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이라는 일종의 대행 기관을 통해 광고를 받는다. 광고주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는 시장주의가 만연한 선진국도 마찬가지. 우리의 경우 1980년 이래 ‘코바코(KOBACO)’로 불리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방송광고영업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제 코바코 시스템은 송두리째 무너져가고 있다. 최근 MBC가 코바코와 2012년도분 광고대행 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MBC 측은 그동안 코바코와 1년씩 광고 계약을 자동 연장해왔지만 2012년에는 계약을 체결할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SBS도 독자영업을 선언했다. 방송광고 시장에 천지개벽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방송광고 시장은 소용돌이 속에 진입한 상황이다. 2012년 방송광고는 관련법이 어떤 모양으로 결정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상파 방송사는 법이 통과되면 법대로 할 것이지만,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에 맞춰 준비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때 준비는 직접 영업을 의미한다.
MBC 본사 실무자들은 지역MBC사장단 정례 회의에서 미디어렙 경과를 설명한 바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MBC가 광고주를 대상으로 자사 미디어렙 설명회를 열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물론 MBC 측은 아직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업계는 MBC가 여론 떠보기를 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입법권·행정권에 도전
SBS는 미디어렙 출범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 홀딩스가 코바코 대행체제에서 벗어나 자사 미디어렙을 통해 자체 광고영업에 돌입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종교방송과 일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인해 경찰의 보호 속에 출범식을 치렀다. 직접 영업에 대한 행정적 준비를 사실상 마무리했다고 보면 된다.
미디어렙 입법을 기다리고 있지만 종합편성채널이 광고영업을 개시하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게 SBS의 입장이다. SBS 가맹 지역방송사에 대해서는 현 수준의 광고매출을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SBS는 민영방송이기 때문에 국회 입법 여부와 관계없이 직접 영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 3곳 중 2곳이 이렇게 직접 영업에 나서면 코바코 체제는 무너진다고 봐야 한다. 코바코로서는 속수무책이다. 2008년 헌재의 헌법불일치 결정으로 어차피 존립근거를 잃은 기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코바코가 방송사의 직접 영업을 막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역방송이나 중소방송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예상됨은 불문가지다. 종합편성채널에 이어 지상파 방송사까지 직접 광고영업에 돌입하면 방송계에 대한 광고주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다. 방송사 간 무한 광고 쟁탈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욕을 얻어먹는 방송사가 MBC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SBS보다는 MBC에 대해 상당히 노여워하고 있다. 이들은 MBC가 자사 미디어렙을 선택할 경우 정부 여당에서 MBC 민영화 요구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방송계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공영방송 몰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MBC는 민영화 논쟁이 나올 때마다 스스로 공영방송임을 주장해왔다. 이제 와서 사기업과 같은 자사 미디어렙을 설립해 직접 광고영업에 나서는 것은 자기모순이고 시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MBC의 미디어렙 설립 강행은 입법권에 대한 저항이자 방송통신위원회 권고사항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몰아붙이고 있다. 이들은 지상파 방송이 직접 영업을 통한 패키지 판매에 나설 경우 전파의 공공성과 공영성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MBC 내부에서는 직접 영업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이다. MBC 측은 수신료를 받는 KBS처럼 광고 판매를 하라는 건 곤란하다고 본다. 공영성을 광고 판매방식에까지 적용함은 무리라는 것이다.
광고주 입김 세질 듯
광고 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수익 논리가 지배하는 완전경쟁 민영 미디어렙 체제가 도입될 경우 문 닫는 언론사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덧붙여 언론사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親) 기업 보도 성향을 강화하는 최악의 상황도 올 수 있다. 방송광고 시장의 스산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