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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교정시설 내 음악 프로그램 스트레스 감소 효과 입증

한국형 ‘엘 시스테마’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관악대의 희망 찾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교정시설 내 음악 프로그램 스트레스 감소 효과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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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트롬본 불고부터 답답하던 마음 뻥 뚫렸어요”
  • ● 스트레스 지수 하락, 스트레스 저항도 상승
  • ● 정심학교에서 음악 배워 국립대 음대 진학한 ‘슈퍼스타K’
  • ● 재소자 예술적 재능 발굴·육성하는 교정 선진국
교정시설 내 음악 프로그램 스트레스 감소 효과 입증

정심학교 관악대가 박인수 안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로 합주를 연습하고 있다.

“원래 꿈이 가수였어요. 여기 들어온 뒤로 자꾸 살이 찌고 피부가 나빠져 고민이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는 북을 쳐요. 크게 칠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나가면 드럼을 배우려고요. 성악이랑, 피아노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김하나(19·가명)양은 발랄했다. 말이 빨랐고, 잘 웃었다. 갸름한 얼굴과 동그란 눈이 예쁜 그는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이하 정심학교) 관악대에서 큰북을 친다. 정심학교는 비행 청소년 교정기관. 예전에는 안양소년원이라고 불렸다. 김양과 마주 앉은 교실 풍경은 ‘학교’라는 이름에 제법 잘 어울렸다. 책상과 칠판이 있고,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창틀 위에 진흙으로 구운 화분이 네 개, 벽 쪽에는 또 다른 화분 일곱 개가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블라인드에는 야자수가 우거진 남국의 바닷가 풍경이 그려져 있다. 복도에서는 체육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소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수다를 떤다. 일반 고등학교 못지않게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 공간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복도 창문의 쇠창살에서 알 수 있듯,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교정시설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설치된 CCTV가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규칙을 어기면 벌점을 부과한다. 교실, 실습실, 운동장, 숙소 등 학교 내 모든 공간에는 지문인식시스템을 장착한 출입문이 달려 있다. 시스템에 지문을 등록한 인솔 직원과 동행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조차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다.

김양은 1년여 전 보호처분 10호를 받고 이리로 왔다. 10호는 최장 2년간 소년원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으로, 보호처분 중 가장 무겁다. 폭력, 강·절도, 성매매 등을 저지른 청소년이 주로 이 처분을 받는다. 구체적인 비행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대신 “이 안에서 생활하면 불편한 점이 많겠다”고 말을 건넸다. “밖에 있을 때는 밤낮없이 돌아다녔다. 꼼짝 못하고 아침 6시30분 점호 때부터 잠들 때까지 내내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게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통 움직이지 않아 체중이 24㎏이나 늘었다”는 푸념도 이어졌다. “큰북 연습과 연주가 요즘 생활의 낙”이란다.

과학으로 입증된 음악의 힘



정심학교 관악대 트롬본 주자 유지영(18·가명)양도 “트롬본을 불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고 했다. 역시 10호 보호처분을 받은 그는 바깥 세상에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담장 밖 첫 계획은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 이후 마케팅 슈퍼바이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가끔씩은 트롬본 생각이 날 것 같아요. 당장 악기를 살 수 없으니 한동안은 못 불겠지만, 여력이 되면 취미로라도 계속 할 거예요.”

유양의 말이다.

정심학교는 법무부 산하 전국 10개 소년원학교 중 유일하게 관악대를 운영 중이다. 재소자 150명 가운데 40명 안팎이 연주자로 활동한다. 수시로 모여 연습하고, 교내외 무대에서 공연도 하는 준(準) 프로페셔널이다. 박인수 안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등 지역 음악인들이 무상으로 악기를 가르쳐준다. 김태섭 정심학교 교감은 “단원 대부분이 가정환경이 어렵고, 학교도 제대로 다닌 적이 없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악기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신기하게 여기고 재밌어 한다. 합동 연주를 하며 마음의 상처를 털어내고, 자신감을 얻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음악의 힘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동안 ‘음악의 힘’은 이렇게 당사자의 자기 고백이나 행동 변화를 통해 확인돼왔다. 그런데 2011년 7월부터 정심학교에서는 ‘음악의 힘’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중앙대 산학협력단 임영식 교수팀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박재은)의 의뢰를 받아 시작한 ‘문화예술교육 효과성 연구’다. 연구진은 정심학교 내에 HRV(심박동수 변이) 측정기를 설치하고 매달 한 번씩 재소자의 심전도 등 생리적 변화를 체크했다. 관악대원 21명과 비교집단인 일반 재소자 10명을 피험자로 삼았다. 공동연구자인 정경은 초당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평균 심박수(HR)와 정상심박 간격 표준편차(SDNN), 심장의 부교감신경 조절 능력을 보여주는 RMSSD 등을 측정하면 체내 스트레스 지수와 스트레스 저항도를 파악할 수 있다. 스트레스 지수는 낮을수록, 스트레스 저항도는 높을수록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라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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