자 레지던트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못할 말을 섞어서 얘기하면, 기숙학교 하나 차려놓고 말 못하는 아이들 모아다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성폭행하고 성추행한 겁니다. ‘도가니’가 과장됐다는 얘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가해자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까.

“한두 명이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광범위하게 벌어진 일입니다.”

소통의 단절

신 교수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해당 지역에서 아동 대상 성폭력이 급증해 사회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를 잃고 보호받지 못하게 된 아이들이 잇따라 피해를 당해 나중에는 자경단이 꾸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저는 인화학교가 당시의 뉴올리언스 같은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상담받으러 온 8명 중 부모가 다 있는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는 1명뿐입니다. 피해자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보호자도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피해를 호소할 수 없는 아이를 보고 인간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건 이 사건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 중 하나라는 겁니다.”

기자는 ‘나영이 사건’ 때도 신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아이가 겪은 상처가 마음에 와 닿아 참을 수 없다”며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 또 수사기관이 다시는 피해 아동을 두 번 세 번씩 불러 진술하도록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목소리가 계속 잦아들었다. 눈물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농아인에 대해 너무 몰랐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게 그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 건지 전혀 몰랐던 게 미안하다”고 했다.

▼ 농아인을 상담한 뒤 새로 알게 된 게 뭡니까.

“그들에게는 일반인과 소통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저는 필담을 통해 직접 대화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됩니다. 단어는 알아보는데 문장은 해석을 못해요. ‘우울하니?’라고 쓰면 알지만, ‘어째서 우울하니?’ 하면 못 알아듣는 식입니다. 진단을 하고 평가를 내리려면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큰 벽에 가로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수화로는 다 하는 얘기를 일반 언어로는 전혀 표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글씨를 읽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뜻을 모릅니다. 언뜻 보면 이해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그들에게 모국어는 수화이고, 우리말은 외국어를 넘어 거의 외계어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겠지요.”

소설 ‘도가니’에서 청각장애 학생을 성폭행한 교장이 유일하게 구사하는 수화는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는다”였다. 실제 인화학교 상황이 그랬다. 이 학교에는 사건 당시 수화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직권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특수학교 상황도 다르지 않다. 당시 전국의 청각장애 특수학교 교사 548명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이는 21명으로 3.8%에 불과했다. 수화를 할 줄 모르는 교사와 일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 사이에서 어떻게 교육이 이뤄졌을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신 교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실상 방치돼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보니 수화가 아닐 경우 일상적인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 가해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없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만 골라 성폭행한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니에요. 피해자를 대상으로 지능 검사를 한 결과, 3명을 제외하면 모두 정상 범위였습니다. 언어지능 부분에 핸디캡이 있는 걸 감안하면 비언어적인 지능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높은 셈이지요. 성폭력 피해를 가장 많이 당한, 가장 지능이 낮은 아이의 인지능력도 7~8세 수준으로 검사됐습니다.”

신 교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만 받았어도 좀 더 일찍 사건을 외부에 알렸을 것”이라고 했다가 곧 “아니, 아이들이 그럴 수 있었다면 교사가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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