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 FTA 협상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교섭이 중단된 한일 FTA 협상은 2012년 본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고, 중국 역시 동아시아 경제통합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국,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동아시아 FTA에 관심을 쏟고 있다. 유럽연합, 미국 등 FTA 체결에 진통을 앓은 한국으로서는 한중 FTA에 만반의 대책을 갖춰야 한다. LG경제연구소는 12월 보고서 ‘한중 FTA를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를 통해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상대했던 FTA 파트너와 체질이 다르다”고 경고했다. <편집자>
2011년 5월31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앉은 사람)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 부장(왼쪽 앉은 사람)이 청와대에서 한중 FTA 공동연구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통상환경에 지각변동이 발견된다. 미국-중국 갈등의 골이 동아시아를 경계로 형성되고 있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확대하고 해군의 호주 주둔을 관철하자, 중국은 파키스탄, 뉴질랜드, 아세안에 이어 한국 및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심각한 갈등을 감수하면서 미국과의 FTA를 일단락지은 한국 정부로서는 EU, 미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채 실감하기도 전에 중국을 대면하게 됐다. 한국에 중국은 미국, EU보다도 버거운 상대일 수 있다.
한중 FTA 이익 균형 찾기 어려워
이미 한국과 중국 간에는 탄탄한 분업관계가 형성됐고 지리적 인접성도 있다. 하지만 중저가 제조 분야에서 중국이 갖는 원가경쟁력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FTA는 다른 FTA보다 국내에서 파열음이 크게 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0주년을 맞는 중국 경제는 시장개방이란 극약처방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비약적으로 신장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최근 한중 간 교역구조 변화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최근 중국 수출 의존도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고 있는데, 중국 리스크가 고스란히 한국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수출을 성장동력으로 키웠던 중국 경제가 내수동력 신장이란 구조개선에 실패한다면 경착륙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상대했던 FTA 파트너들과는 체질이 다르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가진 만큼 FTA의 이익을 나누는 협상과정에서 자신의 패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회주의적 공유원칙이 굳건한 만큼, 양허 조건도 매우 까다로울 것이다. FTA 체결 후에도 행정의 자국 이기주의식 시장간섭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FTA 체결은 한국 경제를 선진국 시장과 개도국 경제의 ‘접점’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비교우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되는 셈이다.
“한중일 FTA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노력하자.” (원자바오 중국 총리,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겠다.” (노다 요시히코 일 총리, 11월 일본 국회)
2001년 WTO 회원자격을 얻은 중국은 현재까지 17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칠레, 싱가포르, 파키스탄, 뉴질랜드, 아세안 등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들이다. 1990년대 이후 가장 왕성하게 대중(對中)직접투자를 해온 한국, 일본과의 FTA에 대해서도 산업경쟁력에서 크게 뒤질 게 없는 한국과 먼저 체결하고, 이어 일본과 맺는다는 단계적 체결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원 총리의 11월 발언은 이 같은 전략을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중국의 궤도 수정은 미국의 대중 전략 변화와 관련이 깊다. 중국의 대국굴기(大國·#54366;起)가 인접국과의 영유권 분쟁으로까지 확장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중국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 해군의 호주 주둔 선언과 같은 군사외교적인 압박과 함께, TPP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경제적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노다 일 총리의 발언 역시 탈출구 없는 일본 경제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의 불안감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중국을 G2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미국 전략가들이었다. 중국은 미국 경제규모의 40%대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GDP는 1995년부터 미국의 70%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때는 미국의 누구도 일본을 G2라 호칭하지 않았다. 더구나 1인당 GDP로 따지면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비교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을 G2로 부른 것은 글로벌 경제의 위기, 구체적으로 미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중국이 고통을 분담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은 이 같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협조를 구걸할 게 아니라 힘의 우위로 압박하자는 전략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과거 독일이나 일본처럼 미국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안이 바로 환율이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가 큰 폭으로 절상되기를 기대한다. 위안화 절상은 한국 원화 등 동아시아 경제의 통화를 동반 절상시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확대 추이를 개선할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출이라는 성장동력을 단번에 잃을까 우려하는 중국으로선 위안화 절상을 추진하되 속도를 조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자연스럽게 자국을 구심점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블록’을 쌓으려 하고 있다. 첫 단계라 할 아세안과의 FTA는 이미 발효됐고, 이제 동진(東進)할 차례다. 원자바오, 리커창 등 중국의 4, 5세대 지도자들이 한중 FTA를 촉구하는 발언이 잦아지고 있으며, 이는 중국에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는 한국에 대한 압박이다. 더구나 한중 FTA는 한국 정부가 먼저 제기했던 사안이기 때문에, 산관학 공동연구까지 종료된 마당에 정부 간 협상을 마냥 미루기도 어렵다.
끊임없는 비교우위 개발 필수
그러나 중국과의 FTA는 한국이 체결한 다른 FTA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중국경제의 운용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모델이 아니다. 한중 분업구조가 수교 후 근 20년간 굳건히 정착했고, 중국 내 한국기업의 제조법인들이 제3국 시장개척에 필수적 생산거점으로 기능하면서 우리 기업의 대중 노출도(exposure)가 상당히 높다. 이 같은 두 가지 특징은 중국과의 FTA 협상이 그 과정에서 이익의 균형을 찾기가 매우 어려우며, 협정이 발효될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도 매우 클 것임을 시사한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교역의존도는 매우 높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중 교역은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특징과 변화를 보여준다. 첫째, 양국 간 무역구조가 점점 더 보완적으로 바뀌고 있다. 두 나라의 무역구조가 보완적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주요 수출품이 상대국에서도 중요한 수입품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한국의 총수출에서 자동차 비중이 매우 높은데, 중국의 총수입에서도 자동차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면 한국과 중국은 자동차라는 상품에 대해 서로 보완적인 무역구조를 갖는다. 이런 상품이 많아질수록 두 나라 무역구조의 보완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한국과 중국의 서로에 대한 무역보완성은 양국 간 교역이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높아져왔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그 속도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증대되고 있다. 이처럼 상호 무역보완성이 높다는 것은 교역 확대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FTA 등을 통해 관세 장벽을 낮출 경우 교역 확대 효과가 클 것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둘째, 한중 간 교역에서 중간재(부품+부분품)와 최종재(자본재+소비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는 중간재와 자본재 비중이 줄어든 반면, 대중 수입에서는 오히려 그 비중이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을 유엔에서 제시하는 상품별 분류(BEA) 기준에 따라 기초재, 부분품, 부품, 자본재, 소비재 등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수출의 경우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만 2005년보다 2009년에 높아졌을 뿐, 중국 내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부분품, 부품, 자본재 등의 비중은 모두 낮아졌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 수입 측면에서는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나 소비재 수입은 그 비중이 줄어든 반면 부분품, 부품, 자본재의 비중은 증가했다.
전통적으로 한중 교역은 생산분업 구조가 강해 중간재와 자본재 비중이 높았고, 대체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제조업 생산 역량 고도화와 내수시장 활성화로 중간재와 자본재 자급률이 높아지고, 소비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한중 간 분업구조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부상은 동북아 3개국의 국제 분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까지 한중일 3국 교역의 기본 구조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입해 가공한 후, 이를 역외로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대규모 무역적자를, 나머지 전 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역흑자를 기록해왔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낮아질 경우 동아시아 역내외의 이런 비대칭성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 기업들은 제조업 역량 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비교우위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한다.
셋째, 한국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교역의존도는 1980년대 말 이후 줄곧 높아졌으나 수출은 2005년 이후 22% 내외, 수입은 2007년 이후 17% 내외를 유지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대(對)선진국 수출’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2009년 이후 대중 수출 비중이 다시 확대됐고 2010년에는 25%를 넘어섰다( 참조). 대중 수출 의존도 상승은 중국 경제와 한국 경제의 동조화를 심화시킨다. 중국 경제 호황기에는 교역이 활발해지지만, 중국 경제에 돌발 변수가 발생할 경우 우리 경제에까지 충격을 줄 수 있다.
한중 FTA가 발효될 경우 이점이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양국 간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기존 FTA를 통해 얻은 서비스 경쟁력 향상 효과를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시장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중 FTA 협상 개시에 앞서 고려할 점이 적지 않다. 이미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에 두 나라 간 경제적 분업구조, 경제체제의 차이, 협상 주도력 격차 등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많다.
일반적인 FTA의 경제적 효과는 관세인하를 통한 가격인하가 시장을 키우고, 이것이 생산 및 소득증가로 이어지며 발생한다. 관세인하 폭이 클수록 가격인하 효과가 커지고, 따라서 최종적인 소득증가 효과도 크게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상대국 수입품에 대한 실효 관세율, 즉 품목별 수출 비중을 가중치로 사용해 계산한 관세율은 각 6.0%, 3.9%로 낮은 편이다. 한국이 중국보다 더 높은 것은 농산물 등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품목의 수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분업구조 정착
여기서 중국의 실효관세율 3.9%는 관세 환급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수출을 독려하기 위해 수출용으로 수입해오는 원부자재에 대해서는 수출 후 관세의 상당부분을 돌려주고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실효관세율은 더욱 낮아진다. 그렇더라도 미국의 대한국에 대한 관세율이 2.5%인 만큼, 한미 FTA보다 한중 FTA가 관세인하 폭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관세인하의 소득증대 효과는 단기적으로 자국 내에서 나타난다. 중장기적으로는 교역확대에 따라 생산구조가 효율화되면서 생산요소의 재편이 가속화되고, 자본축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부가가치 증가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추정한 한중 FTA 거시경제 효과에 따르면, 관세가 완전 철폐될 경우 GDP는 0.52%포인트, 자본축적 효과까지 감안할 경우 2.56%포인트 상향된다.
한국이 FTA를 체결한 다른 교역국과 달리 중국엔 이미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해 조업하고 있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 우호적 토지사용료 및 특혜세율, 지리적 근접성, 저평가된 위안화 등 한국보다 크게 양호한 수출환경 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한국의 중국 제조업 투자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0년대 중반 1차 러시를 이뤘고, 중국이 WTO에 가입한 뒤인 2000년대 초반 또 붐을 이뤘다. 2차 붐에 해당하는 2003년 우리나라 전 업종의 해외 직접투자에서 차지하는 중국 제조업 투자비중은 32%까지 치솟았다. 투자금액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전자 IT분야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중국 내 생산액은, 이미 한국 생산액을 넘어선 곳이 많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보다는 3국 시장 수출거점으로 육성한 것이 대부분이다. 보다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들은 임금 등 국내 원가상승세를 견디다 못해 2000년대 들어 산둥성, 장쑤성 등 한국과 가까운 연해 거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 같은 직접투자의 영향으로 한중 간 교역에서는 비(非)소비재 비중이 유달리 높다. 비슷하게 비소비재 비중이 높은 일본과의 교역구조를 생각해볼 때 한중일 간에는 긴밀한 분업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미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중국과의 FTA에서는 한국계 기업들의 안정적 이익창출 및 본국 이전이 더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중국 내 한국기업의 내수시장 접근을 가로막는 다양한 진입장벽의 제거, 사업서비스 분야의 개방, 외환규제 완화, 합법적인 과실송금 방안의 다양화 등이 주요 이슈가 될 수 있다.
한중 FTA로 추가 관세인하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교역규모는 더욱 커지고 자본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구조 개선작업의 핵심은 내수의 성장동력 제고다. 중국시장의 전략적 의미가 ‘수출거점’에서 ‘내수시장 활용’으로 바뀐다면, 더욱 많은 자본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본축적 효과는 노동 등 생산요소의 가격 차이가 클수록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수년 새 급작스럽게 진행된 중국의 임금인상 정책, 토지가격 급등세 등으로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위축되고 있다. 향후 위안화의 점진적 절상 등 수출환경 악화까지 고려하면 중국 투자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한중 FTA의 기대효과를 논하며 미래의 자본축적 효과에 초점을 맞추기에 앞서, 이미 진출한 한국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과 본국 이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 체제의 차이가 난관
중국은 ‘고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운용한다. 간단히 말해 사회주의적 공유원칙을 견지해나가되 시장메커니즘을 적절히 활용하는 경제다. 중국은 시장개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지만,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는 토지나 국가기간산업에 종사하는 핵심 기업은 국가소유나 공동소유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교통 통신 금융 등 기간산업의 핵심 기업들은 대부분 국가가 최대지분을 갖고 있으며 시장감독기구의 우호적 지원을 받고 있다.
외국기업 입장에서 바라보면, 해당 분야의 시장개방은 체제 안정성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들과의 경쟁은 중국 정부와의 경쟁 이슈가 된다. 아울러 해당 분야 국유기업의 경쟁력에 위협을 가할 만한 환경변화도 중국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유 중장비업체인 쉬궁(徐工)의 매각계약 파기 건이다. 2005년 미국계 펀드가 쉬궁의 인수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중국 정부는 한 해 뒤 ‘외국투자자 역내기업 인수관련 규정’을 제정한 뒤 소급 적용해 무산시켰다. 중국 정부는 2008년에는 공정거래법(反壟斷法)까지 제정해 외국 투자자의 자국 기업 인수에 대한 제동장치를 추가로 마련했다.
특히 중국은 2011년을 기점으로 성장잠재력이 큰 7개 산업분야를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지정하고 선진국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대대적인 금융 세제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 분야는 초기 재정지원과 상당한 규모의 내수시장이 필수적이다. 중국으로선 양호한 인큐베이팅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 분야를 선도하는 글로벌 선진기업들이 중국 시장참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중국은 대부분 외자지분 한도를 절반 이하로 설정해놓고 있다.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외자(外資)로서는 사실상 시장참여가 봉쇄됐다. 최근 미국 정부 등이 이 분야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재정지원이 WTO가 제한하는 보조금 지급에 해당된다고 보복조치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도 향후 FTA 협상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시장 자율을 강화해왔지만,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영도’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즉 공산당을 정점으로 행정 사법이 종속된다. 특히 사법부 현장의 예산 및 인사권은 소속 지방의 의회(지방 전인대)에 속해 있으며, 이 의회 대표들도 공산당이 사실상 인선하고 있다.
2011년 5월31일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왼쪽)이 중국 천더밍 상무부 부장과 만나 한중 FTA 관련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그동안 맺었던 FTA 조항은 지방정부의 시행령 등에 막혀 관철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FTA 대상국이 경제소국이었던 탓에 체결 후 현장에까지 FTA 법규를 강제할 만한 협상력을 지니지 못했던 때문이다.
지방정부 이행 여부
향후에도 지방정부의 세원(稅源) 및 현지 주민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있는 지방 국유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큰 FTA 조항은 제대로 준수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지방 행정기관의 투명성 및 중립성을 자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 기업이 법규와 현실의 괴리를 사법당국에 호소하려 해도 해당지역 재판에서는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중국 중앙정부와 체결한 협정을 지방정부가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장치를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위 세 가지와 같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특징을 종합해볼 때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중국 특색의’ 비관세 장벽 극복이 어느 나라와의 FTA보다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주요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체제의 한계’ 탓에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일 수 있고, 이러한 정황은 협상전술에 적절히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지방정부가 이행한다는 확약을 받는 것도 중국적 현실에선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최근 동아시아 통상환경의 급변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해 미국이 FTA를 체결하고, 중국이 적극적으로 FTA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대중 FTA 협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문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교차점에 있는 일본 역시 미국과 중국의 ‘구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일본은 지역안보 면에선 미국의 안보우산을 쓰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운을 뗀 한중일 FTA에 모두 긍정적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간자적 입장을 취해 협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 국회비준을 통과한 만큼 미국에 대한 패는 노출한 셈이 됐다. 이제 중국과의 FTA 협상전략에서 일본과 같이 공동보조를 취할 것인지, 일본과 중국에 선후(先後)를 둘 것인지 선택해야 할 상황이다.
한일과 중국의 경제운용 체제의 차이, 한일 두 나라의 개방 유보조항의 유사성 등을 감안하면,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한일 공동보조가 한국 단독의 FTA 협상보다 유리할 수 있다. 중국 내 시장접근을 가로막는, 체제 특성에서 유래되는 비관세장벽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일본 기업들로부터도 원성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제조업이 대중(對中) 비교우위를 누리는 기술격차는 대부분 중간재 부품 분야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이 분야에서 일본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이 중국에 제공했던 가치의 상당부분이 일본에서 유래된 만큼, 한중일 FTA가 한국의 비교우위를 조기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당초 ‘한국 다음 일본’이라는 단계적 FTA 전략을 선호했던 것도 일본의 제조 경쟁력이 더 강해 자국에 미칠 파장이 더 클 것이란 우려 탓이었다.
긴 안목에서 보면, FTA의 선후관계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분업관계가 지구촌 어느 지역보다 강하게 형성돼 있는 동북아에서 어느 두 나라 간의 FTA는 바로 인접국의 FTA로 확장될 공산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FTA를 체결한 뒤 인접국의 FTA 협상요청이 밀려오는 것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한국 경제는 유럽 및 미국과의 FTA 체결로 선진국 경제와 시장개방 및 확대 계기를 맞게 됐다. 아세안, 인도에 이어 중국과 FTA로 묶이게 되면, 선진시장과 개도국의 접점에 서게 된다. 두 경제권의 접점에서 비교우위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긴 안목의 대응이 중요하다. 정부는 ‘원산지 규정’을 최대한 유리하게 설계해서 FTA 협정 시 관철해야 하며, 기업들은 아세안을 포함해 가치사슬을 재배분할 필요가 있다. ‘접점’에 섰을 때 비교우위를 최대한 창출하기 위해선, 고부가가치화와 원가경쟁력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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